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졸업 후 비임상 – 누가 해야 하나? 어떻게 해야 하나.

저는 본과 2학년이었던 2000년도에 임상의사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습니다. 계기는 여러가지였지만, 가장 큰 이유는 의학이란 학문이 제 적성에 맞지 않았고, 평생 의학을 하며 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으며, 의료가 속한 사회과학을 독학하며 의료정책과 법에 빠져들어 자연스럽게 변호사의 길로 접어 들게 된 것입니다.

저는 뭔가 마음을 먹으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 아닌 경우에는 끝까지 도전을 해보는 성격이어서, 제가 마음먹은 내용을 숨기지 않았고 주변 친구들, 선후배들, 가족과 터놓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연대에서 폴리 실습을 시작한 후에는 교수님들과 전공의들이 자연스럽게 학생을 무엇을 전공할 것이냐고 물어봤었고, 서울대에서 인턴을 할 당시에는 인턴선생은 내년에 무슨 과를 지원할 것이냐는 질문을 밥먹듯 들었습니다.

3년 동안

“저는 의료법을 전공할 계획입니다.”

또는,

“저는 변호사가 되어 볼까 합니다.”

라는 대답을 했을 때 대부분의 반응은, 저희 남편을 포함해서

의아함, 당황함, 황당함, 때로는 비웃음, 안스러움, 그것해서 밥은 먹고 살겠느냐, 네가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줄 알고 하는 소리냐 등등이었지,

“열심히 해보게!”

는 아니었습니다.

10년이 지나, 이제 연대는 진로박람회를 통해 학생들에게 비임상을 포함한 다양한 진로를 학생들에게 소개해 주는 통로를 마련하였고, 서울대의 경우 학생경력개발센터를 만들어 학생들의 비임상진로상담을 도와주겠다고 하니, 나름 뿌듯하고 저를 믿어준 남편이 고맙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비임상의 길을 걸어온 한국의사로 몇가지 조언을 드리고 싶습니다.

첫 번째는, 비임상의 길은 험난합니다. 요즘은 “임상의 길도 험난하다”라고 말씀하실 수 있겠지만, 최소한 의사는 의대에서 임상을 최소 4년 배운 후 졸업을 하고, 이후 추가 수련을 받게 되므로, 임상에 대한 기본지식과 술기능력이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의과대학에서는 기초과학을 제외하고는 비임상 관련 수업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므로, 비임상을 길을 걷기 위해선 처음부터 모든 것을 새로 배운다는 자세로 시작해야 하므로 길이 험난할 수 밖에 없습니다.

두 번째는, “나는 의사다”라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비임상 세계에서 “의사”라는 딱지는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선생님이고 불리고 싶다면, 의사라는 타이틀을 유지하고 싶다면, 의사여서 특별한 대우를 받고 싶다면, 비임상의 길을 다시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의사는 의대에서 의학을 배우고 졸업합니다. 비임상의 세계에서 “의학”은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 경우, 이제는 기업을 대리하는 중간 레벨 변호사를 하면서, 바이오 기업들의 기술을 재빨리 이해하고, 의사 및 과학자 클라이언트들과 관계형성을 하는데에 있어선 의사라는 점이 이제는 매우 큰 도움이 되고 있지만, 처음 비임상의 길에 들어섰을 떄는 그저 로스쿨 학생이었을 뿐이었고, 그저 회사에서 대학생들과 함께 일하는 무급 인턴일 뿐이었고, 한 때는 그저 시급 만원도 못 받는 인턴일 뿐이었을 시절도 있었습니다. 하물며, 초짜 변호사일 떄는, 로펌 직원에게 “너 의사인 것 아는데, 그래도 넌 1년차야”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습니다. 그 누구도 저를 닥터 킴이라고 불러주지 않고, 제 이름 뒤에 MD도 붙지 않습니다. 의사이기 때문에 비임상 세계에서 특별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한다면, 비임상 세계에서 성공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세 번째는, 비임상을 하는 것이 유행이어서 비임상을 선택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비임상”이라고 묶어서 이야기하고 있지만, 비임상도 분야가 매우 다양합니다. 이 다양한 분야 중에서, 자신의 적성에 맞는 분야를 찾아 평생 커리어를 키워 나아가야 하는데, 단순히 유행처럼 임상을 하지 않고 비임상을 선택해 버린다면, 그 또한 바람직하지 못한 전공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의사가 할 수 있는 다양한 비임상 옵션에 대한 글을 여기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링크)

네 번째, 비임상을 하기 위해선 추가적 공부를 해야 합니다. 위에서도 언급했듯, 의대에서는 의학을 공부합니다. 비임상을 하기 위해선 원하는 비임상 과목에 대한 추가 공부를 하셔야 합니다. 경영이면 경영, 법학이면 법학, 기초과학이면 기초과학, 보건학이면 보건학. 추가적 학문적 공부 없이 비임상으로 뛰어들어 성공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전문의(보드)의 필요성에 대해 고민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추구하는 비임상 영역에 따라 갈리게 됩니다. 저와 같은 사회과학/인문학 분야에서는 전문의 자격증이 전혀 필요 없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인턴과정을 수료하고 로컬에서 몇 년간 근무했던 경력은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MD로써 최소한의 경력이 있다는 것을 어느정도 인정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바이오 기업내에서 의료 전문가로 근무를 하실 경우에는 한 분야의 전문가로 취업을 하는 것이 좋은 경우도 있으므로, 이는 결국 case by case로 본인이 원하는 비임상 분야에서 필요로 하는 임상경력을 바탕으로 자신의 커리어를 쌓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글을 올린 후 한 가지 더 추가합니다.

혹시나 잘 안되면 임상으로 돌아가면 된다는 생각.

그 생각은 독약입니다.

돌아갈 수는 있습니다. 사실입니다.

하지만, 비임상의 길이 아니면 안된다는 죽을 각오로 뛰어들 생각이 아니시라면 처음부터 비임상에 도전하지 않으실 것을 권합니다.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곳이 있다는 마음으로 어정쩡하게 비임상에 도전을 한다면, 이는 시작도 하기 전에 실패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냥 임상에 남아 계실 것을 권합니다. 저는 비임상에 놀러 나와 본, 실습 한 번 나와 본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법학에 제 인생을 건, 승부를 건 사람이었고, 그 악착 같음과 악에 받침이 여기까지 저를 끌고 왔다고 생각합니다. 의사가 비임상의 길을 걷은 high risk high return의 모험이며, 인생을 걸수 있다는 각오 없이는 도전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One thought on “의대 졸업 후 비임상 – 누가 해야 하나? 어떻게 해야 하나.

  1. GH Kim

    자신이 선택한 길을 개척해서 나아가고 또 뒤에서 오는 사람들을 위하는 모습에 용기를 얻습니다. 한 길을 꾸준히 걷다 보면 언젠가는 목적지에 도달할 것입니다.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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