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재잘재잘

이 또한 지나가리

자본, 시간, 에너지와 같은 resource의 공통점은 그 양이 제한되어 있다는 것이다. 즉, 그 어떠한 개인이나 사회, 국가도 무제한적인 자본, 시간, 에너지 등의 resource를 보유하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사회/국가보다) 많은 양의 resource를 보유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유하고 있는 resource를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예측성은 resource efficiency를 높여준다. 내 돈을 어디에 투자할 것인지, 내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내 열정을 어떻게 쏟아부을 것인지를 결정할 때 나도 중요하지만 내 주변 환경이란 variable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과 미국 모두 정치적 카오스에 빠져있다. 예측성이 저하되면 도박성에 가까워지는데(50:50는 동전던지기와 마찬가지이고, 이는 도박에 가깝다) 그런 사회는 생산성과 안정성에서 높은 점수를 받기 힘들다. 

아까운 자본, 시간, 에너지를 비상식적인, 비헌법적인, 비민주적인 언행에 쏟아붓는 리더들 덕분에. 낭비와 혼란에 빠져있는 것 같다. 

이 또한. 

지나가리.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보리는 만 5세에 우리에게 왔다라고 하지만 사실은 남편이 데려왔고 남편과 지난 5.5년 중 4년을 보내서 그런지 남편과 더 가까웠다. 난 원래 장난도 심해서, 아이 입장에선 가깝지도 않고 밥도 않주는 인간이(난 밥담당이 아니었다) 자신을 괴롭히는 것으로 밖에 여겨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 

실리콘밸리로 이사온 후 함께 보내는 시간이 좀 많아졌고, 아픈 후론 내가 내 손으로 밥도 해먹이고, 아프면 옆에서 밤새 간호도 한다. 산책할 땐 난 그냥 “너 가고 싶은 곳으로 가” 주의인데, 보리도 그걸 알아서인지, 그리고 아빠.엄마.자신은 한 “무리(pack)”라고 생각해선지, 요즘엔 산책 나갈 때 꼭 함께 가자는 나름의 표현을 한다. 

원래 시바견들은 독립성이 강해서 혼자있는 시간을 즐기고 스킨십도 별로 안 좋아한다고 한다. 보리도 같은 공간 안에 함께 있는건 좋아해도, 누가 옆에 딱 붙어 있는건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옆에 누우면 짜증내며 옆으로 도망가곤 한다. 

그러므로 최근 보리가 우리를 옆에 허락함과 동시에, 우리와 함께 있고 싶다는 표현을 하는건. 약해진거다. 

오늘 보리는 나와 만난 후 5.5년 만에 처음으로 자신의 의지로 내 다리에 머리를 얹고 잠 들었다. 수술한, 봉합이 열린 다리가 불편한지 계속 다리를 움직이다 이내 코를 골며 깊은 잠에 빠졌다. 

모든 생명체는 언젠간 이 세상을 떠나야 한다. 그것이 생명의 이치이다. 나는 이 이치를 거부할 생각이 없다. 그렇다고 치료할 수 있는 것을 치료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치료할 수 있는 것은 치료하되, 삶의 균형과 삶의 질을 놓쳐가며 생명연장을 하는 것 자체에 대한 문제점을 제기한 것뿐이다. 

잘 산다는 것. 성공한다는 것. 행복하다는 것. 삶의 의미라는 것. 왜 사는지. 무엇을 향해 이리도 열심히 매일 같이 뛰는지. 

난 결국. 매일 이 순간의 행복을 위해라고 생각하게 됐다. 큰 행복일 필요도 없고 대박일 필요도 없다. 작은 행복들. 보리가 내 품에서 잠드는 경험을 통해 얻은 작은 행복이 오늘의 성공이다. 비록 이 아이의 아픔과 언젠가 다가올 죽음이 슬픔일테지만, 지금 이 순간, 오늘 이 순간엔 나에게 행복이다. 그래서 난 잘 살고 있고, 내 삶은 내 기준에 성공적이고, 난 행복하고, 내 삶은 의미있고, 난 내가 왜 사는지 알 것 같다. 

Poor Unfortunate Souls

이 사실을 언제 깨달았는지는 모르겠으나.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것을. 아주 오래, 어렸을 때 알게 되었다. 그리고 때론. 그 무엇을 얻기 위해 내가 지불해야 하는 것은 내 영혼일 수도 있다는 것을. 내 영혼을 그 누군가에게 준다면. 내 영혼을 그 무엇인가에 바친다면. 그 댓가로 어쩌면 정말 엄청난 것들을 손에 넣을 수 있다는 것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을, 취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도 내 영혼이 흔들렸던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영혼을 이미 팔아 넘긴 사람들은 나를 흔들었고, 영혼을 잃어버린 자들의 세상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그 세상은 때론 화려했고 때론 지구 꼭대기 같았다. 그러나 그 대가는 항상 같았다. 내 영혼이었다. 물욕, 권력욕, 탐욕, 복종 등을 통한, 그를 통한 내 영혼의 굴욕과 몰살이었다. 내 영혼을 팔아 넘겨야 한다는 것이 그 조건이었다.

나는 내가 곧은 사람이라 생각하진 않는다. 난. 그냥 내 영혼을 사랑하고 내 영혼을 지키기로 한. 나를 지키기로 한. 나를 사랑한. 나로 남기로한 사람일 뿐이다.

그런데 세상은 그것조차 참 힘든 곳이었던 것이다.

Poor Unfortunate Souls.

souls

이 모양 이 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5분. 글을 쓰고 빨리 문서로 돌아가야 한다. 주어진 시간은 5분. 마지막으로 제대로 출근한 건. 수요일? 목요일? 마지막으로 제대로 식사를 한 건. 아마도 어저께? 그저께? 방금 급하게 냉장고에 있는 재로를 꺼내 그럭 저럭 괜찮은 김치볶음밥을 만들어 먹었다. 이제는 재료만 조금 있으면 먹을만한 건 만들 수 있는 것 같다.

잠시 눈을 감는다는 것이. 밤 11시 정도에 소파에 누웠다가 아침 6시 반에 겨우 몸을 일으켰다. 중간에. 새벽 3시 반에 남편이 침대로 올라갈 때도 정신을 못 차렸고. 중간에. 5시 정도에 다시 기회가 왔을 때도 혼비백산. 저 세상과 이 세상을 오고갔다.

아침에 커피를 마시며 신문을 읽었는데. 한국 뉴스를 보고 처음엔 헛웃음이 나왔지만 나중엔 손이 바들바들 떨릴 정도로 놀란 것 같다. 무능한 것과. 실력이 없어 아무리 밀어 부쳐도 실력이 나오지 않는 것과. 악한 것은. 다르다. 나는 내가 절대 착한 사람이라 생각하지 않고 나 또한 나름 나쁜 결정을 해 왔고 앞으로도 하겠지만. 그 정도의 선택을 하기 위해선 얼마나 insecure하고 악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5분이 다 되었으니. 나는 다시 내 갈 길을 열심히.

은둔 중 – 뇌의 팽창

자숙의 기간이라고 하기엔. 내가 딱히 자숙할 것이 (지금은) 없기 때문에 옳지 못한 표현이지만. 요즘은 조용히 나만의 공간에서. 성장의 시간? 재충전의 시간? 어쨌든. 뭔가 사회생활을 줄이고 내면에 충실하려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물론 새로운 환경에서 생활반경이 줄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새로운 곳에 왔기 때문에 더 활발히 탐색을 하고 다녀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냥. 나와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한 동안 세상 돌아가는 모습에 “뭣 하러 이렇게 사나”도 싶었다. 지금도. 일면의 나는. 그냥 나와 내 가족이나 잘 살면 되지 뭣하러 세상 걱정하고 다른 사람들 걱정하나 싶다(누군가는 분명 말할 것이다 — 그래, 잘 생각했네, 너나 잘하세요). 어쩌면 그만큼 지쳤다는 것일수도 있고, 그래서 그 어떤 의미를 찾는 시간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의미 없이 앞으로 앞으로 달려가는 것은 그것 자체로 의미가 없으니까.

그러나. 다른 한 편의 나는. 뇌를 열심히 팽창 중이다. 요즘 인공지능 인공지능이 대세다. 핫하다. 인공지능과 관련된 바이오 관련 프로젝트도 매우 많다.

그런데 일을 하다 보면서 깨달았다. 내가. 인간의 두뇌가. 우리 모두가 하나씩 갖고 있는 뇌라는 기관이. 그냥 지능이다. 우리에겐 이 지능을 무한하게 사용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학교란 곳에선. 한국 의대를 학부로 치고 의료법 석사, 로스쿨, MBA까지 합치면 유치원까지 포함해 25년 동안 다닌 학교란 공간에선. 결국 난 지식이 아닌 어떠한 도구가 존재하는지 배운 것 같다. 그 중엔 “언어”가 포함된다. 의사들이 사용하는 언어. 변호사들이 사용하는 언어. 경영인들이 사용하는 언어. 물론 그 언어에는 전문용어, 기본적인 전문지식이 포함되지만 실제로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선 그 분야에서 업무를 해야 한다. 그리고 업무를 하면서 추가적, 실제적 “지식”을 쌓아야 한다. 학교란 공간에서 탑재한 도구들과 언어를 사용해서. (그래서 난 학위나 졸업학교를 중요시 여기지 않는다. 어디에서 도구들의 존재와 기본 사용법을 배워왔느냐가 중요할 수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실제로 그 도구들의 의미와 사용법을 이해하고 있느냐, 얼마나 윤리적으로 그 도구들을 사용할 준비가 되어 있느냐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결국. 인간은. 인공지능과 다를바 없다. 누가. 선생님이. 교수님이. 학원강사님이 나를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그 분들이 나에게 기본적인 도구의 존재와 사용법을 알려주면. 그 후엔 내가 알아서 그 도구들을 사용해 가면서 지식을 습득하고 새로운 도구도 만들어 가며 새로운 무엇인가를 창조해 내야 하는 것 같다. 그래서 그 과정에서 지능적으로 성장해야 하는 것 같다. 인공지능이 똑똑해 질 수 있는 이유는 끊임 없이 데이터가 들어가고 그 데이터를 바탕으로, 그 데이터를 분석해서 새로운 그 무엇인를 배우고 습득하고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라고 해서 다를 바 없지 않는가. 끊임 없이 새로운 지식과 정보, 제대로 된, 쓸모 있는, 의미있는 데이터와 정보를 뇌에 집어 넣고 분석하고 생각하고 검토하고, 그 안에서 인간의, 자신의 윤리적, 도덕적 가치관을 비벼넣어 결과를 도출해 내어 뇌를 팽창시키는 것. 그것이 인류가 성장해 온 과정 아닌던가. 물론, 쓰레기가 들어가면 쓰레기가 나온다는 기본적인 원칙인 인공지능과 인간의 지능, 둘 다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어쨌든 그래서 지금의 뇌를 팽창 중이다. 공부는 어릴 때하라는 말이 굳이 틀린 말은 아니다. 암기는 어렸을 때 훨씬 더 잘됐다. 이제는. 전화번호 7자리도 못 외운다(내가 새로운 사무실 번호를 받은지 지금 2달이 넘어 가는데, 아직도 내 번호를 못 외운다). 그러나, 암기는 암기일 뿐, 왜 암기한 내용이 중요한지, 암기한 내용 1과 암기한 내용 10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즉, connecting the dots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해는 연륜과 경험 그리고 다양한 뇌의 팽창으로 이뤄진다. 그러므로 지식의 축적이 암기시절에 멈춘다면. 외웠던 지식들을 연결할 수 있는 그 엄청난 기회를 놓칠 수 있다. 점 하나와 하나가 열결될 때, 평면이 입체로 변할 때, 정말 머리 위에서 전구 하나가 “빙”!!! 하고 켜 질 때의 느낌을 느낄 수 없게 된다.

나는 분명 학자가 아니다. 내가 읽고 있는 내용들도 학문적인 내용이라고는 할 수 없다. 어디에 어떻게 쓸 내용들일지는 모르겠지만. 우선은. 최소한 미국 대선이 지나갈 때까지만이라도 마음을 안정 시키기 위해.

은둔하며 책을 읽기로 했다.

 

I am back!

너무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어요.

너무 행복해서 왠지 다른 분들께 미안할 정도로, 미안할 이유가 전혀 없는데 미안할 정도로 행복하게 잘 살고 있어요. 행복의 이유가 별건 아니에요. 매일 출근할 직장이 있고, 하루 종일 머리를 쥐어 뜯으며 고민해야 하는 일을 하지만 그런 일을 한다는 것이 즐겁고, 비록 파김치가 되어 집에 돌아오지만 돌아올 집과 가족이 있고 함께 저녁을 먹을 남편이 있다는 것이 행복해요. 매일 남편과 보리와 산책을 하고, 저녁 시간 동안 남을 일을 하거나, 독서를 하거나, 그냥 인터넷 서핑을 하며 조용히 보낼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요.

주말에는 운동도 하고, 장도 보고, 맛있는 음식도 먹고, 낮잠도 자고. 때론 주말이 더 바빠서 월요일에 가장 피곤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주말에 내 가족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점에도 행복을 느껴요.

쓰고 싶은 얘긴 많은데 너무 많이 써버리면 다 사라져 버릴 것 같아서 못 써버리는 그런 행복함인 것 같아요.

인스타그램과의 연동이 끊어져 버려서 사진도 못 올라오고.

이제 서부에도 익숙해져 가고.

다시 블로그로 돌아올까 해요.

기록을 남기는 행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