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의료정책자가 되다

난 정상이었다!

한국에서도 그랬고 미국에서도 그렇고 실제 나이보다 어리게 보이는 건 전문직 여성으로써 큰 단점입니다.  전문적 지식을 바탕으로 insightful한 정보를 제공해 주길 바라는 클라이언트들의 입장에서 갓 대학을 졸업한 것으로 보이는 동양여자가 들어와 컨설턴트/변호사/법률자문이라고 말을 하면 의심쩍어 할 만도 하다고 생각은 하지만 그래서 그런지 항상 고양이가 털을 세우는 마냥 제 학력과 경력을 나열하게 됩니다. 간혹 기혼이라는 사실도 사람들에게 “아 이 사람 생각보다 어리지 않구나”라는 표정을 짓게 하기도 해서 과연 이들에게 먹고 살자고 사생활까지 모두 보여줘야 하는 것인가란 생각도 듭니다.

항상 보이는 나이에 대한 것만 신경 쓰다보니 털을 세운다는 것이 어떤 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회의를 하는데 최근 몇 달 함께 일을 많이 해 왔던 보스 중 한 명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너 그렇게 학교 다닌 것 치곤 참 정상이야. 놀랐어. 사회성도 있고.”

단 한 번도 가방줄이 길어서 발생할 수 있는 선입견에 대한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원래 이 사람은 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좋아하지 않았다기 보다 저를 싫어했습니다.  2년 전 인턴으로 일을 시작했을 때부터 눈도 안 마주치고 인사를 해도 받아주지 않는 것이 시간이 지나자 저를 안 좋아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펠로쉽을 위해 직원으로 돌아온 후에도 상황은 좋아지지 않았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조심스럽게 고민을 털어내자 다들 웃으며 말했습니다.  원래 변호사와 여자를 별로 안 좋아한다고.  둘 다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고 아랫사람으로써 잘 지내보려고 노력했지만 회의 중에도 제 의견을 무시하는 발언을 하는 것을 보면서 “이 사람 안되겠구나”란 생각으로 피하기 시작했습니다.  불편하긴 했지만 제가 특별히 잘못한 것도 없는데 그런 대접을 받는 것이 싫었습니다.

불편한 와중에 사무실 안에서 동선을 잘 짜가며 피하며 살고 있었는데 지난 4월 직속상관 변호사가 회사를 그만두면서 반강제적으로 이 사람과 함께 일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서로 불편한 관계임을 알지만 일을 안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어쨌던 같은 배를 타기는 했습니다.

그로부터 3개월 정도가 지난 지금.  어쩌면 이 상사는 제가 가장 솔직하게 회사에 대한 불만과 고민을 털어 놓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편한 사이가 됐습니다.  변호사라고, 여자라고 무시 당하는 것이 싫어 정말 열심히 일했고 맡았던 일은 트집 하나 잡을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해 냈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너무 받아서 괴로운 기간도 있었지만, 절대 그 상사가 저에게 강요를 한 건 없었습니다.  제가 제 자신을 증명하고 싶었던 것 뿐입니다.

증명은 했고 그 과정에서 친구도 됐고 이제는 제가 “책상이 왜 이렇게 지저분 하냐? 물 마신 컵은 왜 안 닦았냐?,” “너 이 일 지금 처리 안 하면 언제하냐,” “내가 보낸 파일 저장 안하고 어쨌냐? 왜 귀찮게 또 보내라고 하냐?” 라고 장난으로 타박을 해도 다 받아주는 사이가 됐습니다. 

그리고 이 번 주 금요일 회사를 떠날 준비를 하면서 제가 그 동안 맡았던 일들을 인수인계 해 주는데 그가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정상이고 사회성이 있다고 한 것입니다.  과연 2년 전에 저를 처음 만났을 때 어떤 선입견으로 저를 바라봤는지…  금요일날 밥을 사 준다고 하니 가서 물어봐야 하겠습니다.

무력함 (Helplessness)

전 큰 그림을 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몇 달 전 어느 선생님께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 의사가 되셨다는 얘기를 들으며 생각해 보니 제 주변에 그런 의사가 많다는 사실을 깨닫고 뿌듯함을 느꼈던 동시에 때론 이상주의에 휩싸이긴 하지만 저는 큰 그림을 통해 누군가를 돕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노르웨이 총기사건, 런던 폭동 등을 바라보며 심한 무력감에 휩쌓였습니다. 분명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복잡하고 다양한 원인들이 복합적인 원인이 되어 발생한 사건들이었겠지만 정책 일을 하면서, 사회생활을 하면서 부딪히게 되는 수 많은 장애물을 겪으며 저 또한 때론 그들이 느끼는 분노를 느끼고 무력함을 느낍니다.

어저께는 정부기관 사람들과 회의를 하기 위해 15-20분 거리를 걸어 회의장으로 걸어갔습니다.  보스턴은 걷기 안전한 도시이지만 어떤 사람이 언제 어떻게 접근할 지 모른다는 경계심은 항상 갖고 있습니다.  회사 동료 한 명과 인턴 2명과 함께 회의장소를 향해 걸어가고 있는데 제 왼쪽으로 어떤 남자가 접근했습니다.  180cm 정도의 키에 짧은 금발 머리를 한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는 손에 묵직한 비닐을 들고 있었고 깡말랐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마른 체형의 소유자였습니다.

저와 동료에게 “How do you get to Mass Ave?”라고 물었습니다.  보스턴에는 매사추세츠 도로라는 대로변이 있는데 어떻게 이 도로까지 갈 수 있느냐고 물은 것입니다.  저는 본능적으로 그를 피해 한 발짝 뒤로 물러났고 제 동료는 여기서 걸어서 2-3시간은 족히 걸여야 하지만 정 가야 한다면 서쪽으로 가라고 방향을 가리켜 줬습니다.

동료가 방향을 가리키는 동안 저는 재빨리 그를 훑어 보았습니다.  그가 입고 있던 붉은 색 티셔츠는 조금 전까지 빨래걸이에 널려 있었던 마냥 빳빳하고 말끔했습니다.  무릎까지 오는 흰색 반바지 아래에는 발목까지 올라오는 두터운 테니스 양말을 신고 있었고 그 밑으로는 힘겹게 발가락 사이로 신어야 하는 쪼리를 신고 있었습니다.

“방금 병원에서 퇴원했는데 Mass Ave로 가야 해요.  거기 가야 해요.”

계속 웅얼거리던 그는 순간 휙 돌아서더니 순식간에 차량이 다니고 있는 길을 건너 버렸고 깜짝 놀란 제가 멈칫하는 동안 그가 들고 있던 비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Beth Israel이란 보스턴 병원 이름이 쓰여 있는 것을 확인한 저는 그가 정말 방금 병원에서 퇴원했음을 직감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양말 위로 쪼리를 신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빠른 걸음걸이로 사라져 버렸고 저도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다시 걸음을 재촉했습니다. 

5분 정도 걸었나.  그의 목소리가 뒤통수에서 들리기 시작했고 사라졌던 것처럼 순식간에 다시 나타난 그는 저희 앞으로 휙 지나가 버렸습니다.  그 와중에도 지나가는 사람 한 명 한 명을 붙들고 Mass Ave로 가는 방법을 물어봤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를 피했습니다.

멈칫거리던 저는…  한참을 앞서간 그를 향해 뛰어 갔습니다. 

“이봐요!”

“네?”
 
“어디가는 거에요?”

“Mass Ave를 가야해요.”

“왜 Mass Ave를 가야해요? 어디 살아요?”

“나 Manchester, New Hampshire에 살아요.  방금 병원에서 퇴원했는데 집에 갈 돈이 없다고 하니까 Mass Ave에 가서 구걸하면 돈을 구할 수 있다고 해서 Mass Ave에 가야 해요.”

“왜 거기까지 가서 돈을 구걸해요?”

“거기 가야 돈을 잘 준데요.”

“Manchester까지 가는데 얼마나 필요해요?”

“편도 버스 표가 $14래요.  나 지금 $7 밖에 없어요.  그래서 Mass Ave에 가야 해요.”

그는 단 한 번도 저에게 돈을 달라고 구걸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눈을 바라봤고, confused 한 상태 같았지만 약을 한 상태도 술에 취한 상태도 아님이 확실했습니다.  더더욱이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도 않았습니다.

“내가 돈 주면 집에 갈거에요?  술 먹거나 약 사 먹지 않을거에요?”

“나 진짜 집에 가요!  집에 가고 싶어요!”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다고 믿고 싶었고 난 가방에서 $10짜리 지폐를 한 장 꺼내어 손에 쥐어 줬습니다.

“집에 가요, 꼭!”

“고마워요.  이름이 뭐에요?  난 존이에요.”

“난 제키에요.”

그는 날 꼭 안아줬고 술 냄새나 땀 냄새가 전혀 나지 않던 존의 붉은 색 티셔츠에서는 싸구려 빨래 세제 냄새가 물씬 풍겼습니다.

돌아서서 동료들과 만나 회의장소가 있는 건물 앞에서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뒤에서 존이 이 번엔 South Station으로 어떻게 가냐고 사람들에게 물어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South Station은 버스 정류장이므로 그가 집으로 가려고 한다는 것이 확실했습니다.

존은 분명 정상적인 상태는 아니었습니다.  정신질환이 있다고 해도 놀랍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정말로 병원에서 이런 환자를 퇴원 시키면서 돈이 없으면 Mass Ave로 가서 구걸을 하라고 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애당초 그가 왜 병원에 입원 했었는지도 저는 모릅니다.  하지만 갓 병원에서 퇴원한 것으로 보이는 정신 상태가 말끔하지 않은 사람이 집에 갈 돈이 없어 구걸을 하기 위해 하염 없이 어디론가 걸어가려 했다는 사실은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정상적인 상황은 아닙니다.  언젠가는 환자를 위한 의료 시스템에 보탬이 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갖고 있는 제게 이렇게 사회보호층이 버림을 받았단 생각이 들게 하는 상황들은 무력함을 느끼게 합니다. 

혹시 몰라 방금 버스 값을 확인해 봤는데…  정말 보스턴에서 맨체스터까지 편도 버스표는 $14입니다.

일반의약품 슈퍼 판매 논란을 지켜보며 (1) – 정책도 과학입니다

최근들어 한국에선 일반의약품을 약국이 아닌 슈퍼나 편의점에서 판매할 지에 대한 논의가 뜨거운 것 같습니다.  
사실 이는 새로운 논의가 아닙니다.
적어도 기록상으로는1990년대부터 거론되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이 이슈 자체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보다는 정책 확립에 대한 생각을 쓰고 싶습니다.

정책을 접근하는 방법이 다양할 수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정책도 과학입니다, 새로운 정책을 세우거나 기존의 정책을 바꿀 때는 기본적인 근거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증거는 임상시험일 수 있지만,
경제학, 사회과학이나 정치학에도 나름대로의 연구와 이를 바탕으로 한 증거/근거가 존재합니다.

정책을 세울 때 가장 조심해야 하는 것 중 하나는 객관적 자료 없이 감정에 호소하는 것입니다.
또한 기본적인 배경 정보와 증거 없이 단순히 다른 사례의 결과만을
선택적으로 채택하는 것입니다
.  언론의 장단점을 잘 아는 입장에서, 종종 언론과 이익단체들이 객관적 자료 없이 감정에
호소하는 방법으로 정책 방향을 내세우는 것 같아 정책자로써 안타깝습니다.

 

객관적 자료의 부재

10년이 넘도록 일반의약품을 슈퍼/편의점에서 팔아야 한다는 주장과 이를 반대하는 주장이 수 없이 오갔지만,
막상 그 어떤 주장도 뒷받침할 수 있는 객관적인 근거가 없습니다.

슈퍼/편의점 판매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이유는 건강보험료 재정을 아끼고 국민의 편의성을 위함이라 합니다
.
이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의약품 오남용이나 약국들의 생존을 거론합니다.
하지만 그 어떤 주장도 뒷받침할 만한 객관적인 자료를 내세우지 않고 있습니다.

우선 건강보험료 재정 문제와 의약품 오남용 문제는 충분히 현존하는 건강보험 데이터로 분석할 수 있습니다.
, 모델만 제대로 세운다면 일반의약품을 슈펴/편의점에서 판매할 시 예측 판매량과 약국들의 판매 수요 감소를 말그대로 예측해 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현재 존재하는 일반의약품 오남용 데이터를 통해 일반의약품
판매가 증가할 경우 오남용이 증가할 것인지도 예측할 수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현재 이러한 주장들을 뒷받침 할 수 있는 증거는 전혀 없고 각 측에서 그럴 것이다라고 주장하고
있을 뿐입니다
.  혹자는 정부 입장에서는 자료가
있을 것이라 하지만, 만약 실제로 자료가 있다면 다행히 공개를 해서 모두가 나눠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제가 잘못 찾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인터넷 상에서는 이런
자료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만약 raw 데이터가 전혀 없다면…  이건 이 포스팅 이상의 더 큰 일입니다.

마찬가지로 약국들의 생존 문제도 충분히 경제학적으로 예측할 수 있습니다약국들의 수입원을 분석하고, 슈퍼/편의점 판매가 시행될 경우 수입의 감소를 예측하면 되는 문제입니다.

하지만 제가 정말 다루고 싶은 얘기는 국민들이 원한다는 주장입니다한국말로는 잘 모르겠지만, 영어로는 Slippery Slope란 것이 존재합니다, 한 주장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말도 안되는 결론이 나올 경우 그 주장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당연히
해 줘야 한다는 논리는
slippery slope의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100년 전 노예제도가 존재할 당시, 60년 전 인종차별이 존재할 당시 많은 수의 국민들은 이를 유지하고 싶어 했습니다.
일반의약품과 노예제도 또는 인종차별을 어떻게 비교할 수 있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 이 모두 국민이 원하기
때문이란 이유가 공통점입니다
, 일반의약품과 노예제도 사이에는
수많은 다른
국민들이 원하는
것들이 존재하며 과연 어디서 선을 그어야 하는 지가 명확하지 않고,
그래서 이 모두 눈덩이 같은
slippery slope 상에 존재하게 됩니다.

또한 국민이 원해서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증거 또한 불분명합니다최근 소비자보호원이 500명의 성인남녀를 대상으로 박카스를 약국 외 슈퍼에서 살 수 있길 바라느냐는 조사를 했다고 하고,
70% 넘는 사람들이 그렇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다양한 언론에서 보도된 후 인용되는 이 자료는 소비자보호원 홈페이지에서
일반의약품,” “슈퍼판매,” “박카스등으로 검색을 해도 나오지 않습니다조사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이 조사가 어떻게 모델 되었고 어떤 질문들을 바탕을 어떻게 진행되었는 지
쉽게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과연 4
7백만 국민이 존재하는 한국에서 달랑
500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를 국민 전체가 원한다고 주장할 수 있는 지
의문입니다
물론, 그럼 국민 전체 조사를
해야 하냐
!라고 반박한다면
국민 전체 조사는 결국 국민 투표이고 이 사안이 국민 투표가 필요한
것인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500명이 국민 전체를 대표하지 않는다는 건 확실합니다그럼 500명 결과를 만 배 하면 5천만이 되니까 결과를 만 배를 하면 되지 않느냔 주장은.
기본적인 과학 실험을 해 보신 분,
그 중 임상의약품 시험을 해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500명으로 인구 전체를 대변하는 것은 큰 무리입니다.

또한 연구 방법도 중요합니다.

최근 컨설팅 펌 맥킨지에서 제정된 후부터 지속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미국 의료개혁법과 관련된 설문 조사를 했습니다.
결론은 의료개혁 때문에
30% 고용주들이 더 이상 직원들에게 의료보험 혜택을 주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의료보험을 갖고 있는 사람들 중
50% 정도가 직장을 통해 의료보험 혜택을 누리고 있으므로 정말 충격적인
결과가 아닐 수 없었고
, Wall Street Journal이나 로이터
등 다양한 언론에서 보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몇 몇 정책자들은 이 설문조사를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기자 중 몇 명이 맥킨지의 설문 조사를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설문 조사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 어떤 질문들을 이용해 설문 조사를 했으며, 몇 명에게 어떤 방식으로 문의하여 그 중 몇 퍼센트가 응답을 했는 지 등의 기본적인 연구 방식을 알
수 없었습니다
한 기자가 맥킨지에 연락을 취한 결과 설문 조사 방식을 공개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설문조사 방식을 정확히 알지 못하고서는,
그 결과가 얼마나 신빙성 있는 지를 판가름 하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특히, 질문에 따라 응답률과 응답 자체가 달라질 수 있음 명확하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노예제도나 인종차별과
같이 인간의 기본권과 관련해서 객관적 자료를 제공하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  마찬가지로 임신중절수술이나
동성애자들의 인권도 경제학적,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정책을 결정할 수 없는 문제들입니다.  하지만 일반의약품과 같이 누가 봐도 경제 (commerce)와 관련된 정책 방향은 충분히 객관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진행할 수 있는 이슈입니다.  10년 넘게 정치적 공방을 벌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경제학적 분석이 없다는 것은 한국 정책에 있어 think tank들의 부재를 보여준다 생각합니다. 

To be continued.

당당하게 주장하기 follow up

국가나 문화를 막론하고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권리를 주장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가장 큰 문제는 보복 (retribution)이다.  보복의 종류는
다양하다.  제기했던 문제가 더 심화될 수도 있고 겉으론 문제가 해결되더라도 차츰 회사 내에서 배척 당할 수 있다.

아마 내가 미친척하고 대들 수 있었던 건 현재 회사에서의 근무기간이 3개월도 남지 않았음을 고려했기 때문일 것이다.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나면 되는 거니까. 

이유야 어찌 되었건, 결론은 이렇다.  나도, 윗사람도 서로에 대한 respect가 생겼다.

윗사람은 내가 밟으면 꿈틀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됐고, 내가 근무 환경에 불만을 품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을 경우 자신의 위치에 문제가 발생할 있음을 인지했다.  속으로 어떤 생각을 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외향적으로는 나를 대하는 태도가 더 respectful 해 진 건 확실하다. 

나는 다른 사람의 태도에 쉽게 반응한다.  개인적인 문제와 다르게, 일을 하는 공간에서는 속으로 나를 어떻게 생각하건 내가 일 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주고 나를 co-worker로 합당한 대우만 해 준다면 나도 속으로 어떤 생각을 하건 일을 할 때는 최선을 다 할 수 있다.  또한, 아랫사람이 문제를 제기 했을 때 이를 개인적으로 받아 들이지 않고 환경 개선에 힘쓴다면 나는 이를 존중한다.  이에 나를 대하는
태도도 더 respectful 해 졌다.  서로 윈윈이라 생각한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배우는 것 중 하나는 현명하게 내 권리를 주장하는 것.

당당하게 주장하기

날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내 성격상 흑과 백, 옳고 그름이 명확하고 포커 페이스란 건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나이가 되도록 항상 바닥에서부터 일을 시작한 관계로, 또 나름 동양의 위아래가 확실한 사회적 통념에 익숙해 있는 관계로 대부분의 사회생활에 있어 가능한 위에서 시키면 시키는 대로 일을 하고 싫어도 싫다는 소리는 하지 않으려 노력해 왔다. 

하지막 이 욱하는 성격 때문에 이건 아니다 싶으면 꼭 한마디씩 말은 하고 넘어간 것 같긴 하다.  한국에서 인턴을 하면서 교수님이 워낙 예뻐해 주셔서 한 펠로 선생님의 눈엣가시였던 적이 있었다.  교수님서 허락해 주셔서 달랑 1달 로테이션을 도는 주제에 대구였는지 대전이었던지 학회를 쫓아 갔던 적이 있었다.  물론 펠로 선생님은 이를 매우 못마땅히 여기셨다.  학회 뒷풀이에서 펠로 선생님이 한참 술을 드시더니 날 보면서 내일 올라갈 차의 자리가 부족하니 넌 버스를 타고 올라오라 했다.  분명 자리가 있었다.  분명 날 고생시키려 함이 분명했다.  그래서 선생님이나 버스 타고 가시라고 했다. 

말턴 때 응급실을 돌면서 r/o acute stroke 환자가 들어왔는데 VIP라며 내과 교수님이 데려와 손을 꼬옥 잡아 주시고 대화를 나누신 후 청진을 시작하셨다.  참다 못한 내가 교수님을 냅다 옆으로 밀어내고 신경과적 검사를 한 후 CT 오더 내리고 바로 신경과를 불렀다.  급한 불을 끄고 교수님이 응급실 밖으로 날 불렀다.  눈빛을 보아하니.  이걸 때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심하시는 것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생각했다.  차라리 때려라.  나중에 응급의학과 선생님들이 남자였음 분명 맞았을 거라 했다.  워낙 레지던트 때리기로 유명하신 교수님이셨다. 

미국에 와서는 별로 큰 사고를 친 것이 없었는데 최근 들어 또 내가 날카로워 지는 것 같다.  한국인으로 기본적으로 내 윗사람이면 우선은 모셔준다.  하지만 시간이 어느정도 지나고 아는 것은 없으면서 윗사람이란 이유로 아랫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것 같은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하면 양보란 없다. 

한국에 비해 미국이란 환경이 일을 하기 쉽다고 인식되는 경우가 있는데, 내 3년간의 경험상 꼭 그렇지만은 않다.  무능한 윗사람도 당연히 있고, 나이가 차면 승진하는 경우도 많고, 남자라고 여직원을 함부로 대하는 경우도 있다.  직원들이 상사들을 평가하기 하지만 정말 큰 문제가 아닐경우 실제적으로 반영되는 경우도 많이 없는 것 같다.  또 직장이 마음에 안 들지만 꾹 참고 견디는 사람들도 꽤 많다. 

지금 같이 일하는 상사 중 내가 한 일을 꼭 자기가 한 일인 마냥 credit을 가져가는 사람이 있어서 오늘 해 줄 일은 다 해주고 말했다.  내가 널 위해 뒷배경에서 일하는 건 괜찮은데, 네가 날 제대로 인정 안 해 줘서 사람들이 왜 더 이상 내가 그 프로젝트를 안 하냐고 물어보는 건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속이 시원했다. 

한국처럼 억지로 술 먹이고 상사가 소리지르고 할 일 다 했는데 집에 못 가는 일은 없어도 미국 회사들에서도 다른 건 다 존재하는 것 같다.  내가 당당히 내 권리를 주장했을 때 어떻게 되는 지는 두고 봐야 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