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ncils Down and 취미생활

지난 2주는 정신없이 지나갔습니다. 작년 여름휴가 때 찐 살이 쪽 빠질 정도로… 2주 동안 주말에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계속 일을 해야 할 정도였으니까요.

저는 거래업무를 하는 자문변호사입니다. 종종 “변호사의 꽃은 송무”란 생각을 하시는 분들을 만나기도 하는데, 물론 제가 자문변호사여서 그런 것도 있지만, 그런 생각을 하시는 분들은 변호사 업무가 할 수 있는 업무의 폭을 매우 협소하게 생각하시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물론 송무업무도 매력적이고 의미있는 일이긴 하지만, 거래의 매력을 한 번이라도 맛보신 분이라면 송무 외에도 변호사가 할 수 있는 재미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아실 수 있을텐데 말이죠.

지난 2주 동안 했던 일 중 하나는, 기업을 매각하는 일이었습니다. 경영을 공부해 보신 분이라면 financial buyer와 strategic buyer가 있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Financial buyer는 사모펀드와 같이 순수 이윤창출을 목적으로 기업을 사고파는 반면, strategic buyer는 기존사업을 확장하거나 diversify하기 위해 새로운 기업과 비즈니스를 인수합니다.

여기서 변호사의 역할은 사고파는 기업이 제대로 기업을 운영했는지를 파악하는 기업실사와 실제 인수/매각시 다양한 조건을 협의하고 관련 계약서 작성을 하게 됩니다.

기업을 인수하는 입장에서는 한 번 인수계획을 세웠다면 가능한 빨리 기업을 인수하고자 하며, 매각하는 입장에서도 바이어의 마음이 변하기 전에 기업을 매각하길 원합니다. 우리가 신발 같은 간단한 물품을 구입할 때 한 번 사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그 자리에서 신발을 신고 매장에서 나가길 원하는 심정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거래업무는 정신이 없습니다. 수 십에서 수 백억원의 돈이 오고가는 거래인만큼, 신발 한 켤래를 사는 것보다는 봐야 할 것, 생각해야 할 것 등이 훨씬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 번 거래가 시작되면 그 팀은 2-3주 간 잠자는 시간,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거래에 집중해야 합니다. 긴박함 때문에 아드레날린이 솟구치고, 며칠 잠을 자지 않아도 버틸 수 있을 정도로 바쁜 시간을 보냅니다. 거래의 재미를 한 번 느껴본다면, 송무업무 뿐만 아니라, 거래업무 또한 변호사의 꽃이란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2년 동안 거래를 해 본 결과, 이렇게 시작된 거래가 성사되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이 없습니다. 겉으로 봤을 때는 매력적인 기업이더라도, 실사를 할 수록 문제점이 드러날 수 밖에 없고, financial buyer가 됐건, strategic buyer가 됐건 어느 순간 더 이상 기업이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는 순간이 오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 번 신발과 비유를 하자면, 눈으로 봤을 땐 상당히 갖고 싶을만한 신발이지만, 막상 신어보면 발에 맞지 않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래서 오늘 주말을 바쳤던 딜이 깨졌습니다. 이럴 때 팀원들이 받는 이메일은 “pencils down!”입니다. 거래가 성사되지 않으면 변호사 비용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더 이상 관련 업무를 하지 말라는 지시입니다. 처음에는 뭐 이런 일이 다있나 싶었지만, 이제는 어느정도 익숙해 졌습니다. Pencils down 지시가 떨어지면 즉시 하던 일을 멈추고 다음 지시를 기다리게 됩니다. 익숙해지긴 했지만, 그만큼 시간투자를 한만큼 많이 아쉽기도 합니다.

이렇게 한 딜이 성사되지 않고 끝났습니다. 내일은 새로은 딜을 시작하겠죠.

바쁘게 살지만. 최근 새로운 취미를 시작했습니다. 기존 취미는 신문읽기, 책읽기, 맛있는 음식먹기, 유산소운동하기 등이었고, 몇 달전부터는 남편과 함께 취미생활을 하기 위해 새보기(birding)도 시작했었습니다. 야외활동을 많이 하다보니 사진이 찍고 싶어졌고, 작년 휴가 때 남편이 카메라를 잃어버린 김에 이 번에 새로운 카메라를 제 입장에선 거금을 투자해 구입했습니다. 대단한 DSLR 같은 건 아니지만, 나름 point and shoot 중에선 괜찮다는 카메라를 장만했습니다.

제 목표는 대단한 사진작가가 되는 것도 아니고, 사진전을 여는 전문작가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제가 일을 하지 않는 시간에 여유롭게 저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 목표입니다.

잠도 제대로 못자면서, 취미생활은 무슨소리냐고 생각하실 수 있겠지만. 장기전인 로펌생활을 견디기 위해서 취미생활은 필수라고 생각합니다. 친구들과 수다떠는 것도 좋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돌아다니는 것도 좋지만, 평생, 항상 새로운 것을 배워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필수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한 동안 중국어와 스페인어를 배우려고 했지만, 막상 실전에서 활용할 일이 없어 별로 재미가 없었고, 그렇다고 새로운 학문을 배우기엔 이미 너무 멀리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양한 기기를 만지작 거리는 것을 좋아하고, 색감에 대한 호기심이 있다는 생각에 사진을 시작해 봤는데, 2주 정도 해 본 결과 그 과정이 매우 만족스럽습니다.

저 외에도 로펌 변호사들은 다양한 취미생활을 합니다. 제 이전 오피스메이트는 최근 목공에 취미를 붙혀 새로 들어간 집 장을 짰고, 함께 일하는 윗 년 차 중 한 명은 볼룸댄싱을 하며, 복싱이나 오지여행 등 정말 다양한 취미생활이 존재한다는 것을 배워가고 있습니다.

취미생활을 하는 변호사들 모두, 시간적으로 여유로운 사람들은 아니지만, 장기적으로 자신의 직업을 사랑하며 살기 위해선 때로는 일과 무관한 다른 그 무엇을 해야 한다는 생각 또한 공통적으로 하는 것 같습니다. 또한, work-life balance 유지를 위해서 어쩌면 필사적으로 취미생활을 하려고 한다는 생각도 듭니다.

미친듯 일하고, 미친듯 취미생활을 하며 정신없는 30대를 보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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