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thor Archives: Jekkie

이 또한 지나가리

자본, 시간, 에너지와 같은 resource의 공통점은 그 양이 제한되어 있다는 것이다. 즉, 그 어떠한 개인이나 사회, 국가도 무제한적인 자본, 시간, 에너지 등의 resource를 보유하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사회/국가보다) 많은 양의 resource를 보유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유하고 있는 resource를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예측성은 resource efficiency를 높여준다. 내 돈을 어디에 투자할 것인지, 내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내 열정을 어떻게 쏟아부을 것인지를 결정할 때 나도 중요하지만 내 주변 환경이란 variable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과 미국 모두 정치적 카오스에 빠져있다. 예측성이 저하되면 도박성에 가까워지는데(50:50는 동전던지기와 마찬가지이고, 이는 도박에 가깝다) 그런 사회는 생산성과 안정성에서 높은 점수를 받기 힘들다. 

아까운 자본, 시간, 에너지를 비상식적인, 비헌법적인, 비민주적인 언행에 쏟아붓는 리더들 덕분에. 낭비와 혼란에 빠져있는 것 같다. 

이 또한. 

지나가리. 

Standing Ground / Do Your Job

나는 고집이 센편이다. 경쟁심도 강한편이다.

그런데 경험이 쌓이면서, 나이를 먹으면서. 고집을 부려야할 상황과 양보해야 할 상황을 구분하기 시작했고, 경쟁을 피할 수 있다면 경쟁을 피하는 것이 더 효율적일 수도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됐다. 그래서. 꼭 고집을 부려야 하거나, 경쟁을 해야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꼭 논쟁이나 언쟁을 해야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피할 수 없는 판단이 서지 않는 이상 굳이 손톱발톱을 내밀지 않는다.

고집의 경우. 결국 내 의견을 굽히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변호사로, 전문가로 내 의견을 굽히지 않는다는 것은 내가 내 전문적 의견에 확신을 갖기 때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이 고집은 항상 상대측, 즉 내 클라이언트의 반대측에게만 부리는 것은 아니다. 때론 내 편에게, 내 클라이언트에게 부려야 할 경우도 있다. 물론 설득하고 설명하고 때론 클라이언트의 반박에 당황하기도 하지만. 전문가라면. 클라이언트가 내가 전문가이기 때문에 나를 찾았다면, 나는 그에게 최대한 프로페셔널한, 내가 판단했을 때 올바란 조언과 전략과 방향으로 딜을 이끌어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내 임무이자 내 역할이다.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 감독인 벨로첵 감독은 선수들에게 항상 “너의 역할에 충실하라(Do your job)”라는 이야기를 한다고 한다. 패츠 팬들은 이 말을 상당히 좋아한다. 뉴잉글랜드 사람들의 성향도 사실 비슷하다.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다하는 사람들. 비가 오나 눈이오나 바람이 부나.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고, 타인을 돕고, 자신이 속한 지역에 관심을 갖고 나누고. 그것 또한 자신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이니까.

보스턴에서 변호사로 성장하면서 내가 배운 것 또한 그것이다: 너의 역할에 충실하라.

내 역할은 변호사로, 클라이언트의 법조인으로 객관적이고 가장 프로페셔널한 법적 자문을 하는 것이다.

나는 대부분 40-60대 백인남자 대표님들와 이사님들을 상대로 업무를 한다. 때론 그분들의 무언의 압박이 존재한다.

그러나. 그러한 압박에 흔들리지 않고 내가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의견을 제시하고, 자문을 하는 것이.

그것이 내 가치이자 역할이다.

이 부분에 있어선. 절대로 양보할 생각이 없다. 언제나 고집을 부리고, 내면의 경쟁을 유지해야 할 부분이다.

Stand your ground. Do your job.

캘리포니아 바시험 공부 2일째 아침

10년 만에. 처음으로 이해한 개념이 있다. 너무너무너무 행복하다️.

도대체 누가 날 로스쿨에서 졸업 시켜줬으며, 난 어떻게 변호사 면허를 받은 걸까. 매우 궁금하다.

덧글.

난 커피숍에서 공부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개인취향이므로, 커피숍에서 공부하는 분들에게 뭐라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난 그렇다고 도서관에서 공부가 잘되는 것도 아니다. 즉. 아주 조용한 공간에서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오늘도. 토요일 아침 필라테스 운동을 위해 스튜디오에 가서 주변에서 다른 사람들은 운동하고 있는 와중에 난 내 차례를 기다리며 이어폰을 꽂고 구석에서 인터넷 강의를 들으며 공부하고 중간중간 딴짓도 하고 남편 운동하는 거 구경도 하며 공부했다. 난 결국. 공부환경보다는. 내가 공부하고자 하는 내용이 훨씬 중요한 것 같다. 내용이 재미있으면. 어디서 공부하든 상관없다.

내 포인트는. 사람마다 공부하는 방법이 다르다는 것을 배우고 있다는 것이다. 남편의 경우 항상 주변소음이 있어야 하고 공부 전에 약간 졸아줘야 하며 집중하면 꽤 오랜시간 엉덩이를 붙이고 있는 것 같다. 남편은 아침에 집중을 잘하고 난 저녁에 집중을 잘한다.

난 스터디를 별로 안좋한다(예외적으로. 2시간 스터디 후 10시간 뒷풀이 모임은 환영한다). 난 암기나 경쟁보단, 시험과 무관한 토론을 즐긴다. 그래서 특정 목적이 있는, 때론 서로 경쟁하는 스터디가 별로다.

정해진 것은 없다.

자신에게 맞는 것을 찾아가는 것. 찾아갈 수 있는 것.

그것이 행복이자 축복이다.

캘리포니아 바시험 공부 1일 후 소감

흠. 난 참 아는게 없구나. 
어떻게 뉴욕/매사추세츠 바시험은 통과했을까?
기적이었다. 

공부는. 외우는 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이해하고 공부하니. 공부가 너무너무너무너무 재미있다❤️💕

(난 학교를 정말 싫어한다. 무지 오래 다닌건… 좋아서 다닌게 아니다.)

이해하지 못하고 암기하는 건. 빅데이터로 비유하자면 데이터 덤핑만 하는 것 같다. 데이터를 분석할 줄 알고 그 분석한 내용을 적용할 수 있어야 진정한 빅데이터의 의미가 생기고. 그것이 “지능”(intelligence) 아닌가? 외우는 것. 그냥 “저장”(storage)일 뿐이다. 난 USB가 되고 싶지 않다. 

행복하다. 

월급 다 받고. 심심하면 사무실 놀러가서 친구들과 밥 먹고 수다떨고. 

한 달 동안 공부만!!! 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행복하다😭😭✌️️✌️️😭✌️️😭😭😭😭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보리는 만 5세에 우리에게 왔다라고 하지만 사실은 남편이 데려왔고 남편과 지난 5.5년 중 4년을 보내서 그런지 남편과 더 가까웠다. 난 원래 장난도 심해서, 아이 입장에선 가깝지도 않고 밥도 않주는 인간이(난 밥담당이 아니었다) 자신을 괴롭히는 것으로 밖에 여겨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 

실리콘밸리로 이사온 후 함께 보내는 시간이 좀 많아졌고, 아픈 후론 내가 내 손으로 밥도 해먹이고, 아프면 옆에서 밤새 간호도 한다. 산책할 땐 난 그냥 “너 가고 싶은 곳으로 가” 주의인데, 보리도 그걸 알아서인지, 그리고 아빠.엄마.자신은 한 “무리(pack)”라고 생각해선지, 요즘엔 산책 나갈 때 꼭 함께 가자는 나름의 표현을 한다. 

원래 시바견들은 독립성이 강해서 혼자있는 시간을 즐기고 스킨십도 별로 안 좋아한다고 한다. 보리도 같은 공간 안에 함께 있는건 좋아해도, 누가 옆에 딱 붙어 있는건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옆에 누우면 짜증내며 옆으로 도망가곤 한다. 

그러므로 최근 보리가 우리를 옆에 허락함과 동시에, 우리와 함께 있고 싶다는 표현을 하는건. 약해진거다. 

오늘 보리는 나와 만난 후 5.5년 만에 처음으로 자신의 의지로 내 다리에 머리를 얹고 잠 들었다. 수술한, 봉합이 열린 다리가 불편한지 계속 다리를 움직이다 이내 코를 골며 깊은 잠에 빠졌다. 

모든 생명체는 언젠간 이 세상을 떠나야 한다. 그것이 생명의 이치이다. 나는 이 이치를 거부할 생각이 없다. 그렇다고 치료할 수 있는 것을 치료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치료할 수 있는 것은 치료하되, 삶의 균형과 삶의 질을 놓쳐가며 생명연장을 하는 것 자체에 대한 문제점을 제기한 것뿐이다. 

잘 산다는 것. 성공한다는 것. 행복하다는 것. 삶의 의미라는 것. 왜 사는지. 무엇을 향해 이리도 열심히 매일 같이 뛰는지. 

난 결국. 매일 이 순간의 행복을 위해라고 생각하게 됐다. 큰 행복일 필요도 없고 대박일 필요도 없다. 작은 행복들. 보리가 내 품에서 잠드는 경험을 통해 얻은 작은 행복이 오늘의 성공이다. 비록 이 아이의 아픔과 언젠가 다가올 죽음이 슬픔일테지만, 지금 이 순간, 오늘 이 순간엔 나에게 행복이다. 그래서 난 잘 살고 있고, 내 삶은 내 기준에 성공적이고, 난 행복하고, 내 삶은 의미있고, 난 내가 왜 사는지 알 것 같다. 

역사의 반복

1. 국정원 댓글사건이 갑자기 생각났는데. 찌라시 언론에 휘둘리는 것도 모자라 국정원이 됐든 초등학생이 됐든, 누군가의 댓글에 휩쓸려 투표를 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은 한국이 과연 교육수준은 높으나 “생각”할 줄 아는 집단으로 이루어진 공간인지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2. 외부에서 봤을 때 현재 남한은 안보적으로 매우 위태로운 상황이다. 물론 이는 박가가 하고 싶어하는, 듣고 싶어하는 말일테고 그래서 모두 집에서 조용히 자기 할 일하고 자기 자리로 돌아가라고 하고 싶겠지만, 그건 아니다. 당신이 저질러 놓은 일이므로, 돌아서서 다른 이들에게 가만히 있으라 할 권리는 당신에게 없다. 국정원도 마찬가지다. 국가의 안보를 책임져야 할 집단이 국가의 안전과 안보를 이렇게 위태롭게 만들었으니 (그것도 댓글로??) 참 아이러니하고 씁쓸하다.
3. 한 때 계염령 이야기가 나왔으나 참 계엄령 같은 소리하고 있네라 생각했었다. 아버지 박가에 대한 책을 읽고 있는데 쿠테타 당시 기록에 따르면 박가에 저항하는 세력 또는 마찬가지로 쿠테타를 일으키려 했으나 국가 안전을 위해(쿠테타는 보병이 아닌 무기로 밀어 부쳐야 하므로 front line 부대들이 필요/유리한데 전선 부대들이 서울로 들이닥칠 경우 전선이 비게 되므로) 결국 그들은 “가만히 제자리를 지켰고” 그 후 박가에게 무영장으로 체포되어… 그 후에 대한 기록은 내가 읽고 있는 책엔 없지만 개인적으로 아는 분들이 있어 개인가족사로 이야기를 들은 바 있다. 결국,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 군을 움직여 나라의 안전을 완전히 위협시키겠다는 발상은 도대체 어디에서 왔을 수 있는지(만약 그러한 생각을 조금이라도 했다면) 알 수가 없다.
4. 남한은 현재 그 지리적 위치 덕분에 이 난리 난리를 북한, 중국, 일본 사이에서 아직까지는 평화시위를 통해 풀어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뻔한 이야기겠지만. 남한의 많은 역사는 결국 그 지리적 위치 때문에 파생된 것들이 참 많다. 또한 그 긴 역사에 비해 좋은 지도자를 만난적이 참 손에 꼽을 정도로 빈약하다.
5.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지금의 국가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순히 지리적 위치나 우연은 아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난 그것이 주님의 축복이 있었기에(난 카톨릭이다), 한민족이 위대하기 때문에, 또는 원래 benevolent한 독재와 어느정도의 corruption은 소금과 후추마냥 뿌려줘야 국가가 성장할 수 있는 것이기에 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지난 10년 간 신문과 경제.경영 관련 서적을 매우 많이 읽었다면. 앞으로 10년은 역사서적을 참 많이 읽을 것 같다. 생각보다. 역사는 정말 많이 반복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38번째 생일, 아델, 그리고 멕시코

우선. 생일 축하해 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이렇게 늦게 감사인사 드려 죄송합니다. 올려주신 글과 보내주신 메시지는 당일 모두 읽었습니다. 🙂

그냥 “감사합니다~” 한 마디를 남겨드리고 싶진 않아서 고민하고 미루고 미루다 일주일이 훅 가버렸습니다. 요즘 시간은 정말 고속열차보다 빨리 지나갑니다.

우선 저는 기념일을 그렇게 따지는 성격이 아닙니다. 대학생 때야 이런저런 기념일들을 챙기는 것이 그냥 그 나이 때하는 일이었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게 다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 사실 남편과도 결혼기념일 정도 챙기는 것 외엔 생일, 발렌타인데이, 크리스마스 등등 챙긴 적이 (별로) 없습니다 (별로는 생일에만 해당됩니다; 발렌타인데이.크리스마스는 서로 챙겨준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남편과 떨어져 산 9년 동안 제가 보낸 생일은.

2006년(로스쿨 1학년): 클리블랜드에서 친구 3명과 평일 조촐한 저녁식사. 남편은 한국.

2007년(MBA 해): 기억 안남. 남편은 한국.

2008년(로스쿨 2학년): 보스턴 친구들. 남편은 여전히 한국.

2009년(로스쿨 3학년): 보스턴 친구들. 남편은 아직도 한국.

2010년(로비이스트): 남편과 드디어 보스턴에서 데이트.

2011년(로펌 0/1년차): 9시인지 11시인지, 야근 후 혼자 프루덴셜 건물 52층에 있는 Top of the Hub에 올라가서 스카치 한 잔 마시고 집에 들어가서 잠이나 잠. 남편은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당직?

2012년(로펌 1년차): … 기억 포기. 남편은 어디??

2013년(로펌 2년차): … 기억 안남… 밥은 먹었을까?

2014년(로펌 3년차): … … …

2015년(로펌 4년차): 남편과 함께 창원. 전날 대전에서 발표 후 새벽까지 뒷풀이에 참석한 후, 다음날 생일 당일 기차를 놓친 후 다른 기차를 부랴부랴 타고 창원(시댁)에 도착. 시어머님께서 끓여주신, 시아버님께서 사다주신 스테이크 고기를 넣은 미역국을 먹고 하루종일 뻗어 잠.

2016년(로펌 5년차): 남편과 멕시코에서 아델 공연 봄.

 

증거 영상 1: 아델의 Hello. 멋진 언니/동생?? (28살이라…고…)

증거 영상 2: 아델의 Million Years Ago.

이 영상의 포인트는 첫 시도에서 목에 뭐가 걸렸는지 매우 아주머니스럽게 살짝 욕을하며(너무 사랑스러웠음) 연주를 멈추게 하고 옆에 있던 차를 원샷하고, 차로 가글링를 한 후, 재시도하여 성공하는 것임.

 


아델 공연 전에 공원에서 다람쥐와 노는 영상은 보너스.

 

사실 야생동물에게 인간이 feeding을 하면 안된다가 원칙인 것을 매우 잘 알기 때문에 정말 안하려고 했고 아직도 죄책감을 갖고 있지만. 사실 그 전날 멕시칸 로컬들께서, 그것도 동네 아이들까지 하는 것을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다가 결국 악마의 속삭임에 넘어가 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혹시나 제 rabbies를 걱정해 주시는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신기했던건. 그리고 멕시코 사람들이 자연/동물을 함부로 다루지 않을 수도 있겠단 생각을 하게 된건. 다람쥐들이 너무나도 다정다감하게 다가와 제 손을 살포시 잡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즉, 동네 사람들이 평소 다람쥐들에게 돌을 던지거나 함부로 대한다면, 인간에 대한 경계가 높을 것 같은데, 이 아이들은 인간친화성이 매우 높았습니다(야생동물은 인간친화성이 높으면 안되는 것도 잘 압니다… 죄송합니다…ㅜ_ㅜ).

 

이 번 주 제 주제곡은 “쨍!!하고 해뜰날 돌아온단다”였습니다.

뭐 항상 그런건 아니지만. 그리고 노력한다고 다 좋은 결과만 있는 건 아니지만. 힘든 시기를 견딜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언젠가 좋은 날이, 쨍하고 해뜰날이 올 것이란 믿음과 희망이 존재하고, 실제로 그러한 날이 항상은 아니지만, 매 번은 아니지만 언젠가 오긴 오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전 제가 행복함? 돈지랄? 흔히 말하는 성공? 등등에 대해 단순히 제가 과거 노력했단 이유만으로, 과거 힘들었단 이유만으로, entitle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즉, 제가 7-8번 제대로 생일잔치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9번째에는 대박 큰 생일잔치를 할 수 있는 권리가 발생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 생각 자체가 그른 생각이고 매우 위험한 생각이라고 믿습니다.

특히 부정행위를 통해 권력과 부를 창출할 수 있는 “법”이란 도구를 사용할 수 있는 법조인들의 경우 자신이 법조인이란 이유 하나만으로, 사법고시.로스쿨.변호사시험.변호사/판사/검사란 직함을 갖고 있단 이유만으로, 그 직함을 따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단 이유만으로 잘 먹고 잘 살고 떵떵거릴 수 있어야 한다는 entitlement를 갖는 것은 매우 위험하며, 그리고 사회가 그러한 expectation을 갖고 있는 것 자체가 그런 위험함을 부추긴다 생각합니다.

그리고 솔직히.

법조인이 거짓말하고 부정부패로 돈 버는 것. 더 나아가 부정부패하는 사람들의 시다바리나 하며 돈버는 것. 쪽팔리지 않습니까?

 

전 돈 많이 안 벌어도 되니. 권력 쥐락펴락 안해도 되니.

아델의 공연 마지막 모습처럼.

최소한 법조인 김정은으로는.

솔직하게. 공정하게. 자신있게. 윤리적으로. 프로페셔널하게.

그런 법조인으로 살다 가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