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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정상이었다!

한국에서도 그랬고 미국에서도 그렇고 실제 나이보다 어리게 보이는 건 전문직 여성으로써 큰 단점입니다.  전문적 지식을 바탕으로 insightful한 정보를 제공해 주길 바라는 클라이언트들의 입장에서 갓 대학을 졸업한 것으로 보이는 동양여자가 들어와 컨설턴트/변호사/법률자문이라고 말을 하면 의심쩍어 할 만도 하다고 생각은 하지만 그래서 그런지 항상 고양이가 털을 세우는 마냥 제 학력과 경력을 나열하게 됩니다. 간혹 기혼이라는 사실도 사람들에게 “아 이 사람 생각보다 어리지 않구나”라는 표정을 짓게 하기도 해서 과연 이들에게 먹고 살자고 사생활까지 모두 보여줘야 하는 것인가란 생각도 듭니다.

항상 보이는 나이에 대한 것만 신경 쓰다보니 털을 세운다는 것이 어떤 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회의를 하는데 최근 몇 달 함께 일을 많이 해 왔던 보스 중 한 명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너 그렇게 학교 다닌 것 치곤 참 정상이야. 놀랐어. 사회성도 있고.”

단 한 번도 가방줄이 길어서 발생할 수 있는 선입견에 대한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원래 이 사람은 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좋아하지 않았다기 보다 저를 싫어했습니다.  2년 전 인턴으로 일을 시작했을 때부터 눈도 안 마주치고 인사를 해도 받아주지 않는 것이 시간이 지나자 저를 안 좋아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펠로쉽을 위해 직원으로 돌아온 후에도 상황은 좋아지지 않았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조심스럽게 고민을 털어내자 다들 웃으며 말했습니다.  원래 변호사와 여자를 별로 안 좋아한다고.  둘 다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고 아랫사람으로써 잘 지내보려고 노력했지만 회의 중에도 제 의견을 무시하는 발언을 하는 것을 보면서 “이 사람 안되겠구나”란 생각으로 피하기 시작했습니다.  불편하긴 했지만 제가 특별히 잘못한 것도 없는데 그런 대접을 받는 것이 싫었습니다.

불편한 와중에 사무실 안에서 동선을 잘 짜가며 피하며 살고 있었는데 지난 4월 직속상관 변호사가 회사를 그만두면서 반강제적으로 이 사람과 함께 일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서로 불편한 관계임을 알지만 일을 안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어쨌던 같은 배를 타기는 했습니다.

그로부터 3개월 정도가 지난 지금.  어쩌면 이 상사는 제가 가장 솔직하게 회사에 대한 불만과 고민을 털어 놓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편한 사이가 됐습니다.  변호사라고, 여자라고 무시 당하는 것이 싫어 정말 열심히 일했고 맡았던 일은 트집 하나 잡을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해 냈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너무 받아서 괴로운 기간도 있었지만, 절대 그 상사가 저에게 강요를 한 건 없었습니다.  제가 제 자신을 증명하고 싶었던 것 뿐입니다.

증명은 했고 그 과정에서 친구도 됐고 이제는 제가 “책상이 왜 이렇게 지저분 하냐? 물 마신 컵은 왜 안 닦았냐?,” “너 이 일 지금 처리 안 하면 언제하냐,” “내가 보낸 파일 저장 안하고 어쨌냐? 왜 귀찮게 또 보내라고 하냐?” 라고 장난으로 타박을 해도 다 받아주는 사이가 됐습니다. 

그리고 이 번 주 금요일 회사를 떠날 준비를 하면서 제가 그 동안 맡았던 일들을 인수인계 해 주는데 그가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정상이고 사회성이 있다고 한 것입니다.  과연 2년 전에 저를 처음 만났을 때 어떤 선입견으로 저를 바라봤는지…  금요일날 밥을 사 준다고 하니 가서 물어봐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