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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10주년 갈라파고스 여행 후기 – 부부관계편

열흘 간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화요일 이른 오후. 하루종일 밖에서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이런 날은 밀린 신문도 읽고 책도 읽고 생각을 정리하기에 딱입니다.

좋은 여행이었고 많은 생각을 했기에 글을 많이 쓰고 싶지만, 여기선 그냥 저희 부부 사이에 있었던 발전(?)에 대해 적고 싶습니다.

우선 열흘 동안 누군가와 하루종일 붙어 있으면 안 싸울 수 없습니다. 이는 부모.자식, 친한친구, 금술 좋은 부부, 모두 다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며, 저희도 여행 중 종종 투닥거리며 싸움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번 여행 동안에는 다음을 배웠습니다:

 

  • 싸움이 더 커지기 전에 상황을 마무리하는 방법: (a) 한쪽이 양보한다; (b) 웃으며 넘긴다; (c) 그냥 서로에게 space를 준다.

 

  • 상황이 정리된 후에는 왜 싸움이 시작됐는지에 대해 대화를 나눴습니다. 예를들어 이 번 여행을 통해 원래 욱하는 성격과 조급함이 있었던 제가 매우 놀라운 여유로움을 보였고, 반대로 남편이 제가 봤을 때는 조급할 정도의 빠릿빠릿함을 보여 부딪히기도 했습니다. 여행 마지막날 보스턴 공항에서 짐을 찾으며 대화를 한 결과, 남편은 자신이 여행하는 과정에서 도움을 주고 자신의 역할을 하고자 한 것이었고, 저는 제가 기존 너무 type A였던 것을 완화하려고 했던 것이 만난지 12년 반이 지나 서로 성격상 엇갈려 버린 것이었습니다. 이제 서로를 이해했으니… 결론은 — “그냥 각자 지멋대로 살도록 냅두기”로 했습니다.

 

  • 위의 1번의 (c)에서 이야기한 space는 상당히 중요했습니다. 아무리 함께 간 여행이어도 중간 중간 각자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했고, 중간 중간 따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남편 혼자 새를 보러 가기도 했고, 저 혼자 책을 읽거나 신문을 읽거나 그냥 늦잠을 자기도 했습니다. 뭐든지 함께 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니 서로에 대한 부담이 줄고 여행이 더 편해졌습니다.

 

  • 그래도 여행 끝에는 가족들을 위한 선물을 사기 위해 제가 남편을 끌고 다니긴 했고, 남편이 몸이 좀 안 좋았습니다. 돌아오는 24시간 여정 동안에는 남편이 몸이 안 좋아서 서로 care를 해줬습니다. 부부이고 가족이긴 하니, 서로에 대한 배려와 care는 필수라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여행 중 인터넷이 매우 느린 와중에 제가 일을 해야 했습니다. 다들 해지는 모습을 보기 위해 바닷가로 나가 늦은 오후를 즐기는 와중에 저는 인터넷과 씨름을 했더랬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남편은 그 사이 잠시 동네 성당에 들어가 저를 위해 기도를 해줬다고 합니다. 남편은 무신론자입니다. 무슨 기도를 했냐고 했더니. 처음에는 기도가 있었나보긴 합니다. 그러나 이내. 무엇인가를 신에게 바라는 기도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그냥 알아서 하시던 대로 해주세요.”

 

라고 말하고 돌아왔다고 합니다.

 

항상 실수하고,  잘못하고,  죄 짓고 사는 인간이기에. 그래서 더 열심히 살아야 하고, 뉘우쳐야 하고, 다시는 같은 잘못을 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는 인간이기에.

 

남편이 저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기도였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부부는 이렇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도전, 기회 그리고 대가

우선 남편 소식에 축하해 주신 많은 분들 감사합니다.

남편과 저 둘 다 많은 분들께서 축하해 주셔서 매우 감사한 마음으로… 주말 내내 음주 (저 혼자) 가무를 즐겼고 (재미 없었던) 수퍼볼 50을 즐겼습니다.

저는 요즘 일도 너무 바쁘고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있어 뇌가 너무 산만합니다. 이럴 때가 있습니다. 자면서도 뇌가 쉬지 못 할 때가. 혼자 살 때는 정말 괴로웠는데, 남편과 있으니 남편이 잘 시간이 되면 그냥 온몸으로 저를 껴안고 제발 자라고 말을 하면 신기하게도 잠이 옵니다. 그래서 짝이 필요한가 봅니다.

일도 일이지만 벌써 갓 지은 새 집을 팔고 실리콘벨리/스탠포드 병원 주변에 새 집을 찾아보고 이사 준비를 시작하고 있어 일이 두 배입니다.

 

오늘 저는 저희 프랙티스 그룹 헤드 파트너께 실리콘벨리 사무소로 이동하겠다고 공식적으로 말씀 드렸습니다. 이미 멘토들께는 개인적으로 말씀드렸고 어떻게 할 지 고민 중이라고, 아직 로펌 내에 소문은 내지 말아 달라고 부탁 드렸었고(모두 비밀을 잘 지켜 주셨습니다) 오늘 드디어 공식적으로 coming out을 한 셈입니다.

I am going to the West Coast. For real.

이쁜 새 집은 어떻게 하냐고 여쭤 보신 분들이 계셨는데요.

아깝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집은 그냥 집일뿐입니다.

저는 집보다.

보스턴이란 도시를 떠난다는 것이 더 traumatic하고 상심 큽니다. 어떤 분들에게 보스턴은 고리타분하고, 작고, 맛있는 한국음식이 별로 없는, 날씨만 춥고 눈이 많이 오는 도시일지 몰라도. 저에게 보스턴은 제가 뼈를 묻을 것이라 다짐했던 도시입니다. 이 도시를 떠나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심장이 배로 꺼지는 듯한, 심장이 찢어지는 듯한 아픔이 느껴집니다.

저는 2008년에 보스턴 로건 공항에 도착했을 때 게이트를 나오면서 이 도시가 제 도시라는 강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는 보스턴 이전 이미 30 곳이 넘는 전 세계 도시를 지나쳐 온 후였고, 그냥 지구를 떠도는 nomad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즉, 어느 한 곳에 정착해서 살 것이란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보스턴 도시 중심도 아닌 공항 게이트에 들어오면서 “이 곳은 나의 집이다”라는 생각을 했더랬습니다.

당시에는 제가 보스턴 대학 학생도 아니었고 보스턴 대학으로 편입을 결정하기도 전이었습니다. 그냥 남편과 일주일 관광을 온 것일 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곳이 제 집이란 느낌이 들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8년이 지났고, 저는 8년 동안 이 도시를 제 집, 제 고향으로 만들었습니다. 실제로 집을 지었고, 커리어 네트워크가 생겼고, 친구들이 생겼고, 직장이 생겼고, 가족과 같은 직장동료들이 생겼습니다.

남편은 “미국”이 아닌 “보스턴”으로 오기 위해 지난 9년간 노력했고, 결국 작년 6월에 보스턴에 입성했습니다. 이 모두, 제가 보스턴을 벗어나지 않겠다는, 제가 보스턴에 뼈를 묻겠다는 굳은 의지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남편은 원래 내년에도 현재 근무하고 있는 하버드 의과대학 계열 병원인 Beth Israel Deaconess에서 1년 더 전임의로 일 할 계획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 주변병원에서 자리가 나지 않으면 보스턴에 남아 있기 위해 병원을 떠나 개원가로 나와 일을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All because I was so much in love with Boston. 저는 보스턴은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그런데 12월 말. 스탠포드 병원 신경과에서 남편이 전공하고 있는 분야를 키우고 있으니, 그 분야에 지원할 전문의를 찾는다는 이메일이 현재 남편의 보스 교수님께 전달이 됐습니다. 참고로, 남편이 전공하는 분야는 흔하지 않은 분야로 그만큼 병원 교수자리가 잘 나오지 않는 분야이기도 합니다.

남편은 제게 그 이메일을 보내줬고.

근무 중 이메일을 받은 저는. 정말 3초간 고민 한 후 남편에게 답장을 보냈습니다.

“지원하자.”

저는 제 이메일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었는지, 그 결과가 어떻게 될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제 이메일은, 만약 남편이 스탠포드로 가게 될 경우, 저 또한 보스턴을 떠난다는 의미였습니다.

그렇게 한, 할 수 있었던 이유는..

1. 기회는 쉽게 오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회가 왔을 때 잡아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꼭 해리포터에서 해리가 키디치 경기를 할 때 잡아야 하는 날개 달린 스니치를 잡는 것과 비슷하다고 매 번 느낍니다. 우선 그것이 스니치인지 알아야 하고, 스니치는 보이자 마자 잡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상대편도 이 스니치를 노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2. 그러나 인생은 해리 포터와 같은 소설이 아닙니다. 스니치를 잡을 경우. 스니치와 동등한 무엇인가를 포기해야 합니다. 저는 이를 대가(price)라고 생각합니다. 이 경우. 저는 제가 그토록 사랑하는 보스턴이란 도시를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자신의 고국. 고향. 가족. 직장. 모든 것을 저를 위해 포기해 줬습니다. 이 번 한 번. 저는 보스턴을 포기해 줄 수 있었습니다.

 

 

You can’t have everything.

남편은 스탠포드 의과대학의 교수로 발령을 받게 되었고, 저는 그 대신 제가 사랑하는 보스턴을 그 대가로 지불해야 했습니다.

 

 

 

 

저희 새집으로 돌아가자면.

집. 차. 돈. 기타 물건들.

이것들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들인 것 같습니다.

집이야 돈을 또 모아 사거나 지으면 되고, 차야 돈 벌어서 또 사면되고, 돈이야 더 열심히 일해서 벌면 되지만.

그리고 돈이 안 모이면 그냥 안 짓고 안 사면 되는 거지만.

기회는 순식간에 왔다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이고.

사람.

사람은 쉽게 얻을 수 없으나, 한 번 얻으면 평생 간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남편.

저와 12년 동안 함께 있으면서 남편이 처음으로 원했던 것은 저희가 결혼한 후 제가 유학을 가는 것이었고 두 번째로 원했던 것은 스탠포드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별로 많은 것을 원하는 사람이 아니기에.

He should get what he wants.

But everything has a price.

 

제 남편 스탠포드 교수됩니다!

제가 남편 자랑을 좀 합니다. 저도 잘 압니다. (남편바보)

그것도 그럴 것이.

남편은 저를 위해 영어도 못하면서 30대 중반에 한국을 떠나 미국에서 인턴.레지던트를 또 다시 한 번 한 사람입니다. 

저도 임상의사 안하고 변호사 하겠다고 했을 때 꽤나 욕 먹었지만, 남편도 여자 따라 미국 온다고 했을 때 욕을 바가지로 먹으면서 미국에 왔습니다. 

저 (사람) 변호사 만들어 보겠다고 뒷바라지 하느라 9년 생고생하고 작년에야 결혼한지 9년 반 만에 살림을 합쳤습니다.

저희 남편.

그렇게 고생한 끝에.

정말 혼자 힘으로.

 스탠포드 의과대학 신경과 교수 됐습니다. (경축!)

정말입니다. 지금 마지막 계약서 작성하려고 이메일 오고 가고 있는데 자꾸만 저쪽에서 Welcome to Stanford!! Welcome to Stanford!! 해서 이제는 진짜구나 싶습니다.

남편이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우리 남편 짱!) 

저는 아직 정해진 것은 없지만.

간다면.

바이오의 또 다른 허브인 Bay Area와 스타트업의 중심인 저희의 실리콘벨리 사무소로 이동하게 될 것 같습니다.

Girl’s dream, no? 보스턴과 실리콘벨리에서 스타트업을 모두 경험해 볼 수 있는 변호사라니. 

세상은 정말 오래 살고 볼 일입니다.

병신년. 잊지 못 할 한 해가 될 것 같습니다.

남편! 우리 어디까지 가나 보자!!! 

To be continued!!

결혼 10주년 절대반지 1호 도착!🎉🎉

 

사실 저희는 결혼예물을 안했습니다. 양가 부모님의 배려가 컸습니다. 너무나도 감사합니다.

물론 저희 또한 욕심이 없었습니다. 큰 결혼식에 대한 환상이 없었고 돈도 없었습니다. 게다가 제가 유학준비까지 하고 있었던지라, 돈이 매우 귀했습니다.

그래서 남편에게 밴드반지 하나 받은 것이 끝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밴드도 보스턴으로 이사오면서 제가 분실했습니다. 사실 도둑을 맞았는데, 누가 훔쳐갔는지 거의 100% 알 것 같긴 합니다. 남편은 안타까운 마음에 결혼 3주년 기념으로 작은 반지 하나를 사줬고 여지껏 그 반지를 껴왔습니다.

결혼 10주년을 맞아 제가 욕심을 부려 반지를 사겠다고 했습니다. 반지를 끼고 있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다는 것을 지난 10년 동안 배웠습니다. 반지를 끼고 있다고 해서 덤비는 놈 없는 것 아니고, 제 마음 가짐이 반지 하나 때문에 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노력과 반성과 노력의 건강한 반복이 결혼의 일부여야 한다는 것은 배웠습니다.

So as a reminder to where we came from.

우리는 성장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증명(?).

결혼도 여정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