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지만 당당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지난 주 저희 로펌에서 마이너리티 변호사들을 위한 트레이닝이 있었습니다. 주제는 자신을 pitch(홍보)하는 것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이러한 트레이닝을 하게 된 이유는 간단합니다. 대부분의 비백인 문화는 겸손함을 미덕으로 하는데, 백인이 주류인 대형로펌에서는 겸손하면서도 자신을 자신감 있게 홍보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자신을 제대로 홍보하지 못해 능력에 비해 인정을 덜 받는 비백인 변호사들이 많고, 그래서 이런 변호사들이 로펌을 떠나는 확률도 백인들에 비해 높습니다. 로펌도 이를 알고 가능한 비백인문화권 변호사들을 로펌에 더 남아있게 하기 위해 이러한 트레이닝을 하는 것입니다.

저도 처음에는 상당히 잘하지 못했던 부분입니다. 제 책이 출간됐을 때, 다양한 사람들이 축하한다는 말을 해 줬었는데, 부끄럽다는 답변을 많이 했습니다. 한국말로 말하면, 겸손하면서도 감사함을 표현하는 말이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자기가 원해서 책을 출간해 놓고 이제와서 embarrassed 됐다는 말이 무슨 소리냐고 반문하기에 딱 적합했습니다.

만 2년이 되어가는 지금, 이제는 제 자신을 당당하게 홍보합니다. 내가 돈이 얼마나 있다, 나는 이런 대형로펌에서 일한다, 집이 크다가 아니라, 내가 잘났다 잘났다가 아니라, 나는 이런 이런 일을 로펌을 위해 했고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 이만큼 내 자신을 희생했다, 그러므로 내 “노력”을 높이 평가해 달라라는 내용입니다.

백인문화와 동양인문화라는 개념은 없어야 하지만 존재합니다. 백인문화가 우월하지도, 비백인문화가 열등하지도 않습니다. 단순히 차이가 존재할 뿐입니다. 그리고 이 차이를 인정한다고 해서 제가 주류문화를 거부하거나 그 안에 잘 포함되지 못하는 것도 아닙니다. 초등학교 피구팀 고르기를 예로 들자면, 저를 팀원으로 원하는 곳은 많습니다. 많아서 못하겠다고 말해야 하는 팀도 있습니다. 파트너 변호사들끼리 매 달 점심식사를 하면서 어소시엣을 간접적으로 평가하는데, 두 달 전에는 한 주니어 파트너가 점심식사를 한 후 제 사무실로 들어와 “네가 어떤 일을 헀는지는 자세히 모르겠지만, 하던 것 계속해라, 너 홈런쳤다!”라고 타자가 공을 치는 자세를 몸소 실천하며 칭찬을 해 주고 갈 정도였습니다. 참고로, 이 파트너는 동양인 문화를 상당히 존중하고 집에서 수정과를 만들어 먹을 정도로 한국문화를 사랑합니다. Again, there is the white culture, then the Asian culture.

제가 하고자 하는 말은, 제가 이곳에서 적응을 못하니 불평을 하겠다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더 잘 뭉칠 수 있고, 어떻게 하면 제 뒤어 오는 동양인 세대에게 더 좋은 환경을 만들어 줄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제가 여기에서 안주하면 이것이 끝입니다. 굳이 문제를 만들 필요는 없지만, 개선할 수 있는 부분은 지적하고 개선하는 것이 발전적인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이 번 계기를 통해 인종에 대한 이야기를 더욱 더 자세히 써 볼까 합니다. If you don’t agree, then please feel free to pass by.

14 thoughts on “다르지만 당당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1. 노환규

    피겨스케이팅 김연아 선수는 제게 ‘동양인들에게 유연함이라는 우월적 유전자가 있음’을 확인시켜주었습니다. 제 기억에 지난 뱅쿠버 올림픽에서의 금/은/동메달은 모두 동양인이 가져갔지요. 동양선수들의 유연함에서 나오는 예술성을 서구인들이 표현하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유사한 고민들을 할 후배들을 위해 앞에 서서 길을 개척내 나가시는 제키선생님은 이미 위대한 개척자이고 리더이십니다. 항상 박수로 응원합니다.

    Reply
    1. Jekkie Post author

      회장님, 여기까지 와 주시고 글까지 남겨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요즘 들어 회장님 생각을 많이 합니다. 참 존경스럽고 멀리서나마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저도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

      Reply
  2. 노환규

    윗 글을 쓰고 보니, 뱅쿠버 올림픽 동메달은 Joannie Rochette라는 캐나다인이었나봅니다.ㅠㅠ 금/은/동을 Asian이 휩쓴 것은 다른 대회였네요…^^ 정정합니다.

    Reply
  3. Leo

    녹화해서 좀 올려주고 그래 그런 좋은 교재는… 백인문화에 들어갔다 빠졌다 하는 나같은 사람한테 꼭 필요하다구 ㅎㅎ

    Reply
    1. Jekkie Post author

      ㅎㅎㅎ. 놀라운 사실은 다민족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여기서도 뭘 어떻게 할 지 몰라서 아직도 헤매고 있다는 거여요. 그래도 문제인식을 하고, 해결하려는 끊임없는 노력을 하는 건 정말 대단해요. 그리고 웬 엄살이시래요, 잘 하시면서. 😛

      Reply
  4. 이유영

    오랜만이에요 제키님 🙂 저도 캐나다에서 생활하면서 이런 부분에 대해 많이 고민했었는데 ㅎㅎ 특히, 제가 이런 이런 일을 했다고 ‘홍보’하지 않으면, 내가 한 노력마저도 다른 사람이 한 것처럼 되어버리더라고요 (특히, group work에서요). 처음에는 말하지 않아도 알아야주겠거니 했는데, 그렇지 않더라고요. 그 다음부터는 겸손하게 내 ‘노력’에 대해 알아달라고 홍보도 하는데, 어색하기도 하고 쉽지도 않고요 ㅎㅎㅎ 그래서 지금도 노력중이에요. 상위문화, 하위문화라는 것은 없지만, 엄연히 ‘차이’는 존재하니깐요. 항상 좋은 글 감사합니다 🙂

    Reply
    1. Jekkie

      유영님, 오랜만이에요! 왜 이 글을 지금 읽었을까요? 며칠 잠만 잤더니 완전히 놓쳤네요. 좋은 말씀 감사해요. I agree with you 100%.

      Reply
  5. Seung Kyu David Bok

    맞아요 저도 현재 군대에서 그런걸 많이 배우는것 같아요. 백인이 압도적인 곳에서 뭐랄까… 다른건 어쩔수 없지만 그걸 인정하고 오히려 leverage로 사용하는거죠. 어차피 내가 피부가 흰색이 못되고 문화도 한순간에 바꿀 수 없으니 차이점을 알고 오히려 그 차이점을 leverage로 쓰는 기술을 터득하고 있는것 같습니다. 항상 좋은 outcome이 나오지는 않지만 어차피 better than zero outcome.!

    Reply
    1. Jekkie

      Ha! Leverage indeed. 저도 완전히 같은 생각을 해요, 같아질 수도 없고 같을 필요도 없고요. Insight가 있으시가는 것 자체가, 이미 몇 발자국 앞서신 것임이 분명해요. 항상 건강하세요!

      Reply
    1. Jekkie Post author

      Thanks for the link. 모든 이야기에는 양면이 존재하고, 흑과 백은 없으니까요. 🙂

      Reply
  6. T. Cho

    Jekkie님, 안녕하세요 ~ 얼마전 Facebook을 통해 인사드렸었지요. ^^

    이런 한/미간의 문화적 차이에 관한 글은 정말 공감합니다. 그런데 한국에 가면 이런 이질적인 차이가 없겠거니 했는데 그건 또 아니더군요. 십대에 미국에 간 저같은 사람에게 한국은 한국대로 또 이질적인 부분이 많이 느껴지고… 말씀처럼 “이곳에서 적응을 못하니 불평을 하겠다가 아닌” 좀 더 진취적인 방법으로 살아가려고 애쓰긴 합니다. 쉽지는 않지만, 그래도 꾸준히 노력하면 제가 몸을 담고 있는 조직도, 또 제 자신도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바뀌겠지요? 좋은 글, 항상 감사드립니다.

    Reply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