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기회 그리고 대가

우선 남편 소식에 축하해 주신 많은 분들 감사합니다.

남편과 저 둘 다 많은 분들께서 축하해 주셔서 매우 감사한 마음으로… 주말 내내 음주 (저 혼자) 가무를 즐겼고 (재미 없었던) 수퍼볼 50을 즐겼습니다.

저는 요즘 일도 너무 바쁘고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있어 뇌가 너무 산만합니다. 이럴 때가 있습니다. 자면서도 뇌가 쉬지 못 할 때가. 혼자 살 때는 정말 괴로웠는데, 남편과 있으니 남편이 잘 시간이 되면 그냥 온몸으로 저를 껴안고 제발 자라고 말을 하면 신기하게도 잠이 옵니다. 그래서 짝이 필요한가 봅니다.

일도 일이지만 벌써 갓 지은 새 집을 팔고 실리콘벨리/스탠포드 병원 주변에 새 집을 찾아보고 이사 준비를 시작하고 있어 일이 두 배입니다.

 

오늘 저는 저희 프랙티스 그룹 헤드 파트너께 실리콘벨리 사무소로 이동하겠다고 공식적으로 말씀 드렸습니다. 이미 멘토들께는 개인적으로 말씀드렸고 어떻게 할 지 고민 중이라고, 아직 로펌 내에 소문은 내지 말아 달라고 부탁 드렸었고(모두 비밀을 잘 지켜 주셨습니다) 오늘 드디어 공식적으로 coming out을 한 셈입니다.

I am going to the West Coast. For real.

이쁜 새 집은 어떻게 하냐고 여쭤 보신 분들이 계셨는데요.

아깝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집은 그냥 집일뿐입니다.

저는 집보다.

보스턴이란 도시를 떠난다는 것이 더 traumatic하고 상심 큽니다. 어떤 분들에게 보스턴은 고리타분하고, 작고, 맛있는 한국음식이 별로 없는, 날씨만 춥고 눈이 많이 오는 도시일지 몰라도. 저에게 보스턴은 제가 뼈를 묻을 것이라 다짐했던 도시입니다. 이 도시를 떠나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심장이 배로 꺼지는 듯한, 심장이 찢어지는 듯한 아픔이 느껴집니다.

저는 2008년에 보스턴 로건 공항에 도착했을 때 게이트를 나오면서 이 도시가 제 도시라는 강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는 보스턴 이전 이미 30 곳이 넘는 전 세계 도시를 지나쳐 온 후였고, 그냥 지구를 떠도는 nomad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즉, 어느 한 곳에 정착해서 살 것이란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보스턴 도시 중심도 아닌 공항 게이트에 들어오면서 “이 곳은 나의 집이다”라는 생각을 했더랬습니다.

당시에는 제가 보스턴 대학 학생도 아니었고 보스턴 대학으로 편입을 결정하기도 전이었습니다. 그냥 남편과 일주일 관광을 온 것일 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곳이 제 집이란 느낌이 들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8년이 지났고, 저는 8년 동안 이 도시를 제 집, 제 고향으로 만들었습니다. 실제로 집을 지었고, 커리어 네트워크가 생겼고, 친구들이 생겼고, 직장이 생겼고, 가족과 같은 직장동료들이 생겼습니다.

남편은 “미국”이 아닌 “보스턴”으로 오기 위해 지난 9년간 노력했고, 결국 작년 6월에 보스턴에 입성했습니다. 이 모두, 제가 보스턴을 벗어나지 않겠다는, 제가 보스턴에 뼈를 묻겠다는 굳은 의지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남편은 원래 내년에도 현재 근무하고 있는 하버드 의과대학 계열 병원인 Beth Israel Deaconess에서 1년 더 전임의로 일 할 계획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 주변병원에서 자리가 나지 않으면 보스턴에 남아 있기 위해 병원을 떠나 개원가로 나와 일을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All because I was so much in love with Boston. 저는 보스턴은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그런데 12월 말. 스탠포드 병원 신경과에서 남편이 전공하고 있는 분야를 키우고 있으니, 그 분야에 지원할 전문의를 찾는다는 이메일이 현재 남편의 보스 교수님께 전달이 됐습니다. 참고로, 남편이 전공하는 분야는 흔하지 않은 분야로 그만큼 병원 교수자리가 잘 나오지 않는 분야이기도 합니다.

남편은 제게 그 이메일을 보내줬고.

근무 중 이메일을 받은 저는. 정말 3초간 고민 한 후 남편에게 답장을 보냈습니다.

“지원하자.”

저는 제 이메일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었는지, 그 결과가 어떻게 될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제 이메일은, 만약 남편이 스탠포드로 가게 될 경우, 저 또한 보스턴을 떠난다는 의미였습니다.

그렇게 한, 할 수 있었던 이유는..

1. 기회는 쉽게 오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회가 왔을 때 잡아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꼭 해리포터에서 해리가 키디치 경기를 할 때 잡아야 하는 날개 달린 스니치를 잡는 것과 비슷하다고 매 번 느낍니다. 우선 그것이 스니치인지 알아야 하고, 스니치는 보이자 마자 잡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상대편도 이 스니치를 노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2. 그러나 인생은 해리 포터와 같은 소설이 아닙니다. 스니치를 잡을 경우. 스니치와 동등한 무엇인가를 포기해야 합니다. 저는 이를 대가(price)라고 생각합니다. 이 경우. 저는 제가 그토록 사랑하는 보스턴이란 도시를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자신의 고국. 고향. 가족. 직장. 모든 것을 저를 위해 포기해 줬습니다. 이 번 한 번. 저는 보스턴을 포기해 줄 수 있었습니다.

 

 

You can’t have everything.

남편은 스탠포드 의과대학의 교수로 발령을 받게 되었고, 저는 그 대신 제가 사랑하는 보스턴을 그 대가로 지불해야 했습니다.

 

 

 

 

저희 새집으로 돌아가자면.

집. 차. 돈. 기타 물건들.

이것들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들인 것 같습니다.

집이야 돈을 또 모아 사거나 지으면 되고, 차야 돈 벌어서 또 사면되고, 돈이야 더 열심히 일해서 벌면 되지만.

그리고 돈이 안 모이면 그냥 안 짓고 안 사면 되는 거지만.

기회는 순식간에 왔다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이고.

사람.

사람은 쉽게 얻을 수 없으나, 한 번 얻으면 평생 간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남편.

저와 12년 동안 함께 있으면서 남편이 처음으로 원했던 것은 저희가 결혼한 후 제가 유학을 가는 것이었고 두 번째로 원했던 것은 스탠포드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별로 많은 것을 원하는 사람이 아니기에.

He should get what he wants.

But everything has a price.

 

One thought on “도전, 기회 그리고 대가

  1. 이승주

    선생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선생님 글에서 항상 인생(거창한 단어이지만)을 배웁니다. Everything has a price 라는 것도 이제는 배웁니다. 그리고 반대로 이게 제게 힘도 되는 것이 지금 제가 힘든 경험을 헤쳐나가는 것이 아무 의미없는 것이 아닌, 제가 무언가를 얻기 위한 price를 지불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이겨나가게 됩니다.
    p. s. 선생님과 신동인 선생님 소식을 듣다 보면 정말 드라마를 보는 듯한 카타르시스를 느낍니다ㅎㅎ 저까지 진심으로 선생님들 small victories들에 행복합니다.(이번 일은 huge victory이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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