재잘재잘 2010년 03월 03일 13시 55분

의과대학 졸업 7년 후

어느 새 3월이다.  2003년 2월에 졸업을 했으니 졸업 한 지 벌써 7년이 지났다.  이 번 주말 의대 동아리 후배들인 상길이와 수빈이가 다녀갔다.  5년 동안 신촌에서, 그것도 의대나 신촌 술집, 또는 연극반 결혼식에서만 보다가 보스턴에서, 우리 집에서 보니 새삼 느낌이 다르더군.  나도 아직 학생인지라 후배들과 크게 나이 차이를 느끼진 않는 편이어서 이 친구들이랑 8년 차이가 난 다는 사실에 속으로 깜짝 놀라기도 했다.

이제 본과 4학년을 맞이하는 후배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은 많은데 어떻게 표현을 해야 할 지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잘 몰랐다.  내가 어른들 말씀을 잘 듣지 않는 편이어서 (버릇이 없다기 보단 몸으로 경험해야 배우는 성격이어서 그렇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잔소리로 들릴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친구들이 간 후 내가 의대를 졸업 할 즈음에 유행했던 전우택 교수님께서 쓰신 글을 다시 읽어 보았다.  그 때는 그런가보다 했던, 그냥 모교 정신과 교수님이 또 글을 쓰셨구나 했던 내용이 이제는 너무나도 마음에 와 닿는다.  아마도 난 다시는 의과대학생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임상 의사가 아닐 것이기 때문에 더 그런 것 같다.

한 줄 한 줄 곱씹어 봤다.

내가 지금 알고 있는 것들을 20년 전, 그 본과 시절에 알았더라면 - 전우택

더 치열하게 시간을 보내었으리라
학생회 활동을 더 열심히 하였으리라
동아리 활동도 더 열심히 하였으리라
더 많은 선후배들과 인생을 논하였으리라
가을 축제에 더 여러 번 참석하였으리라

난 의과대학 때 치열하지 않았다.  항상 쫓기면서 살았지만 너무나도 똑똑한 동기들 속에서 치열해도 뒤쳐질까봐 그냥 치열하지 않았다.  그 때 치열하지 않았던 것을 지금에서야 악으로 살고 있다.  Pass.
학생회 활동은 본과 4학년 때 열심히 했다.  Pass.
동아리는 삶이었다.  Pass!
선후배는 많은데 인생을 많이 논하지는 못 한 것 같다.  사실 그 때는 인생이 뭔지 몰랐다.  삶을 좌우했던 주제는 기껏해야 남녀관계 정도?  그 때 선후배들을 지금 만났더라면 참 좋았을 것을.

아무리 동아리 활동 등 다른 활동들을 많이 하여도
다른 불필요한 일들을 잘 조절만 한다면
시험공부 할 시간은 여전히 충분하다는 것을 알고 행동하였으리라

그냥 공부하기가 싫어서 허비한 시간들이 참 많긴하다.  특히 "다른 불필요한 일들"이 술이라면 더더욱.  하지만 후회는 하지 않는다.  It was the best time of my life baby!  Fail.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학생들에게
마음을 활짝 열어 놓고 기다리시던,

그러나 지금은 은퇴하신 교수님들과

더 인간적이고 의미 있는 만남을 더 많이 가졌으리라

그래서 그 분들의 지혜와 지식에서 더 많은 보물을 찾아냈으리라

이 부분은 잘 모르겠다.  별로 마음을 활짝 열어 놓고 기다리시는 분들이 있다고 못 느꼈다.  하지만 더 많은 질문을 하려고 노력을 하지 못했다는 점에서는 후회가 된다.  Fail.

외국에 여행 갈 기회가 있다면 결코 놓치지 아니하였으리라
어차피 공부가 되지 않는 시간에
어리석게 책 앞에 앉아 시간을 죽이지는 않았으리라

외국 여행은 막상 의대 때는 못 했다.  동아리 활동하느라, 친구들이랑 노느라 바뻐서. 
참 어리석게 많은 시간을 죽이긴 했다.  책상 앞에서 잠이라도 자지 말걸.  Fail.

더 철저히 매일 일기를 썼으리라
마음이 늘 학교 성적에 얽매여는 있으나
성적에서 자유로운 마음을 가져야 하는 순간에는
과감하고 한량없이 자유로워졌으리라

어렸을 때는 참 일기를 많이 썼는데 의과대학 때 쓴 일기는 별로 없다.  찾아봐도 다 논 얘기들 뿐이고 별로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한 내용이 없다.  Fail.
너무 과감해서 너무 자유로웠다.  Pass!

내가 읽을 대부분의 책은 그 본과 시절에 읽은 것임을 알고
더 열심히 읽었으리라

본과 때는 거의 책을 읽지 않았다.  후회가 많이 된다.  그래서 지금 로스쿨에서 열심히 읽는다.  Fail.

결국 나중에 결혼에 이르지는 못하였다 할지라도
나의 삶을 찬란하고 풍성히 만들어 주었던 그 이성의 친구들에게
좀더 따뜻한 배려를 하여 주었으리라

난 할 만큼 했다.  Pass.

재시에 걸렸다고 세상이 무너지는 것도,
나의 자존심이 없어지는 것도 아님을 알고
좀 더 당당하였으리라

아직도 학생인지라 이 부분은 아직 모르겠다.  직업이 학생인 사람들에겐 성적과 시험이 결과물이어서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이건 7년 후에 다시.  

의과대학이라는 이 조그만 세계 속에서
내가 배우고 경험한 그 것들이
실은 내가 앞으로 이 넓은 세상 속에 살면서
필요로 되는 대부분의 도구라는 것을 알고
좀 더 열심히 이 기간을 보내었으리라

매우 매우 공감한다.  사회생활은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하고 공부는 더 열심히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Pass and Fail.


의대 실습을 돌면서 만난
나의 도움을 필요로 했던 그 환자들과 보호자들에게,
내가 실습 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리 소극적이지만은 아니하였으리라

Again, fully agree.  Fail.

의대에 다녀 바쁘다는 이유로
초등학교 때부터의 동창 친구들과 만나는 것에
그리 인색하지는 않았으리라

Fail.

의대 기간 중 가장 관심을 가지고 많은 시간을 보낸 그 일들이
결국 의대 졸업 후 자신이 가장 잘하게 되는
진로 결정의 중요한 조건이 된다는
그런 단순한 원리를 좀 더 일찍 깊이 생각하였으리라
그래서 가급적 나의 길을 미리 생각하고
더 적극적으로 나의 미래에 대한 준비를 하였으리라

나 이건 진짜 Pass다.

자식을 자랑스러워 하는 아버지와
더 많은 이야기를 하며 지내었으리라
바쁜 의대생 자식의 따뜻한 말 한마디를 그리워하는 어머니에게
그런 말을 조금은 더하였으리라
의대생으로서의 나의 어려움과 고생을 이해하지 못하는 가족들에게
그리 많이 실망하지는 않았으리라

Pass as in pass pass.

시험 공부가 아닌,
내가 정말 관심 있는 의학 영역에 대한 더 깊은 공부에
며칠 밤쯤을 더 지새웠으리라
결국 의대 시험 공부는
가장 중요한 것부터 순서대로 해 나가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것을 좀더 일찍 깨달았으리라

아쉽게도 관심 있었던 의학 영역이 없었다.  있었다면 법으로 전환하지 않았겠지...  Fail.
두 번째 부분은 왕족부터 보라시는 것 같은데... 난 해리슨을 통째로 읽었다고...  Fail.

족보를 좆아 다니던 그 초라하고 불안한 눈을
덜 두리번거렸으리라
나의 친구들에게 어쩌다 구한 족보를
더 많이 일찍 가르쳐 주었으리라
일단 치고 난 시험의 결과는 다 잊어버려도
전체적인 의대 생활에는 큰 지장이 없음을 좀더 일찍 깨달았으리라

앞 부분은 별 의견이 없지만 뒷부분은 동의할 수 없다.  의과대학이나 로스쿨이나 1학년 성적이 의과대학 생활 뿐만 아니라 향후 커리어를 좌지우지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도 7년 후에 다시.

학교 성적이 나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 있는 꿈과
그것을 향해 꾸준히 걸을 수 있는 나의 성실함이
나를 규정한다는 것을 알고 좀 더 침착했으리라

이 부분도 역시... 나도 침착하고 싶었지만 그 때 당시에는 내 마음 속의 꿈 뿐만 아니라 성적표의 성적도 나를 규종했었다.  이것도 7년 후 다시...

결국 인간관계란 술 잘 마시는 것에 달린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의 진실성에 달려 있다는 것을 좀더 일찍 깨달았으리라

인정.  Fail.

성탄절 다음 날 시험이 있더라도
성탄절에는 좀더 의미 있고 풍요롭게 남에게 베푸는 시간을
2시간만은 마련하였으리라

Fail.

나의 본과시절에는 특성화 선택과정이 없었지만,
나 스스로라도 그런 시간을 만들어 즐겼으리라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라도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후배에게
좀 더 기꺼이 시간을 내어주었으리라


난 특성화 과정이 있었다.  또한 힘들어서 술 사달란 후배 내친 적 없다.  Pass.

사이가 나빠진 기숙사의 같은 방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걸었으리라
결국 4년의 의과대학 시계는 그렇게 흘러가는 것임을 알았으리라
그리고 그 시간이 우리의 예상이나 기대만큼
결코 그리 길지 않음을 예측하였으리라

송지랑 싸워 본 적이 없어서.  워낙 송지가 양보를 많이 해 줘서... 참 고마운 친구.
그래, 지나고 나면 4년은, 특히 즐거웠던 20대 초반의 4년은 그리 길지 않게 보일 수도 있다.
20대 후반 - 30대 초반의 4년은 길다...

많은 긴장과 스트레스에 가득 찬 이 의대의 기간이
실은 내 삶에 있어 가장 찬란한 기간이며,
이 기간동안 나는 어떠한 모습으로든지 완성된다는 것을
내가 20 년 전 알았더라면

동기들과 함께 한 번도 병원 생활을 해 본 적이 없어서 나에게 기억되는 의과대학은 풋풋했던 20대 시절이다.  찬란했던 기간 agree.

그리고 무엇보다도 20 년 후,
내가 이런 글을 쓰게 될 줄을 알았더라면
나는 좀 더 다른 의대 4년간을 보내었으리라

20 년 전에 이것들을 알았더라면
하지만
이제 나는 안다
다시 20 년 뒤에 나는 오늘을 기억하면서
다시 그 후 지나간 20년에 대한 이야기도
이와 같이 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그것을 준비하는 것이 지금의 삶이라는 것을


결론
사회생활에는 매우 충실했으나 학교 생활 자체는 improve 할 부분이 많이 있었음.  하지만 한 번 더 기회가 주어지더라도 달라지지는 않을 것 같다.  I didn't know what I know now and I only learned what I know now because of what I went through at the time. 

새로운 끝이 보이니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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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3월 03일 13시 55분 2010년 03월 03일 13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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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좋은 말씀 좋은 글이기는 한데....사실 난 이런류의 글....특히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성공을 한 분들의 글은 좀 삐딱하게 보는 나쁜 버릇을 아직 버리지 못해서 말야. 전우택 선생님이 아닌 한적한 시골마을의 작은 병원에서 일하시는 선배님이 쓰셨다면 더 공감했겠지....

    난...많은 부분 Fail인 것 같군

    현종쓰~
    2010년 03월 10일 19시 25분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 처음 의대 졸업하고 읽었을 때는 상당히 거부감이 느껴졌는데 이 번에 갑자기 생각 나더라고요. 본과 4학년 친구 두 명이 다녀가서 더 생각이 난 것 같아요.

      에이... 오빠도 social life는 A+일텐데?! :)

       댓글주소  수정/삭제 2010년 03월 10일 22시 3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