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의료정책자가 되다

r/o Lobbyist, 정치 maybe?

의대를 다니면서 해야 하는 것 중 하나는 전공을 정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처음부터 전공을 딱 집어내기 보다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자신에게 도저히 맞지 않는 전공을 배제해 나아가고 결국 남게 되는 몇 개 과목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 

내 경우 애당초 임상을 배제 함과 동시에 법을 선택했고, 수많은 법 중에서도 의료와 관련된 비지니스적인 법을 선택했으므로 커리어적으로 선택을 해야하는 폭이 매우 좁아 졌다 여겼었다.  Boy was I wrong.

법을 전공할 경우 열 수 있는 문은 수없이 많다.  로펌만 해도 대형, 중형, 소형 로펌이 존재하고, 미국, 유럽, 아시아와 같이 다양한 곳에서 일 할 수 있다.  또 로펌이 아닌 컨설팅 회사에서도 근무할 수 있고, 병원, 제약회사, 의료기기 회사 등에서도 일 할 수 있고, 공무원으로도 일 할 수 있으며, 법관이 되기도 하고 입법을 하기도 한다.  이 외에도 정책에 참여하거나 정치를 할 수도 있고, 여기에 약간의 영리를 추가하면 로비를 할 수도 있다. 

헐떡이며 보낸 지난 열흘을 바탕으로 로비와 정치는 내 향후 커리어에서 배제한 것 같다. 이런 걸 딱 집어 논리적으로 설명하긴 힘든 일이다. 가장 중요한 건 내가 즐겁지 않다는 것? 물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일이 진행되고 소위말해 이길 때는 날아갈 듯 좋지만, 많은 경우에 있어 up hill battle이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내가 너무 힘들어 지는 것 같다. 또 정치 세계에선 나름 전략이 필요하고 외교적인 능력이 필요한데. 난 매우 직설적이고 (왠만한 미국 사람 저리가라 한다) 흑과 백이 분명한 경우가 많아서 전략을 세우고 외교적으로 문제에 접근하다가는 답답해서 미쳐 버릴 것 같단 생각이 든다.

보스에게도 더 이상 나는 왠만하면 로비 쪽으로는 일을 하고 싶지 않다고 얘기헸다. 아마 펠로이기 때문에 내가 하고 싶은 것과 하고 싶지 않은 것을 말 할 수 있는 여유와 luxury가 있는 것이겠지. 이제 펠로쉽도 3달 밖에 안 남았다. 내가 하고 싶지 않은 것들을 배운 것만으로도 매우 큰 성과인듯.

Out in the real world

새벽 3시 반. DC행 6시 비행기를 놓칠까 걱정 돼 몇 시간 째 잠을 설치다 일어나 샤워를 했다. 에스프레소 두 잔을 넘기고 졸린 눈을 비비며 공항에 도착해 차를 주차하고 비행기에 올랐다. 내가 쓴 법안을 대법관들이 어떻게 생각하는 지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단 생각에 관련 법 문서를 뒤지며 한 시간 반의 비행을 마쳤다.  

택시를 잡아타고 도착한 대법원. 성지순례자의 마음이 이럴 것이다.

7:30 밖에 안 됐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줄이 길게 서 있었고 받은 번호표는 85번. 9:30 입장이니 두 시간 이상 기다려야 했고 이내 앞뒤 사람들과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미시건에서 휴가 차 놀러온 엄마와 아들, 그리고 알고보니 탄원을 한 버몬트 주의 oral argument를 맡은 검사의 친구와 그의 딸이었다.

미시건 아줌마는 내가 대화하기 좋아하는 천재 시골 아줌마였다. 종종 듣도 보지도 못한 시골에 사는 아줌마들 중 평소 출중한 독서 실력을 바탕으로 바깥 세상과 의사소통을 하는 분들이 있다. 그냥 보기엔 정말 수수한 차림이고 겸손함과 배려가 몸에 베어 있어 무시하고 지나칠 수도 있지만 대화를 하다보면 바다와도 같은 넓은 이해력과 통찰력을 지니고 있다. 이 분은 대법원 법관들이 누구인지, 성향이 어떤지 어느정도 알고 있었고 내가 사건과 관련된 내용을 읽고 있는 것을 보고 사건에 대한 설명을 해 달라 부탁을 했다. 설명을 하고 있자니 10살짜리 아들이 대법원까지 온 헌법적인 이유가 무엇이냐 묻는다. 발언의 자유 (freedom of speech)리고 답하니 고개를 끄덕인다. 

왜 이런 사람들이 더 바깥 세상에서 일을 하지 않는 지 궁금해 졌다.  약 6시간 후 어느 정도 알겠다 싶었다.

반대로 검사 친구인 뉴저지 아줌마는 화려하고 피부도 뽀야신게 정기적으로 마사지 등의 관람을 받으시는 것이 분명했다. 이 분은 왜 검사의 친구인 자신이 우리와 같은 평민들의 줄을 서 있어야 하는지 설명을 한다. 

나랑 친해졌다 싶었는지, 자신이 한 달에 몇 번씩 맨하탄에 가는데, 더 이상 도시에 “너와 나” 같은 사람들이 살지 않는다 한다.  “너와 나” 같이 영어를 하는 미국인들이 없다고.  그는 이민자들을 통틀어 싸잡아 얘기한 것이고 그들을 무시하는 것이 분명했다.  이내 뭍는다.  넌 어디서 왔냐고.  한국에서 왔다 했다.  뭐라 생각했을까.

이내 200명이 훌쩍 넘는 사람들이 줄에 합류했고 우리 옆에는 로스쿨 학생임이 분명한 검은 양복 차림의 사람들이 때를 지어 먼저 입장한다.

9:30. 35번까지 입장을 마친 후 만석이 됐다. 나머지 200명은 한 시간 oral argument 중 일부를 5분 동안 들을 수 있는 자리로 안내됐다. 속이 상하긴 했지만. 대법원 사건을 듣고자 몇 시간씩 줄을 서고도 못 들을 정도로 대법원이 “인기”가 있다는 사실에 일반인들의 법에 대한 관심에 더 놀랐다. 휴가로 DC까지 와서 대법원에 “관광”을 오다니.  나는 서울 어디에 대법원이 있는지도 모르는데.

Security 두 곳을 지나고 조심스럽게 안내되어 들어간 court 안. 사진에서만 봤던 대법관들이 반원본 모양으로 둘러 앉아 한참 버몬트 검사와 논쟁 중이다. 아니다. 30초만에 논쟁이 아닌 검사의 피말리는 방어전이 벌어지고 있음을 알았다. 법관들은 돌아가며 검사에게 날카로운 질문들을 던진다. 답변이 마음에 안 든다 싶으면 당신이 하는 말을 못 알아 듣겠다고 잘라 버린다. 검사는 5분 내내 절절맸고 진 싸움이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미시건 아줌마는 함께 나오며 넌지시 “검사가 고생하더라” 말을 한다.

법원을 나오니 10:40. 보스턴에서 4시 회의를 위해 1:30 비행기를 예약했는데 시간이 꽤 남는다.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니. 20도 안팍의 날씨와. Capitol Hill!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봄을 맞아 사방에서 풀을 깎는데 풀 내음이 정신을 혼미하게 만든다.

걷다보니 국회다.

저 건너편에는 Washington Monument. 어느새 스미소니언을 지나 모뉴먼트 앞에 서 있다. 시원한 봄 바람을 맞으며 백악관의 꼭대기를 바라본다.

정신을 차리고 공항으로 향했다.  비행기에서 내린 시간 3:42분.  핸드폰을 켜자마자 수없는 이메일들이 쏟아져 들어온다.  내가 관리하던 법안 중 하나가 내가 비행기에 타고 있던 단 2시간만에 날치기 통과됐다.  128:22.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아니, 난 손가락 하나 들어보지 못하고 그대로 당했다. 

4시 회의가 끝난 5시.  하루종일 지기만 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머리와 마음이 온통 아프다.  새벽 4시에 일어난 몸이 가장 온전하다.  미시건 아줌마 같은 머리가 똑똑한 사람들은 참 많다.  하지만 매일 이렇게 싸우고 지면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다.  그것이 차이일 것이라 생각한다.  괜시리 아줌마가 비겁해 진다.  정치인들이 밉다.  나도 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지기 싫다. 

교수님 한 분께 이메일을 보냈다.  왜 이런건 로스쿨에서 안 가르쳐 주냐고.  첫 환자의 임종을 맞이 했을 때 어떻게 느낄지, 그 자괴감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안 가르쳐 주는 의대를 원망했던 때랑 비슷한 느낌이다.  다 가르쳐 줄 수 없겠지.  알아서 몸으로 부딫혀 배워야 하는 거겠지.  하지만 원망할 대상이 필요하니까.

잠이 안 온다.  내일은 대체 또 어떤 전쟁을 치뤄야 할 지. 

세상

가끔.

세상이 날 향해 너무 빨리 다가와.

뭐든 빨아 마시려고 입을 벌리고 있는 내게 휘몰아 치는 폭풍과 같은 바람처럼.

내가 들이마실 수 있는 속도보다 더 빠른.

내가 들이마실 수 있는 것 이상의.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이상의 공기가 폐에 차버리면.

난 숨이 멈춰.

무릎을 꿇어.

순간.

그만 싸우면 편해지지 않을까 생각해.

지는게 싫어.

그냥 힘있는 자들의 앞잡이나 하며 살면 되지 않을까 싶어.

근데 이런 생각하는 게 지는거야.

그래서 횡경막이 찢어지도록 다시 숨을 쉬어.

툭툭 털고 일어나.

그럼 또 시작이야.

난 지는게 싫어.

근황

한 이 주 여유롭게 논문도 읽고 신문도 읽고 일찍 퇴근도 해 봤는데.  주 예산 일이 시작되면서 다시 바뻐졌다.  차라리 바쁜게 난 좋다.  편두통이 자꾸만 생겨 속이 울렁거리고 눈에서 레이져가 나온다.  회사에 다른 편두통 환자랑 매일 증상을 나눈다. 그래도 바쁜게 좋다.

취업비자가 나왔다.  안 나왔으면 4월 24일 현재 학생 비자가 만료되고 60일 내에 출국해야 했다.  안 될 것 같진 않았지만, 과거 한 참 경기가 좋던 2007, 2008년에는 취업비자 수보다 지원자가 훨씬 더 많아서 비자를 복권처럼 당첨으로 나눠주곤 했다.  웃기는 일이다.  2009년부터는 급속도로 안 좋아진 경기가 그대로 반영됐고, 특히나 외국인 고용을 많이하던 금융계가 전반적인 채용을 멈추고 외국인들은 아얘 뽑지 않기 시작하면서 비자가 남아 돌기 시작했다.  2012년 비자 캡은 여기서 확인. 

주말에 의대 친구들을 만난다.  2003년 졸업 후 8년 만에 처음보는 친구도 있어 나름 미니 동문회 같다.

One of those days

좋은 날이 있으면 힘든 날도 있는 법. 

요즘 자꾸만 새벽 6시 반(나한테는 새벽)이면 눈이 떠진다.  보통은 조금 뒤척이다 한 시간 정도 더 선잠을 자곤 힘들게 일어나는데, 오늘은 오빠가 매일하는 새벽 수영을 직접 경험하기 위해 수영장으로 향했다.  어렸을 때 수영을 배웠으니 물에 들어가면 머리를 쓰지 않아도 알아서 몸이 움직여 준다.  하지만 거의 일 년 반 동안 고기를 먹지 않았고 수영을 몇 년 쉰 것 때문인지 근육들이 몇 바퀴만 돌면 이내 축축 늘어진다.  힘겹게, 숨차게 30분 수영을 마치고 집에 와서 씻고 출근.  상쾌하다고 하고 싶지만 그냥 안 하던 걸 했다는 뿌듯함 정도에 만족해야 했다.

오전에 출근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오빠 미국 주 의사면허 원서 배송 확인.  잘 보냈다고 보냈는데, 지난 토요일 배송 시도가 이뤄졌고 토요일에는 주 의사면허 기관이 일을 하지 않으니 아무도 우편물을 받을 사람이 없었던 관계로 미배송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원서를 보낸 South Carolina Medical Board에서는 미배송의 경우 알아서 다시 배송이 되어야지 자신들이 찾으러 가진 않는다고 하고, 우체국에선 Medical Board에서 알아서 찾으러 와야 한다고 하니 내가 환장할 노릇이다. 

실갱이를 하다보니 회의 시간.  매사추세츠 주 검사팀, 의료보험관리팀, 환자권익팀이 모이는 회의인데 회의 초반에 내가 말한 무엇이 심기를 건드렸는지 회의를 주최하는 의료보험관리팀 직원이 내가 무슨 말만 하면 삐딱하다.  내 직원이었으면 한 대 쥐어 박고 싶다.  게다가 지난 4개월 동안 우리가 모두 사용할 문서를 준비하는 줄 알고 열심히 일 했는데, 이제 와서는 쓰던 말던 각자 기관이 알아서 하란다.  그럼 내가 뭣하러 그리 열심히 했겠느냐. 

힘이 빠져 사무실로 돌아왔는데 인턴은 일을 달라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고 (힘들게 집에 오면 밥 달라는 아이가 이렇겠구나 싶었다), 갑자기 더워진 날씨에 아직도 히터가 나오고 있는 사무실은 찜질방이었고, 오빠 원서는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집에 오는 길에 집앞 빵집에 들러 빵과 과자를 사 먹으며 돌아왔다.  설탕으로 순간적으로나마 해결 안되는 문제는 없다.  집에 와서는 창문이란 창문은 다 열어 놓고 (아!  드디어 봄이다!) 집앞 공원에서 노는 아이들과 지는 해를 바라보며 마신 맥주 한 잔.  설탕과 맥주로 순간적으로나마 해결 안되는 문제는 없다. 

내일은 좋은 하루이길 바라며.

대법원 가다 (이번엔 진짜로!)

비록 대법원에 제출된 글 작업을 하다가 중단해야 했고 내 이름이 오르지 못 했지만.

4월 26일.  연방 대법원 argument를 보러 하루 휴가를 받아서 DC에 간다.  내 돈 내고 가는 거고, 내 시간을 쪼개서 가는 거고, 새벽 6시에 갔다가 보스턴에서 오후 4시 미팅에 참여하러 바로 다시 날아와야 하지만.  내가 상정한 법안이 합헌인지 위헌인지가 결정되는 순간을 직접 목격할 수 있을거란 생각에 벌써 가슴이 두근거린다.  생전 처음 콘서트 가는 느낌?  I’m such a nerd.

Comparative Effectiveness

지난 10년 동안 의학 연구의 중심에는 evidence-based medicine이 있었다면, 향후 10년 간은 comparative effective가 그 중심에 서야 할 것이다.

FDA의 승인이 난 약은 모두 evidence-based이다.  즉, 효과가 있고 사회적으로 용납할 만한 해가 있다는 것이 증명된 약이다.  이제 문제는 의료 비용이다.  2-3개월, 그것도 중환자실에서 단순히 생명을 연장하는 1억짜리 약이 과연 좋은 것인가?  약으로 조절되는 것과 별반 다른 효과가 없는 수술이 필요한 것인가?  이는 단순히 의학적 증거 이상의 문제이다.  즉, 의학적 증거가 있는 치료법 중 어떤 것이 가장 효과적인지를 판단하는 것이 comparative effectiveness이다.

미국에서는 이미 Agency for Healthcare Research and Quality라는 국가기관에서 이 comparative effectiveness를 연구 해 왔고 이제는 그 실용 단계에 접어 들고 있다. 

최근 매사추세츠를 포함한 뉴잉글랜드 지역에 이 comparative effectiveness를 널리 퍼뜨리고자 하버드 계열 병원인 Massachusetts General Hospital의 연구기관에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리고 어쩌다 보니 이 기관의 advisory board (자문위원회)와 최종 조언을 하는 Public Advisory Council에 앉게 됐다.  NEJM 에디터 선생님과 나란히 이름이 올라갔다…  이젠 머리가 굵었다고 선생님 하시는 말씀에 반대하는 생각도 많이 해서 감히 반박을 해야 하면 얼마나 심장이 두근거릴 지 생각하면 벌써 어질어질 하다. 

의사들만이 사용할 수 있는 기준이 아닌, 환자들도 동의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데에 도움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