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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나라는 아이디어(사상) 전쟁 중

궁극적 비극은 악한자들의 억압과 잔인함이 아닌 그러한 억압과 잔인함에 대한 선한자들의 침묵이다

The ultimate tragedy is not the oppression and cruelty by the bad people but the silence over that by the good people.

[ 마틴루터 킹 주니어 ]

문제는. 악한자와 선한자를 구별하기 힘들어 졌다. 나 또한 선과 악이 섞여 있지 않은가. 그 누구도 온전히 선하지도 온전히 악하지도 않다.

세계3차 세계대전을 방불케하는 아이디어(사상)전쟁 중이란 생각이 불연듯 들었다. 과거 유럽의 종교전쟁과 크게 다를바 없어 보인다. 이대로는 승자도 패자도 없을 것이다.

한동안.

글을 쓴다면 어떤 글을 쓸 지 고민을 할 것 같다.

세상에 관대해지는 방법

세상에 관대해지는 방법은 기대치를 낮추는 것이란 것을 깨닫게 되었다.

무엇이든 기대치가 높으면 실망감이 높다.

여기엔 내 자신도 포함된다.

기대치가 낮아지니 이해하지 못할 것이 별로 없어지더라.

6가지 homo 중 지혜로워 그 이름이 붙혀졌다는 현재 유일한 인간이자 인류인 homo sapien들은.

수십만년 동안 진화를 하였으나, 동시에 그리 많이 변하지 않았다.

그것을 받아 들이니 세상이 참 받아 들이기 쉬워 졌다.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과거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가 아닌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라고 하는 말의 의미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Priorities

동시에 10가지를 해야 한다면?

우선 동시에 10가지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멀티태스킹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난 멀티태스킹을 못한다. 밥 먹으면서 TV를 보는 것만해도, TV를 보고 있으면 내가 뭘 먹는지 모르고(입에 뭔가 들어가서 위로 내려가긴 하지만 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한다), 맛을 느끼면 TV를 놓친다.

일을 하면서도 여러가지를 동시에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무엇도 제대로 어느 하나하지 못하는 것을 난 멀티태스킹이라 부른다.

그래서 난 멀티태스킹을 못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해야하는, 하고 싶은, 누군가 나를 필요로하는 것들이 늘어가지만, 내게 주어진 시간, 에너지, 능력에서 한계를 느낀다.

그러므로 난 선택을 해야한다. Prioritization을 해야한다.

내게 중요한 것을 선택하는 것도 방법이지만, 내가 가장 덜 중요한 것을 버리는 것도 방법이다.

버리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내게 주어진, 이미 내 손안에 들어온 것을 버리는 것처럼 어려운 것도 없다. 왜 우리가 쓰레기인줄 알면서도 아깝다며 애지중지 온갖 잡동사니를 집안에 고이 모셔 두는가와 일맹상통한다 생각한다.

버려야 산다.

버릴 수 있는 것을 버린 후 남은 것 중에서도 prioritization이 필요하다. 어떤 것에 집중을 할 지.

“나”에 집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옆집, 앞집, 주변사람이 아닌 나.

내가 살면, 내가 힘이 남으면, 내가 여력이 생기면 다른 것들을 더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니까.

버릴 것은 버리고, 나에게 집중하고. 그러면 조금씩 뭔가 더 prioritization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는 것 같다.

Prioritization.

행복 – 책읽기

사람마다 행복의 기준은 다르다. 다를 수 밖에 없다.

내 행복의 기준은. 여러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책을 읽을 때다. 재미있는 책, 흥미로운 책을 읽을 땐 책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책 안에서 벌어지는 스토리라인 안으로 흡수된다.

그 와중에 가장 행복할 땐 내가 그 스토리라인이 벌어지고 있는 도시, 또는 비슷한 장소에 가본 적이 있을 때다. 그럴때면 정말 내가 책속 캐릭터가 된 것 같은, 또는 캐릭터 바로 옆에 앉아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결국. 잠시나마 행복하게 현실도피를 할 수 있다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편으론. 난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것. 그리고 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런 방식으로 저자와 의사소통한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는 것 같다.

좋게 생각하면 성숙하게 스트레스 해소를 하는 것 일수도 있고. 이렇게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는 것일 수도 있고.

한편으론 너만의 세상에 들어 앉아 있는 것이 더 편해지기도 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주석으론. 더 많은, 좋은 책을 재미있게 읽기 위해선 나도 많은 것을 알고 경험해야 하고, 나 또한 기준과 생각이 있어야 하는 것 같다. 즉, 책의 내용을, 저자의 생각을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면, 그런 일방적인 의사소통의 난 별로다. 더 많이 여행하고, 더 많이 생각하고, 더 다양한 경험을 통해 책의 내용이, 저자의 생각이, 소설 조차도 더 풍부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 비판적 생각도 즐거우니까.

여행가고 싶다. 기승전 — 여행.

동의하지 않지만, 이해하는 하다

나의 의견이 있고, 나의 생각이 있다. 나도 나만의 주장이 있고, 나만의 고집이 있다.

그렇기에 타인 또한 그만의 의견, 생각, 아집, 고집, 편견이 있을 것이란 것을 이해한다.

나와 완전 반대의 생각을 하더라도, 내가 아무리 생각해도 동의할 수 없는, 도무지 대화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편협한 의견을 제시하더라도, 그만의 세계가 있음을 이해한다.

표현의 자유란 것은 결국. 타인을 해하지 않는 이상, 머릿속, 마음속, 가슴속에 있는 그 무엇인가를 언어, 행위, 글 그리고 그 모든것으로 표현할 수 있는 자유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그 표현이 나의 믿음과 정반대의 그 무엇일지라도.

타인을 해(害)하지 않는 이상. 이롭지 못하게 하거나, 방해하지 않는 이상. 자신을 표현하는 것은 자유이다.

버지니아에 모였던 자들이 그러한 믿음을 가졌다는 것만으로 비판할 수 없을 것 같다. 난 그 믿음에 굳게 반대하지만, 그들의 믿음을, 그들이 그러한 생각을 가졌다는 것만으로 처벌할 순 없다. 그것은 법리에도 어긋난다(살인, 폭력 등은 처벌 가능한, 입증 시 처벌해야 하는 행위이다 — 단, 단순히 그곳에 특정 사상을 갖고 참석한 자들까지 살인, 폭력 등의 행위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참여했다는 이유만으론 처벌할 순 없다는 이야기다. 그것은 생각을 처벌하는 것이고, 생각을 처벌할 순 없는 노릇이다).

그들의 생각에는 매우 동의하지 않지만, 그러한 믿음과 생각을 갖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음은 알고 있고 이해한다.

그리울 것이다. 교과서에서만 보던. 과거 야생의 숫사자처럼 백인, 특히 백인 남자들이 군림하던 그 시절이.

현실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상상속이 그 세계가.

자신의 적디 적은 피부 멜라닌 함량과 Y 염색체만으로 존경받던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이 있다하던데, 이젠 아무도 자신을 존중은 커녕 하찮은 존재로 내려다 보는 것 같은 이 현실이 싫을 것이다.

그것이 비록 비백인, 여자, 외국인, 무슬림들의 잘못이 아니더라도. 누군가에게 그 분노를 표출해야 한다면. 감히 그들의 알파인 힘많은 부자 백인남자들을 대상으로 삼을 순 없으니, 약해 보이는 희생양들을 대상에게 분노를 내뿜을 뿐이다.

동의하지 않는다. 그리고 처벌 받아야 하는 자들은 처벌해야 한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을 갖고 행동하는 자들이 그럴 수도 있겠다란 생각이 든다. 인간의 심리란 것이 그렇겠다 싶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그들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과거 세상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가 꽃향기 가득한 아름다운 세상일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그들이 그리워하는 과거 숫사자들의 세상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뿐이다.

그리고 그 숫사자들의 영역을 야금야금 빼앗아 먹은 것은 여자도, 외국인도, 특정 종교인들도 아닌, 야생동물들의 정치, 정책, 경제, 인간의 욕심, 욕망, 도덕성, 죄악, 윤리, 종교 등 수많은 이유들이었음을.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家 집 가
和 화할 화
萬 일 만
事 일 사
成 이룰 성

집안이 화목(和睦)하면 모든 일이 잘 된다.

집안이 화목하다고 해서 모든 일이 잘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집안이 화목하지 아니하면, 집밖의 일이 잘될리가 없단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요즘. 우리집은 참 가고 싶은 곳이다. 완벽한 곳은 아니지만. 해가 질때가 되면 돌아가고 싶은 곳이다.

Play by the Rules

인간의 심성이 다 그런건지도 모르겠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효율성을 찾는 것 같고, 그 효율성을 찾는 방법 중 하나가 때론 영어표현으로 cutting corners일 때가 있는 것 같다. 즉, 일반적으로 지켜야 하는 규정 또는 과정이 1-10이라면, 그 중 뛰어 넘어도 티가 나지 않는, 반대로 해도 별로 티가 나지 않는, 그래서 하나 안하나 별로 차이가 없는 규정이나 과정은 무시하고 넘어가 버리는 행위를 하곤 한다. 나 또한 그러고자 하는 욕구가 매일 매일 몇번씩 있다. 이를 영어표현으론 cutting corners라고 한다. 또한. Not playing by the rules이기도 하다. Rule은 1-10을 차례대로, 또는 차례대로가 아니더라도 1-10을 모두 하는 것인데, 하나라도 뛰어 넘으면 룰대로 하는 것이 아니니까.

예전에 왕짱님이 종종 breaking the rule, not playing by the rule까진 아니어도 뭔가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bending the rule을 하는 것처럼 보일 때마다 나에게 말씀해 주셨다,

그런 열정과 용기,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갖고 돌진해 나아가는 것은 매우 좋은 자세다. 그러나 언제나 기억해라.

Play by the rules. You always need to play by the rules.

한번 내가 룰을 어기면, 아무리 내 의도가 좋았다 하더라도 내가 룰을 어겼다는 것 때문에 의도 자체가 무관해 질 수 있다는 것을 시간이 지나며 배우고 있다.

그렇다면 룰이 마음에 안들면, 룰 자체가 불공평하다면.

맞다. 그래서 정책/법 공부를 시작한 것이었다.

불공평한 룰이 있다면 룰을 어떻게 만들고 바꿀 수 있는지 배워서 룰 자체를 바꿔야 하는 것이지, 룰을 건너 뛰거나 룰을 지키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