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미국 로펌 생활

캘리포니아 바시험을 준비하며 

캘리포니아 바시험 공부를 하며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우선. 체력이 예전 같지 않다. 운동도 많이하고 근력도 좋다지만 고등학교, 대학교, 하물며 로스쿨 때만 못하다. 쉬엄쉬엄, 천천히 할 수 있는만큼 하고 있다. 
여전히 스트레스를 받으면 잠이 많다. 신생아 수준으로 자는 날도 있어 남편이 놀란다. 나도 놀랍다. 

악몽을 꾸는데, 오늘 아침엔 잠을 하도 자서 시험 전날 저녁에 깼는 꿈을 꿨다. 아직 진도도 다 못 뺀 상태에서 시험공부용 책이 든 가방을 어디다 두고 집에 온 설정이었는데, 로펌 후배 왈, 가수 “비”씨가 그 가방을 의대 “과방”에 가져다 두었다는 것이다(나는 “비”씨 노래 중 제대로 아는 것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그 분을 잘 모른다… 최근 결혼 축하 드린다). 

그래서 이과대학에서 의과대학으로 걸어가는데 갑자기 이콰가 반원을 그리고 합창을 시작했다. Soo Jeong Kim 왜 그곳에 있었을까. 

어쨌든 이런 악몽들을 꾼다. 

그래도. 2010년 뉴욕.매사추세츠 바시험을 준비할 때보단 상당히 인간다워졌다. 

남편에게 성질도 훨씬 덜 부리고 밤낮도 거의 안 뒤집어 졌으며. 마음이 편하다. 나이 때문일수도 있고. 경험이 쌓인 것일 수도 있고. 그냥. 그냥 이젠 나도 사람이 변한 것일 수도 있고. 

시험 공부를 하면서 재미도 있지만. 

법이란 것이 이렇게 현실적으로 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는건데. 이렇게 망나니 대통령이 들어와도 법체계가 사회를 보호할 수 있는건데. 

그렇지 못할 경우 피해 보는 것은 마찬가지로 개인 하나 하나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고 10-15분에 한 번씩 책을 내려놓고 한숨을 쉰다. 

정치인들을 잘 뽑아야 하는 이유. 입법체계가 강해야 하는 이유는. 그들이 법을 쓰기 때문이다. 

미성년자 성폭행. 

장애인보호. 

옥시와 같은 제품으로 부터 소비자 보호. 

이 모든 것은 사법부가 아닌 입법부. 즉 정치인들로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이고. 

현재 한국의 법이 국민을 제대로 보호해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인데. 

바시험 강의해 주시는 교수님들의 농담에 웃으면서. 혼자 울면서. 마음 아파 하면서. 

그러면서 캘리포니아 바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Standing Ground / Do Your Job

나는 고집이 센편이다. 경쟁심도 강한편이다.

그런데 경험이 쌓이면서, 나이를 먹으면서. 고집을 부려야할 상황과 양보해야 할 상황을 구분하기 시작했고, 경쟁을 피할 수 있다면 경쟁을 피하는 것이 더 효율적일 수도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됐다. 그래서. 꼭 고집을 부려야 하거나, 경쟁을 해야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꼭 논쟁이나 언쟁을 해야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피할 수 없는 판단이 서지 않는 이상 굳이 손톱발톱을 내밀지 않는다.

고집의 경우. 결국 내 의견을 굽히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변호사로, 전문가로 내 의견을 굽히지 않는다는 것은 내가 내 전문적 의견에 확신을 갖기 때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이 고집은 항상 상대측, 즉 내 클라이언트의 반대측에게만 부리는 것은 아니다. 때론 내 편에게, 내 클라이언트에게 부려야 할 경우도 있다. 물론 설득하고 설명하고 때론 클라이언트의 반박에 당황하기도 하지만. 전문가라면. 클라이언트가 내가 전문가이기 때문에 나를 찾았다면, 나는 그에게 최대한 프로페셔널한, 내가 판단했을 때 올바란 조언과 전략과 방향으로 딜을 이끌어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내 임무이자 내 역할이다.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 감독인 벨로첵 감독은 선수들에게 항상 “너의 역할에 충실하라(Do your job)”라는 이야기를 한다고 한다. 패츠 팬들은 이 말을 상당히 좋아한다. 뉴잉글랜드 사람들의 성향도 사실 비슷하다.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다하는 사람들. 비가 오나 눈이오나 바람이 부나.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고, 타인을 돕고, 자신이 속한 지역에 관심을 갖고 나누고. 그것 또한 자신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이니까.

보스턴에서 변호사로 성장하면서 내가 배운 것 또한 그것이다: 너의 역할에 충실하라.

내 역할은 변호사로, 클라이언트의 법조인으로 객관적이고 가장 프로페셔널한 법적 자문을 하는 것이다.

나는 대부분 40-60대 백인남자 대표님들와 이사님들을 상대로 업무를 한다. 때론 그분들의 무언의 압박이 존재한다.

그러나. 그러한 압박에 흔들리지 않고 내가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의견을 제시하고, 자문을 하는 것이.

그것이 내 가치이자 역할이다.

이 부분에 있어선. 절대로 양보할 생각이 없다. 언제나 고집을 부리고, 내면의 경쟁을 유지해야 할 부분이다.

Stand your ground. Do your job.

캘리포니아 바시험 공부 2일째 아침

10년 만에. 처음으로 이해한 개념이 있다. 너무너무너무 행복하다️.

도대체 누가 날 로스쿨에서 졸업 시켜줬으며, 난 어떻게 변호사 면허를 받은 걸까. 매우 궁금하다.

덧글.

난 커피숍에서 공부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개인취향이므로, 커피숍에서 공부하는 분들에게 뭐라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난 그렇다고 도서관에서 공부가 잘되는 것도 아니다. 즉. 아주 조용한 공간에서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오늘도. 토요일 아침 필라테스 운동을 위해 스튜디오에 가서 주변에서 다른 사람들은 운동하고 있는 와중에 난 내 차례를 기다리며 이어폰을 꽂고 구석에서 인터넷 강의를 들으며 공부하고 중간중간 딴짓도 하고 남편 운동하는 거 구경도 하며 공부했다. 난 결국. 공부환경보다는. 내가 공부하고자 하는 내용이 훨씬 중요한 것 같다. 내용이 재미있으면. 어디서 공부하든 상관없다.

내 포인트는. 사람마다 공부하는 방법이 다르다는 것을 배우고 있다는 것이다. 남편의 경우 항상 주변소음이 있어야 하고 공부 전에 약간 졸아줘야 하며 집중하면 꽤 오랜시간 엉덩이를 붙이고 있는 것 같다. 남편은 아침에 집중을 잘하고 난 저녁에 집중을 잘한다.

난 스터디를 별로 안좋한다(예외적으로. 2시간 스터디 후 10시간 뒷풀이 모임은 환영한다). 난 암기나 경쟁보단, 시험과 무관한 토론을 즐긴다. 그래서 특정 목적이 있는, 때론 서로 경쟁하는 스터디가 별로다.

정해진 것은 없다.

자신에게 맞는 것을 찾아가는 것. 찾아갈 수 있는 것.

그것이 행복이자 축복이다.

캘리포니아 바시험 공부 1일 후 소감

흠. 난 참 아는게 없구나. 
어떻게 뉴욕/매사추세츠 바시험은 통과했을까?
기적이었다. 

공부는. 외우는 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이해하고 공부하니. 공부가 너무너무너무너무 재미있다❤️💕

(난 학교를 정말 싫어한다. 무지 오래 다닌건… 좋아서 다닌게 아니다.)

이해하지 못하고 암기하는 건. 빅데이터로 비유하자면 데이터 덤핑만 하는 것 같다. 데이터를 분석할 줄 알고 그 분석한 내용을 적용할 수 있어야 진정한 빅데이터의 의미가 생기고. 그것이 “지능”(intelligence) 아닌가? 외우는 것. 그냥 “저장”(storage)일 뿐이다. 난 USB가 되고 싶지 않다. 

행복하다. 

월급 다 받고. 심심하면 사무실 놀러가서 친구들과 밥 먹고 수다떨고. 

한 달 동안 공부만!!! 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행복하다😭😭✌️️✌️️😭✌️️😭😭😭😭

동부와 서부의 차이 — 모유수유 배송 프로그램

미국은 사실 미국이 아닙니다. 미국은 정확히 말하면 미합중국입니다. 즉, 50개의 주가 모여서 이루어진 나라입니다. 각 주마다 그 역사와 문화가 있고(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 주 안에서도 지역 별로 역사와 문화가 있습니다), 크게는 동부, 중서부, 서부, 남부 그리고 하와이, 알라스카로 lumping하여 문화적 동질성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한국 분들은. 이야기를 나눠보면 서부를 선호하시는 것 같지만. 저는 제 나름의 이유로 동부의 매력에 빠져 동부를 선택했습니다(그러므로 왜 서부보다 동부를 더 좋아하느냐는 의아한 표정과 질문은 더 이상하지 않아 주셨음 합니다 — 저도 왜 도대체 동부를 이해하지 못하느냐는 질문은 하지 않지 않습니까).

그러나 서부도 서부만의 매력이 있고, 제가 이제 삶의 터전으로 만들고 있고 북캘리포니아도 나름의 매력 포인트가 있습니다.

우선 음식이 너무나도 맛있습니다. 식재료가 다양하고 풍부하고 신선하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 배우고 있습니다. 동부의 경우 해산물은 풍족하지만 겨울이 길고 여름이 습해 식재료가 제한적이어 음식에 한계가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서부에서처럼 식재료가 신선하면 정말 간단한 음식도 너무나도 맛있다는 것을 배우고 있고 그래서 요리의 세계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저는 워낙 술을 좋아하는데 여지껏 와인이란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먹어도 맛의 차이를 잘 몰랐던 것도 있고 레드의 경우 때론 심한 편두통이 생겨 버블리인 샴페인 정도만 마셨을 뿐 와인을 즐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곳에 와보니 와인을 만드는 와이너리를 직접 방문할 수도 있고 그 곳에서 여러 와인을 맛보며 제게 맛는 와인을 마시며 비교분석(?)을 할 수 있게 되면서 와인의 세상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우워!) 회사에서 긴 하루를 보내고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요리를 하며 라디오를 틀어 놓고 와인 한 잔을 시핑하는 것이 이렇게 행복한 일인지 처음 알았습니다. 그리고 이건 상당히 캘리포니안스어운 행위이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서부는 매우 보수적인 로펌들조차도 그 보수적인 성향에 물을 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보수적이면서도 서부만의 innovative한 성향이 그대로 들어난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선 innovation과는 별개의 이슈지만 innovative한 문화를 가능케 하는 것 중 하나는 work environment인 것 같습니다. 분명히 동부에 있을 때와 시간 대비 동일한 양의 일을 하고 있고 동일하게 복작하고 intensive한 일을 하고 있지만 저만의 시간을 더 보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저께 제 새 직장에 옮기는 것을 도와준 리크루터와 점심을 먹으며 한 이야기 중 하나이기도 한데, 동부의 경우 아침부터 저녁까지 쭈—욱 일을 하는 것이 문화라면, 서부는 일을 끊어서 여러 번 하는 것이 문화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제 경우 아침에 일어나서 1시간 집에서 근무, 회사에서 오전에 2-3시간 근무, 점심시간 1시간(야외에서 식사를 하고, 신문을 읽고, 요즘에는 15-20분 정도 걷고 있습니다), 오후에 3-4시간 근무, 퇴근 후 자유시간, 자기 전에 1-2시간 근무를 하면 사실상 이 전의 근무시간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대신, 오전.오후에 집에서 시간을 더 많이 보낼 수 있다는 점에서 뭔가 자유로운 느낌을 받고 중간 중간에 머리를 식힐 수 있다는 점에서 재충전이 된다고 생각됩니다(아직은…). 단, 연차가 올라가면서 책임감은 더 많아지고 해야할 일은 쌓여가므로, 그리고 평일에 제 페이스를 제가 조절하므로 주말에도 몇 시간씩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 계속 발생하고 있어 장기적으로 이러한 스케줄이 어떻게 play out할 지는 두고봐야 할 것 같습니다.

어쨌든 결론은 동부와는 다른, 끊어서 일을 하는 문화가 존재하고, 그렇다고 일을 덜하는 것은 절대 아니고, 장기적으론 이런 문화도 burn out을 충분히 일으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 복장도 다르긴 합니다. 동부에선 매일 매우 structure된 드레스를 입고 출근했다면, 요즘엔 정말 편한 고무줄 바지(!)도 입고 헐렁한 셔츠도 입고. 사무실에 요가매트도 가져다 놓고. 중간중간 스트레칭도 하고. 그렇게 편하게 일을 합니다.

이 긴 이야기를 쓴 이유는 이 번 주에 사내 이메일로 breast milk shipping program 관련 안내를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아직 잠이 덜 깬 상황이어서 모유수유를 하는 변호사/직원들끼리 서로 모유를 나누는 프로그램으로 이해하고 “아… 아무리 서부여도 이건 아니자나…”라고 생각을 했으나…

http://www.law.com/sites/almstaff/2016/09/15/got-breast-milk-latham-will-ship-it/?slreturn=20160817120642

다시 정신을 차리고 읽어보니. 그게 아니라.

모유수유 중인 변호사나 직원이 로펌관련 일로 출장을 갈 경우 “본인의” 모유를 “자신의” 집으로 보낼 수 있는 프로그램을 시작했다는 것이 이메일의 내용이었습니다.

즉, 모유펌프만 들고 변호사/직원이 출장을 가면. 호텔에 이미 배송과 관련된 모든 물품이 준비되어 있고. 변호사/직원은 모유를 준비된 통에 펌프한 후 FedEx 직원을 불러 배송을 하면 overnight로 자신의 집으로 배송되고 집에서 냉장보관을 하면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배송 중에도 온도유지를 할 수 있도록 package안에 ice pack이 들어 있다고 합니다.

대형로펌 중 이런 프로그램을 시작한 것은 레이텀 & 왓킨스가 처음이라고 합니다. 이런 프로그램을 한 대형로펌에서 시작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다른 로펌들에서도 adopt하도록 압력을 받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이런 프로그램들은 로펌이나 고용주 입장에선 추가비용이지만 직원들에겐 그 비용이상으로 큰 도움이 되는, 삶의 도움뿐만 아니라 실제로 work productivity를 올릴 수 있는, 그리고 직원의 retention을 올릴 수 있는 프로그램입니다.

이러한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는 건. 그리고 그러한 아이디어를 실현시키는 것은 결국 그 환경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롭스 앤 그레이를 떠나며

저는 어저께 5년 간 제가 변호사로 근무한 친정을 떠났습니다. 늦은 시간까지 남은 업무를 처리하고 남편과 남은 짐을 함께 정리한 후 빈 사무실을 나섰을 때도, 남편과 삼겹살을 먹으며 그 동안 수고 했다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오늘 아침 이 글을 쓰면서도 아직 별로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저는 몇 주간 휴식을 취하고 7월 말부터 실리콘 벨리에 있는 Latham & Watkins라는 로펌에서 다음 커리어를 시작할 계획입니다. 저는 아직 배울 것이 많은 변호사이기에 저를 옆에 두고 가르쳐 주실 스승 같은 분들이 필요했고, 운 좋게 그런 분들과 팀을 만나게 되어 이동하게 됐습니다.

Latham은. 랭킹 같은 것이 중요하지는 않지만… 글로벌 로펌을 rank하는 다양한 순위 중 American Lawyer(AmLaw)에서는 1위를 차지하는 로펌입니다. 제가 로펌의 수익을 보고 이동하는 것일리는 전혀 없고, 로펌의 명성을 보고 이동하는 것도 아닙니다. 제가 현재 하고 싶어하는 업무와 그러한 업무를 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줄 수 있다는 제안, 저를 멘토링 해주실 수 있다는 점 등에 있어 기회가 너무 좋다고 판단되어 이동을 결심하게 됐습니다. 약 2,200명의 변호사가 전 세계 30곳이 넘은 사무소에서 근무하고 있는만큼 글로벌 플랫폼을 갖고 있어, 인터뷰 내내 제가 한국 클라이언트들을 위해 글로벌 프로젝트를 하고 싶다면 얼마든지 이를 서포트 해 줄 수 있는 환경이란 점을 강조한 것도 저에겐 매력적이었습니다.

보스턴에 계신 분들께는 너무나도 면목이 없었습니다. 지난 2주 간 한 분 한 분 찾아 뵙고 사과를 드렸고 다들 너무 놀라셨지만 이해해 주셨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저를 아껴 주시기에, 새로운 기회와 도전을 응원해 주시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하지만 저는 왠지 제가 “배신”을 하는 것 같아 Latham과 인터뷰 하는 내내 좌불안석이었고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사실 3주 전 한국에 잠시 다녀온 것도 한국에 계신 저희 사무소 분들, 특히 저를 딸 같이 아껴주시고 키워주신 저희 김용균 대표 변호사님께 직접 얼굴을 뵙고 말씀을 드리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면목이 없었습니다. 감사했고, 죄송했고. 그냥 그랬습니다. 앞으로도 평생 뵐 분이지만. 그냥 그랬습니다.

모든 분들께서 “you need to do what is best for you”라고 말씀해 주실 때마다 감사함과 동시에 죄송함이 너무 컸습니다.

어떤 파트너 분들께서는 “걔네가 못되게 굴면 전화해라!”라고 해주신 분들도 계셨고, 샌프란시스코에 계신 파트너 분은 “가서 행복하더라고, 꼭 몇 달에 한 번씩은 연락하고, 밥 사줄께 와서 밥 먹고 가고”라고 말씀해 주신 분도 계셨습니다. 제가 2월에 캘리포니아 바 시험을 봐야 하는데, 이 와중에 바 시험 준비 잘 하라고, 얕보지 말라고 걱정해 주신 분도 계셨고, 언제든 돌아오고 싶으면 받아 줄테니 돌아오라고 해주신 분들도 계셨답니다.

그리고 왕짱님은. 몇 번씩 안아 주셨습니다. 훌륭한 멘티였으니. 가서도 잘 할 거라고. 왕짱님도 훌륭한 멘토셨습니다. 법뿐만 아니라 저에게 인품과 성품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너무 너무 감사했고, 또 찾아뵙겠습니다.

이렇게.

남편과 저. 둘 다. 새로운 주. 새로운 도시. 새로운 직장에서. 새로운 도전을 함께 시작하게 됐습니다.

자문변호사

지난 목요일 FB에 썼던 글인데 블로그에도 기록을 남겨 놓고 싶어 copy paste. 이래서 남편이 내게 내가 내 글을 중복게재한다고 문제 삼는다…
***

이틀 연속으로 딜을 2개 클로징했다. 몸이 만신창이다. 
Corporate attorney는 자문변호사로 번역되기도 한다. 나는 1-2년 차, 3년차까지만 해도 이러한 번역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인수합병을 하고, 벤처투자를 하고, 라이선싱 딜을 하는 deal lawyer에게 왠지 “자문변호사”는. 좀 약하게 들렸다(내가 좀 어그레시브한 기질이 있는 것도 사실이고 그래서 deal lawyer를 자초한 것도 인정한다).

그런데 5년차에 접어들고 클라이언트들과 팀을 이뤄 업무를 하면서 깨달았다. 그들이 원하는, 때론 그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well thought out 된 자문이란 것을. 

변호사는 클라이언트 “비즈니스에 있어” 그 어떠한 decision making도 할 수 없다. 간혹, 알아서 해달라는 클라이언트도 있지만, 이것은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이다. 능력이 안돼서라기 보단, corporate structure상 변호사에게 위임된 범위 내의 업무가 아니기 때문이다. 

변호사는 계약서를 찍어내는 사람들이 아니다. 계약서는 당사자 간의 이해관계를 문서화함과 동시에 차후에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을 사전에 예측하고 이에 어떻게 대응할 지에 대한 “룰”을 정하는 당사자 간의 규칙서와 같은 것이다. 이것은 변호사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클라이언트의 니즈와 바램이 반영되어여만 한다. 

단, 딜을 많이 접하면 접할 수록 “일반적인” 규칙들이 무엇인지, 즉 옆동네 아이들을 어떻게 노는지 변호사들은 알기에 우리 클라이언트에게 무엇이 일반적이고, 어떻게 하면 더 유리하고, 어떤 것이 덜 유리하고, 때론 어떤 것을 포기하고 어떤 것을 취해야 딜을 할 수 있을지, 비록 변호사가 결정을 하진 못해도 옆에서 코칭과 조언을 해줄 수 있게 된다는 것을 배우고 있다. 

변호사들은 paper pusher들이 아니다. 클라이언트가 해달라는 대로 문서를 찍어내는 기계여서는 안된다. 

두 번째 딜을 클로즈하며. Excellent advice and counsel에 감사하단 클라이언트의 이메일을 읽으며. 자문변호사란 번역이 더 이상 마음에 안들지 않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