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부부로 살아가기

적절한 무관심

 

나는 2014년 몸이 완전히 망가진 직후 필라테스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 후로 일주일에 한 번씩 눈이 와도 비가 와도 (눈이 와도는 매우 literal한 표현이다 – 작년 겨울, 보스턴에는 엄청난 양의 눈이 왔다…) 출장이나 기타 여행을 가지 않는 이상 꼭 매주 한 번씩 개인 레슨을 받았다.

 

이 번 여름부터 회진 위주의 근무환경을 벗어나 사무직 환경에 편입된 남편도 근골격계 통증을 호소하기 시작했고, 작년 11월부터 필라테스를 시작하게 했다.

 

서로 진행속도가 다르므로 각자 따로 개인 레슨을 받고 있지만, 최근 2번 정도 커플 레슨을 받았다.

 

두 번째 커플 레슨을 끝내고 트레이너 Katy (여: 62세! 나를 제압하시는, no BS 여자 선생님)께서 그러셨다.

 

Katy: 둘은 같이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나: ?? 같이 못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Katy: 음… 내가 가장 처음 커플 트레이닝을 시작했던 부부 이야기를 해 주지… 서로 좋아했던 것 같기는 해요 (?? 부부였다면서요??). 그런데 어찌나 서로 간섭을 하고 서로 지적질을 해대던지. 내가 보다 보다 못해서 “내가 선생이다”라고 해야 했지. 그래도 결국 안됐어요. 당신들은 보아하니 서로 간섭을 안해서 괜찮을 것 같아요.

 

그렇다.

 

우리 부부는 잘 보면 서로 매우 사랑하고 서로에 대한 애정이 깊지만.

 

서로 간섭을 최소화 하려고 노력한다.

 

사실 내 성격상 내가 굳이 관여해야 할 일이 아니면 기본적 태도는

 

“I don’t care”이다.

 

알아서 먹고, 마시고, 자고, 싸고, 입고, 일하고.

 

필요하면 도와달라고 말하고, 도와 달라고 하면 최대한 성심성의껏 도와주고.

 

다 됐으면 빠져주고.

 

Space.

 

Giving each other room to breathe.

 

Respecting the other person’s personal life.

 

사생활의 존중.

 

부부 사이일지라도.

 

 

 

따끈따끈한 National Geographic이 도착했다. 새 editor in chief인 Susan Goldberg의 첫 에디션이기도 하다. Susan은 National Geographic 126년 역사상 첫 여자 editor in chief이다. 내가 아닌 남편이 이 에디션을 기다렸고 사진을 찍어 기록을 남기자고 했다. 남녀평등은 모든 사람의 사랑과 동의와 진정한 서포트로 이루어지는 것 같다.

 

남편은 나에게 종종 책을 읽어 준다. 항상 영어책이다. 남편은 미국에 처음 왔을 때 몇 주 동안 accent reduction 수업을 받았는데 내 생각에 한국에서 10-15년 동안 받은 영어수업보다 몇 배 도움이 된 것 같다. 당연히 한국인 액센트가 있지만 또박또박 자기 할 말을 나지막히 다하는 걸 보면 참 기특하다. 오늘은 책방에 가서 뉴욕타임스가 신간으로 발간한 책 4권을 사왔다. 지난 100-150년 동안 의학, 과학, 수학, 천문학 관련 기사를 주제별로 정리하여 책으로 출판하였는데, 거의 역사책 수준이다. 남편이 읽어준 기사는 에이즈가 처음 뉴욕에 에피데믹으로 발병한 1981년 기사와 CT가 처음 시험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1975년 기사였다. 꼭 베드타임 스토리를 듣는듯 했다. 참고로 1984년에는 어떤 의사/과학자가 2년 정도면 에이즈 바이러스 백신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단다… 한 달 정도 매우 행복할 듯 하다.

결혼은 특허출원 

요 몇주 남편과 대화를 나눠본 결과, 남편은 10년전 나에게 프로포즈를 특허출원 같이 생각했던 것 같다. 
사람들은 보통 특허란 특허권자만 특허를 사용할 수 있는 권리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 특허는 특허권이 있는 자 외의 사람들이 특허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배타적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다. 즉, 내가 사용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니라 남이 사용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간단하다. 
특허소송도 결국 
내가 사용할 수 있도록 해달라! 
라는 소송이 아니라
쟤가 내 특허를 무단으로 사용하고 있으니 막아달라! 손해배상을 해달라!
라고 소송을 하는 것이다. 
어쨌든 남편과 나는 내가 만 24살이던 해 만났고(지금 생각해 보면 완전 애기였다…), 기록에 따르면(실제로 남편이 프로포즈용으로 사용한 편지를 지금 손에 쥐고 있다) 남편은 내가 26살이던 해에 청혼을 했다. 
사실 나는 36살인 지금에서야 결혼이라는 것에 대한 마음의 준비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누군가와 “평생” 살기로 약속을 한다는 것. 
검은 머리 파뿌리 될때까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함께 할 것이란 약속. 
이제야 할 수 있을 것도 같다. 
What was I thinking 10 years ago?
I don’t know. 
I was in love. 
I wasn’t thinking. 
I thought everything was going to work out somehow. 
Life, as it turns out, is a bit more complicating than that. 
남편에게 물었다. 
아니 당신도 27살 밖에 안됐었는데,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나랑 결혼을 하자 한 것이냐. 
그냥. 
다른 놈에게 주기 싫었단다. 
즉. 나랑 평생 살아야겠단 생각보다는 배타적인 권리를 유지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나는. 
특허였나보다. 
(아직 특허는 expiration date가 있다는 얘기는 안해줬다.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해줘야지.)

나는 불 같은 존재이다.

좋게 이야기하면 열정이 넘치지만

때론 나조차도 나를 조절할 수 없을 정도의 열기를 내뿜는다.

대학교 때는 이 열기가 화(anger)와 우울증(depression)으로 표현되었던 같다.

남편을 만나고, 나이를 먹으면서 나의 불을 조절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나는 머리가 복잡하면 글을 쓴다.

지금처럼.

글을 쓸 때는 일목요연해야 하고, 일목요연하기 위해선 생각을 정리해야 하고,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선 불을 가다듬어야 한다.
말을 먼저하고 생각을 나중에 하던 버릇도 거의 없어졌다.

아무리 화가 나도 생각을 먼저하고 두세 단계 consequence를 생각한 후 말을 뱉는다.

장기와 비슷하다.

이건 변호사가 된 후 생긴 습관 같다.

어쨌든 불은 조절되고 있다.

그래도 가끔 내 flame이 폭발할 때가 있다.

나도 어쩔 수 없다.

그냥 그런거다.

내 flame이 타오르면 그 누구도 조절할 수 없다.

그냥 한국 중고등학교 수학여행에서나 볼 수 있는 캠프파이어 마냥 활활 무섭게 타오른다.

그나마 캠프파이어는 boundary가 있지만

나는 한번 무섭게 타면 나도 내 범위를 잊을 때가 있다.

Like a wild fire.

Out of control.

오늘 남편에게 물어봤다.

그럴 때 내가 남편을 아프게 하지 않냐고.

“기분이 좋지는 않지.”

“근데 왜 가만히 있어?”

“그냥 재가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니까.”

남편은 내가 더 이상 타오를 것이 없을 때까지 항상 기다리고 있었나보다.

생각해보면 우린 싸운적이 없다.

항상 내가 활활 타오른 후 재가 되어 쓰러지면

남편 품에서 다시 조그마한 불씨로 타오르기 시작했던 것 같다.

나의 토양이자 풀밭 같은 남편이

이제 내일이면 보스턴으로의 여정을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