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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력함 (Helplessness)

전 큰 그림을 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몇 달 전 어느 선생님께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 의사가 되셨다는 얘기를 들으며 생각해 보니 제 주변에 그런 의사가 많다는 사실을 깨닫고 뿌듯함을 느꼈던 동시에 때론 이상주의에 휩싸이긴 하지만 저는 큰 그림을 통해 누군가를 돕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노르웨이 총기사건, 런던 폭동 등을 바라보며 심한 무력감에 휩쌓였습니다. 분명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복잡하고 다양한 원인들이 복합적인 원인이 되어 발생한 사건들이었겠지만 정책 일을 하면서, 사회생활을 하면서 부딪히게 되는 수 많은 장애물을 겪으며 저 또한 때론 그들이 느끼는 분노를 느끼고 무력함을 느낍니다.

어저께는 정부기관 사람들과 회의를 하기 위해 15-20분 거리를 걸어 회의장으로 걸어갔습니다.  보스턴은 걷기 안전한 도시이지만 어떤 사람이 언제 어떻게 접근할 지 모른다는 경계심은 항상 갖고 있습니다.  회사 동료 한 명과 인턴 2명과 함께 회의장소를 향해 걸어가고 있는데 제 왼쪽으로 어떤 남자가 접근했습니다.  180cm 정도의 키에 짧은 금발 머리를 한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는 손에 묵직한 비닐을 들고 있었고 깡말랐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마른 체형의 소유자였습니다.

저와 동료에게 “How do you get to Mass Ave?”라고 물었습니다.  보스턴에는 매사추세츠 도로라는 대로변이 있는데 어떻게 이 도로까지 갈 수 있느냐고 물은 것입니다.  저는 본능적으로 그를 피해 한 발짝 뒤로 물러났고 제 동료는 여기서 걸어서 2-3시간은 족히 걸여야 하지만 정 가야 한다면 서쪽으로 가라고 방향을 가리켜 줬습니다.

동료가 방향을 가리키는 동안 저는 재빨리 그를 훑어 보았습니다.  그가 입고 있던 붉은 색 티셔츠는 조금 전까지 빨래걸이에 널려 있었던 마냥 빳빳하고 말끔했습니다.  무릎까지 오는 흰색 반바지 아래에는 발목까지 올라오는 두터운 테니스 양말을 신고 있었고 그 밑으로는 힘겹게 발가락 사이로 신어야 하는 쪼리를 신고 있었습니다.

“방금 병원에서 퇴원했는데 Mass Ave로 가야 해요.  거기 가야 해요.”

계속 웅얼거리던 그는 순간 휙 돌아서더니 순식간에 차량이 다니고 있는 길을 건너 버렸고 깜짝 놀란 제가 멈칫하는 동안 그가 들고 있던 비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Beth Israel이란 보스턴 병원 이름이 쓰여 있는 것을 확인한 저는 그가 정말 방금 병원에서 퇴원했음을 직감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양말 위로 쪼리를 신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빠른 걸음걸이로 사라져 버렸고 저도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다시 걸음을 재촉했습니다. 

5분 정도 걸었나.  그의 목소리가 뒤통수에서 들리기 시작했고 사라졌던 것처럼 순식간에 다시 나타난 그는 저희 앞으로 휙 지나가 버렸습니다.  그 와중에도 지나가는 사람 한 명 한 명을 붙들고 Mass Ave로 가는 방법을 물어봤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를 피했습니다.

멈칫거리던 저는…  한참을 앞서간 그를 향해 뛰어 갔습니다. 

“이봐요!”

“네?”
 
“어디가는 거에요?”

“Mass Ave를 가야해요.”

“왜 Mass Ave를 가야해요? 어디 살아요?”

“나 Manchester, New Hampshire에 살아요.  방금 병원에서 퇴원했는데 집에 갈 돈이 없다고 하니까 Mass Ave에 가서 구걸하면 돈을 구할 수 있다고 해서 Mass Ave에 가야 해요.”

“왜 거기까지 가서 돈을 구걸해요?”

“거기 가야 돈을 잘 준데요.”

“Manchester까지 가는데 얼마나 필요해요?”

“편도 버스 표가 $14래요.  나 지금 $7 밖에 없어요.  그래서 Mass Ave에 가야 해요.”

그는 단 한 번도 저에게 돈을 달라고 구걸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눈을 바라봤고, confused 한 상태 같았지만 약을 한 상태도 술에 취한 상태도 아님이 확실했습니다.  더더욱이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도 않았습니다.

“내가 돈 주면 집에 갈거에요?  술 먹거나 약 사 먹지 않을거에요?”

“나 진짜 집에 가요!  집에 가고 싶어요!”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다고 믿고 싶었고 난 가방에서 $10짜리 지폐를 한 장 꺼내어 손에 쥐어 줬습니다.

“집에 가요, 꼭!”

“고마워요.  이름이 뭐에요?  난 존이에요.”

“난 제키에요.”

그는 날 꼭 안아줬고 술 냄새나 땀 냄새가 전혀 나지 않던 존의 붉은 색 티셔츠에서는 싸구려 빨래 세제 냄새가 물씬 풍겼습니다.

돌아서서 동료들과 만나 회의장소가 있는 건물 앞에서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뒤에서 존이 이 번엔 South Station으로 어떻게 가냐고 사람들에게 물어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South Station은 버스 정류장이므로 그가 집으로 가려고 한다는 것이 확실했습니다.

존은 분명 정상적인 상태는 아니었습니다.  정신질환이 있다고 해도 놀랍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정말로 병원에서 이런 환자를 퇴원 시키면서 돈이 없으면 Mass Ave로 가서 구걸을 하라고 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애당초 그가 왜 병원에 입원 했었는지도 저는 모릅니다.  하지만 갓 병원에서 퇴원한 것으로 보이는 정신 상태가 말끔하지 않은 사람이 집에 갈 돈이 없어 구걸을 하기 위해 하염 없이 어디론가 걸어가려 했다는 사실은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정상적인 상황은 아닙니다.  언젠가는 환자를 위한 의료 시스템에 보탬이 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갖고 있는 제게 이렇게 사회보호층이 버림을 받았단 생각이 들게 하는 상황들은 무력함을 느끼게 합니다. 

혹시 몰라 방금 버스 값을 확인해 봤는데…  정말 보스턴에서 맨체스터까지 편도 버스표는 $14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