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내 아이덴티티 찾기

soul-searching

noun

noun: soul-searching; plural noun: soul-searchings

1.

deep and anxious consideration of one’s emotions and motives or of the correctness of a course of action.

adjective

adjective: soul-searching

1.

involving or expressing deep consideration.

“long, soul-searching conversations about religion”

회사에서 쌀밥 먹기

제가 성장한 국가들에는 한국음식을 하기 위한 재료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학교도 미국인 학교였으므로, 한국음식을 많이 먹고 자란 편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런지 김치도 잘 먹지 않습니다(유일하게 깎두기를 배불리 먹은건 설렁탕과 함께였는데, 이제는 고기를 먹지 않으니 김치 먹을 일도 거의 없어졌습니다). 한국에서 대학교를 다닐 때도 대학생이었던만큼, 패밀리 레스토랑이나 패스트푸드 등을 즐겼지(including 술안주), 따뜻한 엄마 밥을 먹은 기억은 많이 없습니다.

신기하게도 30대 중반에 들어서니 한국음식이 그렇게 먹고 싶습니다. 정말 배가 고플때면,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쌀밥에 반찬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문제는, 비록 보스턴이긴 하지만 한국장을 볼 수 있는 곳이 그렇게 많지도 않을 뿐더러, 장을 본다고 해도 요리를 할 시간이 없으며, 요리를 한다고 해도 혼자 사는 관계로 먹는 음식보다 버리는 음식이 더 많습니다.

고민을 하다가 최근 새로운 시도를 해 봤습니다. 제가 일주일 동안 외식과 장을 통해 쓰는 비용을 예산으로 잡고, 이 예산으로 매 주 한국음식을 해 주실 수 있는 분을 찾았습니다. 제가 항상하는 생각이지만, 제가 타고난 가장 큰 복이 인복인 것 같은데, 이 번에도 정말 좋은 분을 만나게 되어 약 한 달 전부터 매 주 한국음식을 배달받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반찬 몇 가지면 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 분께서는 에페타이저(샐러드)에서 디저트(과일, 케익, 화채 등등)까지, 한국음식 외에도 제가 먹을 수 있는 다양한 음식을 가져다 주고 계셔서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으로 매일 식사를 하고 있습니다.

믿을 수 있는 분이라 판단되어, 이제는 집열쇠까지 드려서 본인이 편하신 시간에 집에 오셔서 냉장고에 음식을 넣어주고 가십니다. ‘우렁각시가 이런 것이구나…’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에, 최근 몸무게가 조금 늘기 시작했습니다. 1-2KG이 별거냐 싶을 수도 있지만, 저는 살이 오르면 배가 나오고, 배가 나오면 허리가 아픕니다. 그래서 몸무게 조절을 철저히하는 편입니다.

회사 점심은 그나마 열량을 조절할 수 있는 음식이 꽤 있는데, 저녁 같은 경우 고탄수화물 음식 위주이고 (고단백 고기가 있지만, 저는 고기를 먹지 않으므로 패스…) 7시 반부터 저녁을 주기 때문에 (공짜 저녁이어서 늦게 일하는 사람만 주기 위해 약간 늦게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식사시간이 늦어져 문제가 되는 것이였습니다.

그래서 이 번주부터 점심과 저녁 도시락을 준비해 오기 시작했습니다. 보온 도시락보다는 회사 냉장고에 음식을 넣어놓고 전자레인지로 데워 먹습니다.

솔직히… 처음에 한 고민은… 제가 회사 전체에 유일한 한국국적을 갖고 있는 변호사인만큼 한국음식 도시락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일텐데, 눈치가 보이지 않을까였습니다. 약 3일간 시도해 본 결과. I don’t care.

한국사람이 한국음식을 식사로 먹겠다는데 뭐라고 하는 사람이 더 이상한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마늘냄새가 나면 나는거고, 반찬냄새가 회사에 진동을 하면 진동을 하는거지 제가 먹고 싶은 것을 안 먹고 눈치를 봐가며 살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아침내내 속이 부대껴서 점심을 굶을까 싶었는데, 혈당이 떨어지면 머리가 돌지 않아 밥을 먹었더니 속이 훨씬 편합니다. 역시 “밥심”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What is my identity

사람마다 보이지 않는 태그를 달고 다닙니다. 흔히 옷을 살 때 “100% 면”이라고 쓰여 있듯, 각각의 인간도 보이지 않는 태그를 달고 있습니다. 이름, 나이, 성별 등등. 이 태그는 개개인에게 identity를 부여합니다. “이건 나야!”라고 말 할 수 있는.

저는 제 이름도 알고 나이도 알고 성별도 압니다. 하지만 그 이상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평생 mainstream이 었던 적이 없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국적은 한국이지만 한국사람으로 받아 들여지지 않을 때도 많았습니다. 어렸을 때 한국 학교로 전학을 두 번 했었는데 어떤 친구들이 “너네 나라로 돌아가!”라고 외쳤던 것이 아직도 생각납니다.

하지만 미국사람에 더 가깝다고 해도 동양인으로써, 또 외국인으로써 mainstream이 아닌 것도 확실합니다. Mainstream 아이들과 자라온 환경도 다르고 생각하는 방식도 다르니끼요.

그럼 난 누구인가요.

한 인간에게 identity는 매우 중요한 것 같습니다. 아마 자기 자신을 알고자 하는 욕구와 어딘가에 속하고자 하는 집단적 성향의 결과가 아닌가 싶습니다.

80-90년 대 외국에 살면서 한국인이라는 것이 창피한 적이 많았습니다. 80년 대에는 매일 뉴스에 한국인들이 최류탄을 맞아가며 대모하는 모습을 봐 왔고 90년 대에는 백화점과 다리가 무너지는 뉴스들을 봐 왔습니다. 세계사를 좋아해서 고등학교 때는 매년 세계사 수업을 들었는데, 그리스, 이집트, 유럽 등의 화려한 역사와는 달리 한국은 분단국가, 식민지 시대와 전쟁을 거친 동양 한 구석의 작은 국가일 뿐이었습니다.

한국에 있을 때는 단순히 “20대 여자” 그리고 “어린 여자 의사”라는 딱지를 달고 살았습니다. 한국 교육과 환경, 그리고 사회는 제가 어떤 사람인지 보단 제가 어떤 스팩을 갖고 있는지 궁금해 했고 그 정보를 바탕으로 저를 평가했습니다. 그래서 불행했습니다. 저는 제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었고 저라는 하나의 개체로 거듭나고 싶었습니다.

30대 중반에 제 자신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조금 웃기기도 하지만 이제야 제가 누군지 서서히 알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뭘 원하고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일에 괴로워 하고 슬퍼하는 지, 어떤 것들이 제 호기심을 자극하고 어떤 일들이 제게 성취감을 주는 지 이제서야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동양인이라는 것, 한국인이라는 것, 여자라는 것, 30대라는 것이 제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알아가고 있습니다. 아마 제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가는 과정은 평생 이어질 것 같습니다.

원칙주의자

인생의 일부는 내가 누구인지 알아가고 발견해 가는 과정인 것 같다.  갈수록 내 자신을 알아가면서 깨닫게 되는 건 난 상당한 원칙주의자라는 것이다.  아마 그래서 의학보단 법학을 훨씬 적성에 맞아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난 국적인 한국인이고 마지막 대통령 투표 때 이명박 대통령에게 내 한표를 행사하지 않았다.  절대로 내가 원하는 좋은 대통령이 되지 못 할 것이란 생각을 했고 선거공약 중 대부분을 지키지 못 할 것이라 생각했으며, social equality 보다는 가진 자들의 힘을 보호하는 대통령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대통령으로 뽑힌 후 단 한 번도 그를 이름만으로 칭하거나 동물에 비유하지 않았다. 

민주주의의 기본은 다수의 의견을 따르기로 사회적 합의를 한 것이다.  우리 편이 다수일 때는 민주주의를 외치고 남의 편이 다수일 때는 독재를 외치는 건 민주주의의 기본을 따르지 않는 것이다.  짧은 시간 안의 큰 변화는 박정희 대통령과 같은 독재자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리가 민주주의를 받아 들였을 땐 시간이 걸리더라도 사회적 합의를 통해 변화를 이루어 가기로 한 것이며 그 변화가 “내가” 원하는 변화가 아니더라도 이를 수긍하고 받아 들이기로 한 것이다.  만약 그 변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내가 원하는 변화를 이루기 위해 힘을 모이고 그 힘을 행사할 권리 또한 민주주의의 일부이다.

“우리”가 뽑은 대통령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합당한 처우를 해 주지 않는 것은 결국 우리의 민주주의에 침을 뱉는다는 생각에.  결론적으로 난 존경하진 않지만 인정을 하고 다음 기회를 기다린다.

얼마 전에 내가 보호하는 매사추세츠 주 법 중 하나가 날치기로 무효화 됐을 때 난 결과도 중요했지만, 날치기란 과정에 더 실망과 분노가 컸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 중 몇 명은 우리도 날치기로 통과하는 경우도 있고, 같은 방법으로 다시 원상복귀하면 된다는 말을 했고 날 절대로 그렇게는 못 한다 했다.  그들은 내가 아직 정치에 대해 잘 몰라서 그런 것이라 말 했고, 난 그딴 정치는 배우고 싶지 않다 했다.

그렇다고 내가 결과를 중요시 하지 않는 사람도 아니다.  종종 결과가 제일 중요한 것이라고도 말을 한다.  하지만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결과는 인정하고 싶지 않다.  갈수록 고지식 해 지는 것 같다. 

The Hybrid

매일 이 세상에서 나의 역할이 무엇인지 고민한다.  Put it in a different way, 나를 통해 무엇을 이루려 하시는 지를 생각해 본다.  아직 30대 초반이고 여태까지 한 고생보다 훨씬 더 심한 일들을 겪어야 하겠지만, 내가 뭘 해야 하는 지만 안다면 조금 더 쉬워지지 않을까 싶다.

사람들은 종종 날 하이브리드라 부른다.  이런 사람들은 내 학위들과 경력만 봐서 그렇게 얘기하는 것이지만, 실제로 나도 내 자신을 하이브리드라 생각한다.
한국인으로 태어나 한국 교육과 미국 교육을 받았고, 한국을 포함해 4개 국가, 3개 대륙에서 생활을 했다.  제공자 (의사, 병원 등), 지불자 (보험회사 등), 환자란 삼각형으로 형상화 되는 의료의 각 꼭지점에서 역할을 맡아 봤다.  강한 성격과 부드러운 성격의 극과 극인 성격의 부모님 밑에서 자랐고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 써야 내 자신을 완벽히 표현할 수 있다.  
하이브리드의 가장 큰 장점은 모든 것을 객관적으로 바라본 다는 것이다.  의견 불일치가 있을 경우 양쪽의 의견을 모두 이해할 수 있고 한 쪽 편을 드는 일은 거의 없다.  사실 이것이 가장 큰 단점이기도 하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편 가르기를 좋아하고 우리 편 너네 편을 만들어 경쟁하는 것을 좋아한다.  올림픽과 같은 스포츠 경기에서 뚜렷히 보이는 characteristics이다.  나도 우리 편이고 싶지만 우리 편이 무슨 편이지 잘 모른다.  이 쪽도 우리 편 같고 저 쪽도 우리 편 같다.  그냥…  내 편이 우리 편이다.

The Hybrid.  

Global Nomad

작년에도 Global Nomad란 포스팅을 올렸던 것 같은데..
오늘 인터넷으로 MBC 무릎팍 도사에 나온 추성훈편 재방송을 보면서 다시금 생각이 나서 주저리 주저리 써본다.

예전 파키스탄에서 다니던 학교에 주간이었는지 월간이었는지
학교 신문이 나왔었는데 (아직도 어딘가에 몇 부 갖고 있을 거다)
신문이름이 Nomad였다.
몇 년 동안 신문을 읽으면서도 왜 학교신문을 Nomad라고 부르는지에 대해 궁금해 하지 않았다.
10년이 넘은 지금에서야 이제야 이해가 갈 뿐더러 그 의미를 매일 곱씹어보게 된다.

간단하게 말하면 Global Nomad란 국적 이외의 국가에서 유년기 시절 다년간 생활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을 말한다.
내가 진정하게 “우리”라고 부를 수 있는 집단이다.
한국에 있으면 한국 사람이 아닌 것 같고
외국에 있으면 한국 사람도 외국사람도 아닌 그러한 존재들.
평생 나는 누구인가를 자신에게 되물어야 하는 존재들.

물어도 물어도 답은 나오지 않아.
그래서 더 앞으로 앞으로 달려가려고만 하는 건지도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