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의 주 근무시간 80시간 제한이 해결방안이 아닐 수도 있는 이유

저는 단 1년의 수련과정을 겪었습니다. 번데기 앞에서 주름을 잡으려는 것이 아니라, 제 경험을 있는 그대로 말하자면, 1년 동안 주말포함 단 3일의 휴가를 다녀왔으며, 한 달에 한 번 집에 간 적도 있습니다.

현재 한국과 미국 모두의 수련환경은 강제노동과 비슷합니다. 장기적으로 높은 수익을 보장해 줄테니(사실 수련병원이 보장해 주는 것도 아닙니다), 지금은 고개 숙이고 시키는 대로 일하라는 강압적인 환경이 사실입니다. 한국의사들은 미국 레지던트들은 비교적 편하게 수련생활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복잡한 의료환경을 정해진 근무시간 안에 해결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아 보입니다. 오히려, 갈수록 환자의 인권을 더욱 더 존중해 주고, 낮은 수가 하에서 병원 수익을 걱정해야 하며, 정책인들도 100% 이해하지 못하는 미국의 의료환경 속에서 리더로 활동해야 하기에 그들의 수련환경 또한 challenging하다고 생각합니다. 남편만 해도, 하루 12시간의 근무를 마치고 돌아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파김치가 되어 다음 근무시간을 기다립니다.

오늘 뉴스를 보니, 보건복지부에서 수련의 근무시간을 주 당 80시간으로 제한하는 방안을 추진한다는 기사가 나왔습니다. 우선, 미국에서도 어림잡아 80시간으로 대충 맞춰잡은 근무시간을 그대로 따라하는 것과도 같은 정책이란 생각이 듭니다. 과연 이 80시간이란 제한은 어떻게 정한 것인지 궁금합니다. 과학적인 근무시간 계산방식이 있었는지요?

그리고, 주 근무시간 80시간 + 한 근무타임 당 16시간 제도를 시행하기 시작한 지 이제 2년이 되어가는 미국에서 나오는 연구결과들에 대한 분석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다양한 연구결과들에 의하면, 근무시간을 80/16으로 제한한다고 해서 인턴들의 수면시간이 늘지 않았으며, 수련환경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지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렇다고 근무를 하지 않는 시간에 더 많은 공부를 하는 것도 아닌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JAMA) (주 당 80시간 제한은 이미 2003년에 도입된 바 있습니다.)

더 나아가, 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수련의 중 반은 이런 근무시간 제한 자체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NEJM)

다른 스터디에 의하면 인턴들은 근무시간 제한으로 인해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든다고 했습니다. (JAMA)

특히 정책자들이 눈여겨 봐야 할 논문 중 하나는, 수련시간 제한으로 인해 환자가 겪는 의료의 질이 의미있다고 할 정도로 나아지지 않았다는 결론을 보고한 것입니다. (JAMA)

솔직하게 말했으면 좋겠습니다. 현재 인턴과 레지던트 3-4년차의 근무시간은 천지차이인 과가 많습니다. 즉, 어린 연차에게 독박을 씌우는 것입니다. 교수님들 중 당직을 서시는 분들이 몇이나 계신지요? 근무시간을 강제적으로 제한하기 전에, 일의 배분을 공평하게 나누는 방식은 생각해 보셨는지요? 근무시간 제한은 풍선의 한 쪽을 꾸욱 누르는 정도의 정책 밖에 되지 않습니다. 한 쪽을 누르면, 분명 다른 쪽이 튀어나오게 됩니다. 위의 논문과 설문조사가 이를 반영합니다.

미국의 경우, 근무시간 제한으로 인해 한국과 비슷한 night float란 당직 시스템이 개발됐습니다. 즉, 퇴근을 하는 수련의들이 한 명 또는 소수의 수련의에게 자신의 환자를 모두 던지고 퇴근하는 것입니다. 근무시간 제한이 있으니 퇴근은 해야하고, 누군가는 환자를 봐야하니 만들어진 개념입니다. 위의 논문들에 보면, 환자에게 제공되는 의료의 질이 너무나도 낮아져 간호사들이 들고 일어나 night float를 없앤 병원도 있습니다. 어린 의사들 또한, 80/16 근무시간 제한 전보다 더 많은 의료사고가 발생하고 있는 것 같다는 대답도 한 바 있습니다. 이미 night float 시스템을 최소한으로 운영하고 있는 병원들은 이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요? 낮은 수가를 유지하면서 의사들에게는 울며겨자 먹기로 더 많은 의사들을 고용하라는 것인지요?

절대 비꼬는 글도, 비판하는 글도 아닙니다. 궁금한 것이 많을 뿐이고, transparency를 원할 뿐입니다.

4 thoughts on “수련의 주 근무시간 80시간 제한이 해결방안이 아닐 수도 있는 이유

  1. 준슥

    주 근무시간 80시간이 해결방안은 아닐 수 있지만 해결방안을 위한 변화의 시작일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 100-120시간 이상씩 일하는 것이 정상은 아니지 않습니까?

    Reply
    1. Jekkie Post author

      어떤 말씀이신지 이해하고 공감합니다. 아마 이 문단이 제 답이 아닐까 싶습니다:

      솔직하게 말했으면 좋겠습니다. 현재 인턴과 레지던트 3-4년차의 근무시간은 천지차이인 과가 많습니다. 즉, 어린 연차에게 독박을 씌우는 것입니다. 교수님들 중 당직을 서시는 분들이 몇이나 계신지요? 근무시간을 강제적으로 제한하기 전에, 일의 배분을 공평하게 나누는 방식은 생각해 보셨는지요? 근무시간 제한은 풍선의 한 쪽을 꾸욱 누르는 정도의 정책 밖에 되지 않습니다. 한 쪽을 누르면, 분명 다른 쪽이 튀어나오게 됩니다. 위의 논문과 설문조사가 이를 반영합니다.

      Reply
  2. Anonymous

    근무시간규제가 다른 정책의 해결방안이라고 생각하는 거 자체가 문제가 있네요.

    일반적인 근로시간기준이 주 40시간임을 감안해도 2배인데…

    근무시간 규제는 어디까지나 노동자로서 보장받아야 할 최소한의 규제라고 이해하는게 더 타당하지 않을까요.

    정책 자체로 충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정상적인 구조라면 레지던트나 인턴이 하나도 없다고 하더라도 병원이 제대로 돌아가야 맞는거죠.

    과거에 절대적인 전문의 수가 모자랄 때

    소수의 전문의가 다수의 환자를 효율적으로 진료하기 위해 구축된 시스템인데…

    현재는 전문의도 초과잉 상태이고 그럼에도 레지던트 정원 또한 오히려 늘어나는 초과잉 공급상태이죠.

    그결과 막상 전문의를 취득하더라도 전공을 살려서 전문과목 진료를 할 일자리는 굉장히 적습니다.

    결국 전문의 취득해서 일반진료나 전공외 진료를 하는 비율이 극단적으로 높지요.

    향후 병원에 레지던트 정원은 대폭 축소하고 그 빈자리를 채울 전문의 인력을 대폭 늘리는게 정상적인 구조일 겁니다.

    수가가 안된다느니 이런 현실적인 지적은 사실 본질에 물타기하는 부분도 많다고 생각이 됩니다.

    Reply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