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생각들

Born this way – 어른이 되어가다

어저께 Lady Gaga 공연을 보고 지난 한달, 두달. 어쩌면 캘리포니아로 이사온 후. 친정 로펌, 마음의 고향, 뻐를 묻으려 했던 보스턴을 떠나 방황하며 우울하게 지냈던 1년을 마감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서 난 소속감을 느끼지 못한다. 보스턴, 롭스 앤 그레이에서 난 처음으로 소속감을 느꼈다. 나를 나로 받아 들여주는 도시, 동네, 직장을 찾았었다. 어쩌면. 그것이 사실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그들이 나를 받아들여 주길 간절히 원했고, 그래서 내가 받아들여 지고 있다고 내가 상상했던 것일수도 있다.

새 로펌, 캘리포니아. 이곳은 내가 이전에 살아본, 일을 해본 그 어떤 곳보다 나에게 자연스러운 곳이다. 나와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이 넘쳐나고, 생긴 것을 둘째치고 자유분방한 자들의 도시이기에, 나는 나일 수 있다. 직장에 있어선 불만있을 수 없다. 완벽하다는 것이 아니라, 이 정도면 내가 가질 수 있는, 내가 11년전 유학길에 올랐을 당시, 이 모든 것을 가질 수 있을거라 누군가 이야기 해 줬다면 뻥치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뒤돌아 섰을 법한 위치, 지식, 경험, 경력을 쌓았고 쌓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가진 것에 비해 감사하지 못하고 있다.

내가 원했던 것이 아니니까.

엄청난 고급 음식을 내 입에 누군가 떠먹여 주고 있음에도, 난 그냥 먹어야 산다는 생각으로 그 맛을 음미하지 못하고, 씹지도 않고 꿀꺽꿀꺽 삼키고 있을 뿐이다.

얼마나 바보 같은 일인가.

주제를 바꾸는 것 같지만, 읽다보면 이야기가 돌고 돌긴한다.

진리가 너를 자유케 하리라(요한복음 8장; Truth shall set you free).

내가 변호사를 하면서 깨달은 것은. 세상은 3가지 진리, 또는 truth가 존재한다.

1. 나의 진리, 2. 너의 진리, 3. 진정한 진리.

진리(truth)와 fact는 다르다. 진리는 여러 fact가 모여 하나의 truth가 된다.

3번 truth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그렇다면. 나는 언젠가 자유롭게 될 것인가, 그렇지 못할 것인가?

철학적인 질문 같이 생각될 수도 있지만, 사실 일상적 생활에서 위의 내용을 반영하기 시작하면, 삶이 편해지기도 하고 참 의미 없어지기도 한다.

예컨데.

현재 400억 주식부자라고 언론을 통해 알려졌던 한분이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알려졌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최근, 그 400억 주식부자란 사람이 진짜 주식부자가 아닐 것이란 의혹을 제기했던 분 조차 진실을 알리지 않았단 의혹이 제기되어 온갖 사람들이 즐거운 인테넷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알고 있다.

그들에겐. 그들만의 진리/진실이 존재한다. 무엇이 진정한 진리/진실인지 우리는 절대 알지 못할 것이다. 특검조사를 할지라도(한다는 것/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예컨데 할지라도), 특검은 법리라는 시스템에 맞춰, 특별검사들의 논리에 맞는 진리/진실을 찾아낼 것이다.

난 한동안 혼자 글을 썼다. 사실 끄적거렸다는 것이 더 맞는 이야기다. 끄적거리고 마무리를 짓지 못하는 글들이 대부분이었다.

무엇이 진실인지 나조차 몰랐던 것 같다.

내 자신에게 충실하지 못한 글이었던 게다.

나는 즐거워야 하고, 나는 행복해야 하는데. 나는 즐겁지도, 행복하지도 않았던 지난 1년 동안의 글들이 갈 방향을 찾지 못하고 draft 형태로 여기저기 널부러져 저장만 되어 있었던 것이다.

Lady Gaga 공연 한번으로 모든 것이 바뀌진 않는다. 바뀔 순 없다.

단. 내 자신에게 솔직해질 수 있는 용기? 자신감? 필요성. 의무감. 최소한 난 나에게 솔직해야 할. I owe it to myself?가 있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캘리포니아나 지역의 이동, 이직을 핑계 삼고 싶지도 않다.

나도 이젠 기성세대가 되어가고 있음을 인정해야 하고, 그 사실을 인정하는 과정 자체도 사실 큰 변화 중 하나다. 어쩌면 인생의 전환점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했다는 것이 더 큰 충격으로 다가왔는지도 모른다.

더 많은 것이 보이고,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고, 더 많은 것을 이해하게 됨과 동시에, 내 신념과 믿음, 생각은 쉽게 변하지 않는. 그런 나이가 되어 버린 것이다.

기성세대.

여자 아재. 아지매?

나이가 드는 것은 문제가 아닌데. 나에게 힘든 건, 어른들의 협소한 생각, 이기주의, 냉소함, 억지주장, 사악함, 서로에 대한 미움들이다. 내가 그렇게 될까봐, 그런 문화에 물들까봐. 나의 이기주의, 냉소함, 화, 사악함이 더 심해질까봐. 사실. 3번 진리/진실은 나 또한 다른 어른들과 차이가 전혀 없다일 수도 있다. 내가 쓸데 없는 걱정을 하고 있는 것일 수도.

그래서 한동안은. FB보단 책, 긴 글들을 더 많이 읽고, 글도 블로그에 더 많이 쓸까한다.

잃어버린, 어른이 되어 가는 나를 찾아서.

역사의 반복

1. 국정원 댓글사건이 갑자기 생각났는데. 찌라시 언론에 휘둘리는 것도 모자라 국정원이 됐든 초등학생이 됐든, 누군가의 댓글에 휩쓸려 투표를 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은 한국이 과연 교육수준은 높으나 “생각”할 줄 아는 집단으로 이루어진 공간인지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2. 외부에서 봤을 때 현재 남한은 안보적으로 매우 위태로운 상황이다. 물론 이는 박가가 하고 싶어하는, 듣고 싶어하는 말일테고 그래서 모두 집에서 조용히 자기 할 일하고 자기 자리로 돌아가라고 하고 싶겠지만, 그건 아니다. 당신이 저질러 놓은 일이므로, 돌아서서 다른 이들에게 가만히 있으라 할 권리는 당신에게 없다. 국정원도 마찬가지다. 국가의 안보를 책임져야 할 집단이 국가의 안전과 안보를 이렇게 위태롭게 만들었으니 (그것도 댓글로??) 참 아이러니하고 씁쓸하다.
3. 한 때 계염령 이야기가 나왔으나 참 계엄령 같은 소리하고 있네라 생각했었다. 아버지 박가에 대한 책을 읽고 있는데 쿠테타 당시 기록에 따르면 박가에 저항하는 세력 또는 마찬가지로 쿠테타를 일으키려 했으나 국가 안전을 위해(쿠테타는 보병이 아닌 무기로 밀어 부쳐야 하므로 front line 부대들이 필요/유리한데 전선 부대들이 서울로 들이닥칠 경우 전선이 비게 되므로) 결국 그들은 “가만히 제자리를 지켰고” 그 후 박가에게 무영장으로 체포되어… 그 후에 대한 기록은 내가 읽고 있는 책엔 없지만 개인적으로 아는 분들이 있어 개인가족사로 이야기를 들은 바 있다. 결국,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 군을 움직여 나라의 안전을 완전히 위협시키겠다는 발상은 도대체 어디에서 왔을 수 있는지(만약 그러한 생각을 조금이라도 했다면) 알 수가 없다.
4. 남한은 현재 그 지리적 위치 덕분에 이 난리 난리를 북한, 중국, 일본 사이에서 아직까지는 평화시위를 통해 풀어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뻔한 이야기겠지만. 남한의 많은 역사는 결국 그 지리적 위치 때문에 파생된 것들이 참 많다. 또한 그 긴 역사에 비해 좋은 지도자를 만난적이 참 손에 꼽을 정도로 빈약하다.
5.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지금의 국가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순히 지리적 위치나 우연은 아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난 그것이 주님의 축복이 있었기에(난 카톨릭이다), 한민족이 위대하기 때문에, 또는 원래 benevolent한 독재와 어느정도의 corruption은 소금과 후추마냥 뿌려줘야 국가가 성장할 수 있는 것이기에 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지난 10년 간 신문과 경제.경영 관련 서적을 매우 많이 읽었다면. 앞으로 10년은 역사서적을 참 많이 읽을 것 같다. 생각보다. 역사는 정말 많이 반복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미국 전문직 종사자 – 영어 이름 가져? 말어?

끊임 없이 영어 이름을 가져야 할 지 말아야 할 지에 대해 질문해 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오늘, 지금 현재 제 생각을 적어볼까 합니다. 생각은 변하는 거니까. 내년, 아니 내일 제 생각이 변할 수도 있습니다.

우선 제키가 영어이름 같긴 하지만 Jekkie는 티피컬한 영어이름이 아닙니다. 원래 재키(not 제키)는 Jackie로 재클린의 닉네임입니다. 실제로 우리가 흔히 듣는 영어이름들은 제대로 된(?) 영어이름을 줄여서 부르는 그 나름대로의 닉네임입니다.

Rob나 Bob는 로버트를 줄여서, 빌은 윌리엄을 줄여서, 존은 조나단이나 존슨 등을 줄여서(존은 사실 여러 다양한 이름의 닉네임입니다), 딕은 리차드를 줄여서, 닉은 니콜라스를 줄여서 부르는 이름입니다. 마찬가지로 여자이름에선 케이트는 캐서린을 줄여서, 브리는 브리아나를 줄여서, 제니는 제니퍼를 줄여서 닉네임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 이름의 경우 구글에 Jekkie Kim 또는 Jungeun Jekkie Kim으로 검색하시면 저 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즉, 저 같은 스펠링을 사용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사람들 중엔 제 이름을 보면 어떻게 발음해야 하는지 몰라 당황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있습니다. 스타벅스에서 제 이름을 제대로 커피잔에 쓴 적이 거의 없습니다. 클라이언트 중에도 “네 이름을 어떻게 발음해야 하느냐?”고 물어보는 사람들도 있고, 사실 제키인데 재키로 발음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후자의 처음에는 상당히 불쾌했으나 이젠 I don’t really care입니다. Actually, as a matter of fact, call me Jim, Bob, Charlie, I don’t care. Why? 상대방의 이름을 제대로 부르려고 노력하지 않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대충 이제는 알게 되었고 그런 사람에게 제 에너지를 낭비하고 싶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과 통화를 끝내고 나면 때론 제3자가 대신 사과해 주는 경우도 있습니다(예: 제키야… 자꾸만 저 사람이 너를 재키라고 부르더라… 미안하다…). 그런 분은 정말 함께 일하고 싶은 분이고 그런 과정에서 누가 내 친구이고 누구와 더 친하게 잘 지내야 하는지도 알게 됩니다. So all is not a lose. 한 편으론 제가 제 자신에 대한 아이덴티티가 강해져서 그런 것도 있고 자신감과 자부심이 강해져서 그런 것도 있는 것 같습니다. 저와 일을 하는 사람들이 제 이름을 제대로 불려줘야 하는 상황이 되어가는 것도 분명 있습니다. So I don’t care. 저는 제 이름이 있고, 제 소개를 하고, 제 이름을 제대로 발음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상대측의 책임입니다. (여담이지만, 이제는 “내가 김정은이다! 북한 김정은이가 여자이름을 갖고 있다! 내가 누나다!”라고 칵테일 파티에서 이야기하는 것도 정말 재미있습니다. ㅎㅎㅎㅎㅎㅎㅎㅎㅎ)

그러므로 “영어이름”이란 것이 필요한가에 대한 질문을 할 때에는 과연 “영어이름”이 존, 잭, 밥, 에이미, 케이트 등의 티피컬한 서양이름인지 그냥 영어로 발음하기 쉬운 알파벳으로 된 이름인지를 우선 구별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남을 위해서 이름을 짓기 보단 자신을 위해서 이름을 짓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자신의 이름이 불릴 때 어색하다면 what’s the point? 우린 반려견도 아니고 반려 고양이도 아닙니다. 이름은 나를 대표하는 것이고 내가 원하는 이름을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진정 자신이 원하는 상황에서 원하는 이름으로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참고로, 제 남편은 5년 조금 전에 미국에 왔습니다. 영어이름을 만들까는 7년 전부터 고민했던 것 같은데 그냥 자신의 이름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여러 이름을 고민해 봤지만. 남편은 그냥 신동인이 가장 잘 어울립니다. 다들 처음 만나면 토니냐고 묻습니다. 그래서 아니다 동인이다라고 이야기하면 정말 혼란스러워합니다. 그래도 배울 사람은 다 배웁니다. 물론 못 배우는 사람은 못 배우지만.

지루함

항상 수많은 감정들 속에서 헤엄치고 있다는 기분이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지루함”을 느낀 것은 기억나지 않는다. 물론 그렇다고 항상 좋은, 긍정적인 감정만 갖고.느끼고 사는 것을 절대 아니다. 반대로 시간에 쫒겨 화장실에 제대로 가지 못할 때도 있다. 그러나 “지루함”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은. 최소한 나에겐 시간이란 자산을 net positive로 활용 또는 투자할 수 있는 방법을 나름 터득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시간은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가장 공평한 자산이라 생각한다. 이 자산을 어떻게 활용할 지에 대한 엄청난 고민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가면 갈수록 깨닫고 있다. 

나도 때려치고 싶을 때가 있다

아무리 일이 재미 있다고 해도. 나도 인간이다. 나도 더럽고 치사해서 당장 때려치고 싶단 생각을 할 때가 있다.

1년 차 때는 일과 스트레스가 공포스러워서 때려치고 싶었다. 오금이 저리단 표현이 뭔지 알 것 같았다. 의사 인턴을 하면서 느꼈던 것과는 달랐다. 의사는 깨지고 혼나는 일들이 분명 많고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든 건 매우 매우 비슷한데. 그리고 오히려 타인의 생명이 오고가는 상황에서 근무하는 환경이 더욱 더 스트레스풀 해야 할 것 같은데. 따옴표와 맞춤표와 문법과 싸우는 것도 상상외로 스트레스풀 할 뿐만 아니라, 그 이상으로 공포스럽기까지 했다.

그래서 정말 1년차 시작 후 3개월 만에 다른 직장을 조심스럽게 알아보기 시작했었다. 나는 로펌 변호사가 적성에 맞지 않나보다 생각하고 조용히 퇴사준비를 시작했던 것이다.

그 때 퇴사를 하지 않았던, 못했던 이유는. 지금의 멘토님들을 만났기 때문이고, 사랑을 받으며 쑥쑥 자랐고 일이 재미있다는 것을 배웠고, 내가 이 일에 실력이 있다는 것을 뒤늦게 배웠기 때문이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초반에 내가 내 공포를 버텨내지 못했다면, 멘토를 만나지 못했다면, 내 적성에 맞는, 내가 지금 이 토록 사랑하는 일을 할 기회를 놓쳐 버렸을 것이다.

그렇다고 매일 매일이 파랑새가 노래하는 찌루찌루의 꿈나라는 절대 아니다. 내가 하지도 않을 잘못 때문에 꾸중을 들을 때도 있고, 내가 비난을 받을 때도 있으며, 내가 생각하기에 내가 받아야 할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경우, 내가 함부로 대해지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물론 이렇게 써놓으면, 대체 어떤 대접을 받고 싶어서 그러느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내가 바라는 것은 항상 최소한의 예우이다. 난 분명 돈을 받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서비스 프로바이더다. 그러나 그렇다고 돈을 준다고 굽실굽실해야 하는 사람은 아니다. 아무리 돈을 많이 던져줘도 나는 몸을 파는 사람이 아니란 말이다. 내가 변호사가 됐든, 아파트를 경비 아줌마가 됐든, 인간으로 최소한의 받아야 할 예우가 있고, 그 예우를 받지 못했을 때 나는 때려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다고 더럽고 치사해서 내 커리어를 때려칠만큼 내가 욱하는 사람은 아니다(…라고 믿고 싶다… ㅡ_ㅡ;;).

나는 최소한. 돈 때문에 움직이는 사람은 아니다. 반대로 돈 때문에 로펌에 남을 사람도 아니다.

난 내가 가장 인간적으로, 나라는 사람으로 행복하게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결혼 10주년 갈라파고스 여행 후기 – 부부관계편

열흘 간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화요일 이른 오후. 하루종일 밖에서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이런 날은 밀린 신문도 읽고 책도 읽고 생각을 정리하기에 딱입니다.

좋은 여행이었고 많은 생각을 했기에 글을 많이 쓰고 싶지만, 여기선 그냥 저희 부부 사이에 있었던 발전(?)에 대해 적고 싶습니다.

우선 열흘 동안 누군가와 하루종일 붙어 있으면 안 싸울 수 없습니다. 이는 부모.자식, 친한친구, 금술 좋은 부부, 모두 다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며, 저희도 여행 중 종종 투닥거리며 싸움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번 여행 동안에는 다음을 배웠습니다:

 

  • 싸움이 더 커지기 전에 상황을 마무리하는 방법: (a) 한쪽이 양보한다; (b) 웃으며 넘긴다; (c) 그냥 서로에게 space를 준다.

 

  • 상황이 정리된 후에는 왜 싸움이 시작됐는지에 대해 대화를 나눴습니다. 예를들어 이 번 여행을 통해 원래 욱하는 성격과 조급함이 있었던 제가 매우 놀라운 여유로움을 보였고, 반대로 남편이 제가 봤을 때는 조급할 정도의 빠릿빠릿함을 보여 부딪히기도 했습니다. 여행 마지막날 보스턴 공항에서 짐을 찾으며 대화를 한 결과, 남편은 자신이 여행하는 과정에서 도움을 주고 자신의 역할을 하고자 한 것이었고, 저는 제가 기존 너무 type A였던 것을 완화하려고 했던 것이 만난지 12년 반이 지나 서로 성격상 엇갈려 버린 것이었습니다. 이제 서로를 이해했으니… 결론은 — “그냥 각자 지멋대로 살도록 냅두기”로 했습니다.

 

  • 위의 1번의 (c)에서 이야기한 space는 상당히 중요했습니다. 아무리 함께 간 여행이어도 중간 중간 각자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했고, 중간 중간 따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남편 혼자 새를 보러 가기도 했고, 저 혼자 책을 읽거나 신문을 읽거나 그냥 늦잠을 자기도 했습니다. 뭐든지 함께 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니 서로에 대한 부담이 줄고 여행이 더 편해졌습니다.

 

  • 그래도 여행 끝에는 가족들을 위한 선물을 사기 위해 제가 남편을 끌고 다니긴 했고, 남편이 몸이 좀 안 좋았습니다. 돌아오는 24시간 여정 동안에는 남편이 몸이 안 좋아서 서로 care를 해줬습니다. 부부이고 가족이긴 하니, 서로에 대한 배려와 care는 필수라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여행 중 인터넷이 매우 느린 와중에 제가 일을 해야 했습니다. 다들 해지는 모습을 보기 위해 바닷가로 나가 늦은 오후를 즐기는 와중에 저는 인터넷과 씨름을 했더랬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남편은 그 사이 잠시 동네 성당에 들어가 저를 위해 기도를 해줬다고 합니다. 남편은 무신론자입니다. 무슨 기도를 했냐고 했더니. 처음에는 기도가 있었나보긴 합니다. 그러나 이내. 무엇인가를 신에게 바라는 기도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그냥 알아서 하시던 대로 해주세요.”

 

라고 말하고 돌아왔다고 합니다.

 

항상 실수하고,  잘못하고,  죄 짓고 사는 인간이기에. 그래서 더 열심히 살아야 하고, 뉘우쳐야 하고, 다시는 같은 잘못을 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는 인간이기에.

 

남편이 저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기도였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부부는 이렇게 성장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