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반복

1. 국정원 댓글사건이 갑자기 생각났는데. 찌라시 언론에 휘둘리는 것도 모자라 국정원이 됐든 초등학생이 됐든, 누군가의 댓글에 휩쓸려 투표를 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은 한국이 과연 교육수준은 높으나 “생각”할 줄 아는 집단으로 이루어진 공간인지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2. 외부에서 봤을 때 현재 남한은 안보적으로 매우 위태로운 상황이다. 물론 이는 박가가 하고 싶어하는, 듣고 싶어하는 말일테고 그래서 모두 집에서 조용히 자기 할 일하고 자기 자리로 돌아가라고 하고 싶겠지만, 그건 아니다. 당신이 저질러 놓은 일이므로, 돌아서서 다른 이들에게 가만히 있으라 할 권리는 당신에게 없다. 국정원도 마찬가지다. 국가의 안보를 책임져야 할 집단이 국가의 안전과 안보를 이렇게 위태롭게 만들었으니 (그것도 댓글로??) 참 아이러니하고 씁쓸하다.
3. 한 때 계염령 이야기가 나왔으나 참 계엄령 같은 소리하고 있네라 생각했었다. 아버지 박가에 대한 책을 읽고 있는데 쿠테타 당시 기록에 따르면 박가에 저항하는 세력 또는 마찬가지로 쿠테타를 일으키려 했으나 국가 안전을 위해(쿠테타는 보병이 아닌 무기로 밀어 부쳐야 하므로 front line 부대들이 필요/유리한데 전선 부대들이 서울로 들이닥칠 경우 전선이 비게 되므로) 결국 그들은 “가만히 제자리를 지켰고” 그 후 박가에게 무영장으로 체포되어… 그 후에 대한 기록은 내가 읽고 있는 책엔 없지만 개인적으로 아는 분들이 있어 개인가족사로 이야기를 들은 바 있다. 결국,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 군을 움직여 나라의 안전을 완전히 위협시키겠다는 발상은 도대체 어디에서 왔을 수 있는지(만약 그러한 생각을 조금이라도 했다면) 알 수가 없다.
4. 남한은 현재 그 지리적 위치 덕분에 이 난리 난리를 북한, 중국, 일본 사이에서 아직까지는 평화시위를 통해 풀어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뻔한 이야기겠지만. 남한의 많은 역사는 결국 그 지리적 위치 때문에 파생된 것들이 참 많다. 또한 그 긴 역사에 비해 좋은 지도자를 만난적이 참 손에 꼽을 정도로 빈약하다.
5.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지금의 국가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순히 지리적 위치나 우연은 아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난 그것이 주님의 축복이 있었기에(난 카톨릭이다), 한민족이 위대하기 때문에, 또는 원래 benevolent한 독재와 어느정도의 corruption은 소금과 후추마냥 뿌려줘야 국가가 성장할 수 있는 것이기에 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지난 10년 간 신문과 경제.경영 관련 서적을 매우 많이 읽었다면. 앞으로 10년은 역사서적을 참 많이 읽을 것 같다. 생각보다. 역사는 정말 많이 반복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38번째 생일, 아델, 그리고 멕시코

우선. 생일 축하해 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이렇게 늦게 감사인사 드려 죄송합니다. 올려주신 글과 보내주신 메시지는 당일 모두 읽었습니다. 🙂

그냥 “감사합니다~” 한 마디를 남겨드리고 싶진 않아서 고민하고 미루고 미루다 일주일이 훅 가버렸습니다. 요즘 시간은 정말 고속열차보다 빨리 지나갑니다.

우선 저는 기념일을 그렇게 따지는 성격이 아닙니다. 대학생 때야 이런저런 기념일들을 챙기는 것이 그냥 그 나이 때하는 일이었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게 다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 사실 남편과도 결혼기념일 정도 챙기는 것 외엔 생일, 발렌타인데이, 크리스마스 등등 챙긴 적이 (별로) 없습니다 (별로는 생일에만 해당됩니다; 발렌타인데이.크리스마스는 서로 챙겨준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남편과 떨어져 산 9년 동안 제가 보낸 생일은.

2006년(로스쿨 1학년): 클리블랜드에서 친구 3명과 평일 조촐한 저녁식사. 남편은 한국.

2007년(MBA 해): 기억 안남. 남편은 한국.

2008년(로스쿨 2학년): 보스턴 친구들. 남편은 여전히 한국.

2009년(로스쿨 3학년): 보스턴 친구들. 남편은 아직도 한국.

2010년(로비이스트): 남편과 드디어 보스턴에서 데이트.

2011년(로펌 0/1년차): 9시인지 11시인지, 야근 후 혼자 프루덴셜 건물 52층에 있는 Top of the Hub에 올라가서 스카치 한 잔 마시고 집에 들어가서 잠이나 잠. 남편은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당직?

2012년(로펌 1년차): … 기억 포기. 남편은 어디??

2013년(로펌 2년차): … 기억 안남… 밥은 먹었을까?

2014년(로펌 3년차): … … …

2015년(로펌 4년차): 남편과 함께 창원. 전날 대전에서 발표 후 새벽까지 뒷풀이에 참석한 후, 다음날 생일 당일 기차를 놓친 후 다른 기차를 부랴부랴 타고 창원(시댁)에 도착. 시어머님께서 끓여주신, 시아버님께서 사다주신 스테이크 고기를 넣은 미역국을 먹고 하루종일 뻗어 잠.

2016년(로펌 5년차): 남편과 멕시코에서 아델 공연 봄.

 

증거 영상 1: 아델의 Hello. 멋진 언니/동생?? (28살이라…고…)

증거 영상 2: 아델의 Million Years Ago.

이 영상의 포인트는 첫 시도에서 목에 뭐가 걸렸는지 매우 아주머니스럽게 살짝 욕을하며(너무 사랑스러웠음) 연주를 멈추게 하고 옆에 있던 차를 원샷하고, 차로 가글링를 한 후, 재시도하여 성공하는 것임.

 


아델 공연 전에 공원에서 다람쥐와 노는 영상은 보너스.

 

사실 야생동물에게 인간이 feeding을 하면 안된다가 원칙인 것을 매우 잘 알기 때문에 정말 안하려고 했고 아직도 죄책감을 갖고 있지만. 사실 그 전날 멕시칸 로컬들께서, 그것도 동네 아이들까지 하는 것을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다가 결국 악마의 속삭임에 넘어가 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혹시나 제 rabbies를 걱정해 주시는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신기했던건. 그리고 멕시코 사람들이 자연/동물을 함부로 다루지 않을 수도 있겠단 생각을 하게 된건. 다람쥐들이 너무나도 다정다감하게 다가와 제 손을 살포시 잡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즉, 동네 사람들이 평소 다람쥐들에게 돌을 던지거나 함부로 대한다면, 인간에 대한 경계가 높을 것 같은데, 이 아이들은 인간친화성이 매우 높았습니다(야생동물은 인간친화성이 높으면 안되는 것도 잘 압니다… 죄송합니다…ㅜ_ㅜ).

 

이 번 주 제 주제곡은 “쨍!!하고 해뜰날 돌아온단다”였습니다.

뭐 항상 그런건 아니지만. 그리고 노력한다고 다 좋은 결과만 있는 건 아니지만. 힘든 시기를 견딜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언젠가 좋은 날이, 쨍하고 해뜰날이 올 것이란 믿음과 희망이 존재하고, 실제로 그러한 날이 항상은 아니지만, 매 번은 아니지만 언젠가 오긴 오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전 제가 행복함? 돈지랄? 흔히 말하는 성공? 등등에 대해 단순히 제가 과거 노력했단 이유만으로, 과거 힘들었단 이유만으로, entitle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즉, 제가 7-8번 제대로 생일잔치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9번째에는 대박 큰 생일잔치를 할 수 있는 권리가 발생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 생각 자체가 그른 생각이고 매우 위험한 생각이라고 믿습니다.

특히 부정행위를 통해 권력과 부를 창출할 수 있는 “법”이란 도구를 사용할 수 있는 법조인들의 경우 자신이 법조인이란 이유 하나만으로, 사법고시.로스쿨.변호사시험.변호사/판사/검사란 직함을 갖고 있단 이유만으로, 그 직함을 따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단 이유만으로 잘 먹고 잘 살고 떵떵거릴 수 있어야 한다는 entitlement를 갖는 것은 매우 위험하며, 그리고 사회가 그러한 expectation을 갖고 있는 것 자체가 그런 위험함을 부추긴다 생각합니다.

그리고 솔직히.

법조인이 거짓말하고 부정부패로 돈 버는 것. 더 나아가 부정부패하는 사람들의 시다바리나 하며 돈버는 것. 쪽팔리지 않습니까?

 

전 돈 많이 안 벌어도 되니. 권력 쥐락펴락 안해도 되니.

아델의 공연 마지막 모습처럼.

최소한 법조인 김정은으로는.

솔직하게. 공정하게. 자신있게. 윤리적으로. 프로페셔널하게.

그런 법조인으로 살다 가렵니다.

Poor Unfortunate Souls

이 사실을 언제 깨달았는지는 모르겠으나.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것을. 아주 오래, 어렸을 때 알게 되었다. 그리고 때론. 그 무엇을 얻기 위해 내가 지불해야 하는 것은 내 영혼일 수도 있다는 것을. 내 영혼을 그 누군가에게 준다면. 내 영혼을 그 무엇인가에 바친다면. 그 댓가로 어쩌면 정말 엄청난 것들을 손에 넣을 수 있다는 것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을, 취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도 내 영혼이 흔들렸던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영혼을 이미 팔아 넘긴 사람들은 나를 흔들었고, 영혼을 잃어버린 자들의 세상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그 세상은 때론 화려했고 때론 지구 꼭대기 같았다. 그러나 그 대가는 항상 같았다. 내 영혼이었다. 물욕, 권력욕, 탐욕, 복종 등을 통한, 그를 통한 내 영혼의 굴욕과 몰살이었다. 내 영혼을 팔아 넘겨야 한다는 것이 그 조건이었다.

나는 내가 곧은 사람이라 생각하진 않는다. 난. 그냥 내 영혼을 사랑하고 내 영혼을 지키기로 한. 나를 지키기로 한. 나를 사랑한. 나로 남기로한 사람일 뿐이다.

그런데 세상은 그것조차 참 힘든 곳이었던 것이다.

Poor Unfortunate Souls.

souls

이 모양 이 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5분. 글을 쓰고 빨리 문서로 돌아가야 한다. 주어진 시간은 5분. 마지막으로 제대로 출근한 건. 수요일? 목요일? 마지막으로 제대로 식사를 한 건. 아마도 어저께? 그저께? 방금 급하게 냉장고에 있는 재로를 꺼내 그럭 저럭 괜찮은 김치볶음밥을 만들어 먹었다. 이제는 재료만 조금 있으면 먹을만한 건 만들 수 있는 것 같다.

잠시 눈을 감는다는 것이. 밤 11시 정도에 소파에 누웠다가 아침 6시 반에 겨우 몸을 일으켰다. 중간에. 새벽 3시 반에 남편이 침대로 올라갈 때도 정신을 못 차렸고. 중간에. 5시 정도에 다시 기회가 왔을 때도 혼비백산. 저 세상과 이 세상을 오고갔다.

아침에 커피를 마시며 신문을 읽었는데. 한국 뉴스를 보고 처음엔 헛웃음이 나왔지만 나중엔 손이 바들바들 떨릴 정도로 놀란 것 같다. 무능한 것과. 실력이 없어 아무리 밀어 부쳐도 실력이 나오지 않는 것과. 악한 것은. 다르다. 나는 내가 절대 착한 사람이라 생각하지 않고 나 또한 나름 나쁜 결정을 해 왔고 앞으로도 하겠지만. 그 정도의 선택을 하기 위해선 얼마나 insecure하고 악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5분이 다 되었으니. 나는 다시 내 갈 길을 열심히.

은둔 중 – 뇌의 팽창

자숙의 기간이라고 하기엔. 내가 딱히 자숙할 것이 (지금은) 없기 때문에 옳지 못한 표현이지만. 요즘은 조용히 나만의 공간에서. 성장의 시간? 재충전의 시간? 어쨌든. 뭔가 사회생활을 줄이고 내면에 충실하려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물론 새로운 환경에서 생활반경이 줄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새로운 곳에 왔기 때문에 더 활발히 탐색을 하고 다녀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냥. 나와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한 동안 세상 돌아가는 모습에 “뭣 하러 이렇게 사나”도 싶었다. 지금도. 일면의 나는. 그냥 나와 내 가족이나 잘 살면 되지 뭣하러 세상 걱정하고 다른 사람들 걱정하나 싶다(누군가는 분명 말할 것이다 — 그래, 잘 생각했네, 너나 잘하세요). 어쩌면 그만큼 지쳤다는 것일수도 있고, 그래서 그 어떤 의미를 찾는 시간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의미 없이 앞으로 앞으로 달려가는 것은 그것 자체로 의미가 없으니까.

그러나. 다른 한 편의 나는. 뇌를 열심히 팽창 중이다. 요즘 인공지능 인공지능이 대세다. 핫하다. 인공지능과 관련된 바이오 관련 프로젝트도 매우 많다.

그런데 일을 하다 보면서 깨달았다. 내가. 인간의 두뇌가. 우리 모두가 하나씩 갖고 있는 뇌라는 기관이. 그냥 지능이다. 우리에겐 이 지능을 무한하게 사용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학교란 곳에선. 한국 의대를 학부로 치고 의료법 석사, 로스쿨, MBA까지 합치면 유치원까지 포함해 25년 동안 다닌 학교란 공간에선. 결국 난 지식이 아닌 어떠한 도구가 존재하는지 배운 것 같다. 그 중엔 “언어”가 포함된다. 의사들이 사용하는 언어. 변호사들이 사용하는 언어. 경영인들이 사용하는 언어. 물론 그 언어에는 전문용어, 기본적인 전문지식이 포함되지만 실제로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선 그 분야에서 업무를 해야 한다. 그리고 업무를 하면서 추가적, 실제적 “지식”을 쌓아야 한다. 학교란 공간에서 탑재한 도구들과 언어를 사용해서. (그래서 난 학위나 졸업학교를 중요시 여기지 않는다. 어디에서 도구들의 존재와 기본 사용법을 배워왔느냐가 중요할 수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실제로 그 도구들의 의미와 사용법을 이해하고 있느냐, 얼마나 윤리적으로 그 도구들을 사용할 준비가 되어 있느냐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결국. 인간은. 인공지능과 다를바 없다. 누가. 선생님이. 교수님이. 학원강사님이 나를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그 분들이 나에게 기본적인 도구의 존재와 사용법을 알려주면. 그 후엔 내가 알아서 그 도구들을 사용해 가면서 지식을 습득하고 새로운 도구도 만들어 가며 새로운 무엇인가를 창조해 내야 하는 것 같다. 그래서 그 과정에서 지능적으로 성장해야 하는 것 같다. 인공지능이 똑똑해 질 수 있는 이유는 끊임 없이 데이터가 들어가고 그 데이터를 바탕으로, 그 데이터를 분석해서 새로운 그 무엇인를 배우고 습득하고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라고 해서 다를 바 없지 않는가. 끊임 없이 새로운 지식과 정보, 제대로 된, 쓸모 있는, 의미있는 데이터와 정보를 뇌에 집어 넣고 분석하고 생각하고 검토하고, 그 안에서 인간의, 자신의 윤리적, 도덕적 가치관을 비벼넣어 결과를 도출해 내어 뇌를 팽창시키는 것. 그것이 인류가 성장해 온 과정 아닌던가. 물론, 쓰레기가 들어가면 쓰레기가 나온다는 기본적인 원칙인 인공지능과 인간의 지능, 둘 다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어쨌든 그래서 지금의 뇌를 팽창 중이다. 공부는 어릴 때하라는 말이 굳이 틀린 말은 아니다. 암기는 어렸을 때 훨씬 더 잘됐다. 이제는. 전화번호 7자리도 못 외운다(내가 새로운 사무실 번호를 받은지 지금 2달이 넘어 가는데, 아직도 내 번호를 못 외운다). 그러나, 암기는 암기일 뿐, 왜 암기한 내용이 중요한지, 암기한 내용 1과 암기한 내용 10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즉, connecting the dots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해는 연륜과 경험 그리고 다양한 뇌의 팽창으로 이뤄진다. 그러므로 지식의 축적이 암기시절에 멈춘다면. 외웠던 지식들을 연결할 수 있는 그 엄청난 기회를 놓칠 수 있다. 점 하나와 하나가 열결될 때, 평면이 입체로 변할 때, 정말 머리 위에서 전구 하나가 “빙”!!! 하고 켜 질 때의 느낌을 느낄 수 없게 된다.

나는 분명 학자가 아니다. 내가 읽고 있는 내용들도 학문적인 내용이라고는 할 수 없다. 어디에 어떻게 쓸 내용들일지는 모르겠지만. 우선은. 최소한 미국 대선이 지나갈 때까지만이라도 마음을 안정 시키기 위해.

은둔하며 책을 읽기로 했다.

 

동부와 서부의 차이 — 모유수유 배송 프로그램

미국은 사실 미국이 아닙니다. 미국은 정확히 말하면 미합중국입니다. 즉, 50개의 주가 모여서 이루어진 나라입니다. 각 주마다 그 역사와 문화가 있고(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 주 안에서도 지역 별로 역사와 문화가 있습니다), 크게는 동부, 중서부, 서부, 남부 그리고 하와이, 알라스카로 lumping하여 문화적 동질성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한국 분들은. 이야기를 나눠보면 서부를 선호하시는 것 같지만. 저는 제 나름의 이유로 동부의 매력에 빠져 동부를 선택했습니다(그러므로 왜 서부보다 동부를 더 좋아하느냐는 의아한 표정과 질문은 더 이상하지 않아 주셨음 합니다 — 저도 왜 도대체 동부를 이해하지 못하느냐는 질문은 하지 않지 않습니까).

그러나 서부도 서부만의 매력이 있고, 제가 이제 삶의 터전으로 만들고 있고 북캘리포니아도 나름의 매력 포인트가 있습니다.

우선 음식이 너무나도 맛있습니다. 식재료가 다양하고 풍부하고 신선하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 배우고 있습니다. 동부의 경우 해산물은 풍족하지만 겨울이 길고 여름이 습해 식재료가 제한적이어 음식에 한계가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서부에서처럼 식재료가 신선하면 정말 간단한 음식도 너무나도 맛있다는 것을 배우고 있고 그래서 요리의 세계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저는 워낙 술을 좋아하는데 여지껏 와인이란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먹어도 맛의 차이를 잘 몰랐던 것도 있고 레드의 경우 때론 심한 편두통이 생겨 버블리인 샴페인 정도만 마셨을 뿐 와인을 즐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곳에 와보니 와인을 만드는 와이너리를 직접 방문할 수도 있고 그 곳에서 여러 와인을 맛보며 제게 맛는 와인을 마시며 비교분석(?)을 할 수 있게 되면서 와인의 세상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우워!) 회사에서 긴 하루를 보내고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요리를 하며 라디오를 틀어 놓고 와인 한 잔을 시핑하는 것이 이렇게 행복한 일인지 처음 알았습니다. 그리고 이건 상당히 캘리포니안스어운 행위이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서부는 매우 보수적인 로펌들조차도 그 보수적인 성향에 물을 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보수적이면서도 서부만의 innovative한 성향이 그대로 들어난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선 innovation과는 별개의 이슈지만 innovative한 문화를 가능케 하는 것 중 하나는 work environment인 것 같습니다. 분명히 동부에 있을 때와 시간 대비 동일한 양의 일을 하고 있고 동일하게 복작하고 intensive한 일을 하고 있지만 저만의 시간을 더 보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저께 제 새 직장에 옮기는 것을 도와준 리크루터와 점심을 먹으며 한 이야기 중 하나이기도 한데, 동부의 경우 아침부터 저녁까지 쭈—욱 일을 하는 것이 문화라면, 서부는 일을 끊어서 여러 번 하는 것이 문화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제 경우 아침에 일어나서 1시간 집에서 근무, 회사에서 오전에 2-3시간 근무, 점심시간 1시간(야외에서 식사를 하고, 신문을 읽고, 요즘에는 15-20분 정도 걷고 있습니다), 오후에 3-4시간 근무, 퇴근 후 자유시간, 자기 전에 1-2시간 근무를 하면 사실상 이 전의 근무시간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대신, 오전.오후에 집에서 시간을 더 많이 보낼 수 있다는 점에서 뭔가 자유로운 느낌을 받고 중간 중간에 머리를 식힐 수 있다는 점에서 재충전이 된다고 생각됩니다(아직은…). 단, 연차가 올라가면서 책임감은 더 많아지고 해야할 일은 쌓여가므로, 그리고 평일에 제 페이스를 제가 조절하므로 주말에도 몇 시간씩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 계속 발생하고 있어 장기적으로 이러한 스케줄이 어떻게 play out할 지는 두고봐야 할 것 같습니다.

어쨌든 결론은 동부와는 다른, 끊어서 일을 하는 문화가 존재하고, 그렇다고 일을 덜하는 것은 절대 아니고, 장기적으론 이런 문화도 burn out을 충분히 일으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 복장도 다르긴 합니다. 동부에선 매일 매우 structure된 드레스를 입고 출근했다면, 요즘엔 정말 편한 고무줄 바지(!)도 입고 헐렁한 셔츠도 입고. 사무실에 요가매트도 가져다 놓고. 중간중간 스트레칭도 하고. 그렇게 편하게 일을 합니다.

이 긴 이야기를 쓴 이유는 이 번 주에 사내 이메일로 breast milk shipping program 관련 안내를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아직 잠이 덜 깬 상황이어서 모유수유를 하는 변호사/직원들끼리 서로 모유를 나누는 프로그램으로 이해하고 “아… 아무리 서부여도 이건 아니자나…”라고 생각을 했으나…

http://www.law.com/sites/almstaff/2016/09/15/got-breast-milk-latham-will-ship-it/?slreturn=20160817120642

다시 정신을 차리고 읽어보니. 그게 아니라.

모유수유 중인 변호사나 직원이 로펌관련 일로 출장을 갈 경우 “본인의” 모유를 “자신의” 집으로 보낼 수 있는 프로그램을 시작했다는 것이 이메일의 내용이었습니다.

즉, 모유펌프만 들고 변호사/직원이 출장을 가면. 호텔에 이미 배송과 관련된 모든 물품이 준비되어 있고. 변호사/직원은 모유를 준비된 통에 펌프한 후 FedEx 직원을 불러 배송을 하면 overnight로 자신의 집으로 배송되고 집에서 냉장보관을 하면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배송 중에도 온도유지를 할 수 있도록 package안에 ice pack이 들어 있다고 합니다.

대형로펌 중 이런 프로그램을 시작한 것은 레이텀 & 왓킨스가 처음이라고 합니다. 이런 프로그램을 한 대형로펌에서 시작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다른 로펌들에서도 adopt하도록 압력을 받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이런 프로그램들은 로펌이나 고용주 입장에선 추가비용이지만 직원들에겐 그 비용이상으로 큰 도움이 되는, 삶의 도움뿐만 아니라 실제로 work productivity를 올릴 수 있는, 그리고 직원의 retention을 올릴 수 있는 프로그램입니다.

이러한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는 건. 그리고 그러한 아이디어를 실현시키는 것은 결국 그 환경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미국 전문직 종사자 – 영어 이름 가져? 말어?

끊임 없이 영어 이름을 가져야 할 지 말아야 할 지에 대해 질문해 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오늘, 지금 현재 제 생각을 적어볼까 합니다. 생각은 변하는 거니까. 내년, 아니 내일 제 생각이 변할 수도 있습니다.

우선 제키가 영어이름 같긴 하지만 Jekkie는 티피컬한 영어이름이 아닙니다. 원래 재키(not 제키)는 Jackie로 재클린의 닉네임입니다. 실제로 우리가 흔히 듣는 영어이름들은 제대로 된(?) 영어이름을 줄여서 부르는 그 나름대로의 닉네임입니다.

Rob나 Bob는 로버트를 줄여서, 빌은 윌리엄을 줄여서, 존은 조나단이나 존슨 등을 줄여서(존은 사실 여러 다양한 이름의 닉네임입니다), 딕은 리차드를 줄여서, 닉은 니콜라스를 줄여서 부르는 이름입니다. 마찬가지로 여자이름에선 케이트는 캐서린을 줄여서, 브리는 브리아나를 줄여서, 제니는 제니퍼를 줄여서 닉네임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 이름의 경우 구글에 Jekkie Kim 또는 Jungeun Jekkie Kim으로 검색하시면 저 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즉, 저 같은 스펠링을 사용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사람들 중엔 제 이름을 보면 어떻게 발음해야 하는지 몰라 당황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있습니다. 스타벅스에서 제 이름을 제대로 커피잔에 쓴 적이 거의 없습니다. 클라이언트 중에도 “네 이름을 어떻게 발음해야 하느냐?”고 물어보는 사람들도 있고, 사실 제키인데 재키로 발음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후자의 처음에는 상당히 불쾌했으나 이젠 I don’t really care입니다. Actually, as a matter of fact, call me Jim, Bob, Charlie, I don’t care. Why? 상대방의 이름을 제대로 부르려고 노력하지 않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대충 이제는 알게 되었고 그런 사람에게 제 에너지를 낭비하고 싶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과 통화를 끝내고 나면 때론 제3자가 대신 사과해 주는 경우도 있습니다(예: 제키야… 자꾸만 저 사람이 너를 재키라고 부르더라… 미안하다…). 그런 분은 정말 함께 일하고 싶은 분이고 그런 과정에서 누가 내 친구이고 누구와 더 친하게 잘 지내야 하는지도 알게 됩니다. So all is not a lose. 한 편으론 제가 제 자신에 대한 아이덴티티가 강해져서 그런 것도 있고 자신감과 자부심이 강해져서 그런 것도 있는 것 같습니다. 저와 일을 하는 사람들이 제 이름을 제대로 불려줘야 하는 상황이 되어가는 것도 분명 있습니다. So I don’t care. 저는 제 이름이 있고, 제 소개를 하고, 제 이름을 제대로 발음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상대측의 책임입니다. (여담이지만, 이제는 “내가 김정은이다! 북한 김정은이가 여자이름을 갖고 있다! 내가 누나다!”라고 칵테일 파티에서 이야기하는 것도 정말 재미있습니다. ㅎㅎㅎㅎㅎㅎㅎㅎㅎ)

그러므로 “영어이름”이란 것이 필요한가에 대한 질문을 할 때에는 과연 “영어이름”이 존, 잭, 밥, 에이미, 케이트 등의 티피컬한 서양이름인지 그냥 영어로 발음하기 쉬운 알파벳으로 된 이름인지를 우선 구별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남을 위해서 이름을 짓기 보단 자신을 위해서 이름을 짓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자신의 이름이 불릴 때 어색하다면 what’s the point? 우린 반려견도 아니고 반려 고양이도 아닙니다. 이름은 나를 대표하는 것이고 내가 원하는 이름을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진정 자신이 원하는 상황에서 원하는 이름으로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참고로, 제 남편은 5년 조금 전에 미국에 왔습니다. 영어이름을 만들까는 7년 전부터 고민했던 것 같은데 그냥 자신의 이름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여러 이름을 고민해 봤지만. 남편은 그냥 신동인이 가장 잘 어울립니다. 다들 처음 만나면 토니냐고 묻습니다. 그래서 아니다 동인이다라고 이야기하면 정말 혼란스러워합니다. 그래도 배울 사람은 다 배웁니다. 물론 못 배우는 사람은 못 배우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