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하지 않지만, 이해하는 하다

나의 의견이 있고, 나의 생각이 있다. 나도 나만의 주장이 있고, 나만의 고집이 있다.

그렇기에 타인 또한 그만의 의견, 생각, 아집, 고집, 편견이 있을 것이란 것을 이해한다.

나와 완전 반대의 생각을 하더라도, 내가 아무리 생각해도 동의할 수 없는, 도무지 대화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편협한 의견을 제시하더라도, 그만의 세계가 있음을 이해한다.

표현의 자유란 것은 결국. 타인을 해하지 않는 이상, 머릿속, 마음속, 가슴속에 있는 그 무엇인가를 언어, 행위, 글 그리고 그 모든것으로 표현할 수 있는 자유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그 표현이 나의 믿음과 정반대의 그 무엇일지라도.

타인을 해(害)하지 않는 이상. 이롭지 못하게 하거나, 방해하지 않는 이상. 자신을 표현하는 것은 자유이다.

버지니아에 모였던 자들이 그러한 믿음을 가졌다는 것만으로 비판할 수 없을 것 같다. 난 그 믿음에 굳게 반대하지만, 그들의 믿음을, 그들이 그러한 생각을 가졌다는 것만으로 처벌할 순 없다. 그것은 법리에도 어긋난다(살인, 폭력 등은 처벌 가능한, 입증 시 처벌해야 하는 행위이다 — 단, 단순히 그곳에 특정 사상을 갖고 참석한 자들까지 살인, 폭력 등의 행위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참여했다는 이유만으론 처벌할 순 없다는 이야기다. 그것은 생각을 처벌하는 것이고, 생각을 처벌할 순 없는 노릇이다).

그들의 생각에는 매우 동의하지 않지만, 그러한 믿음과 생각을 갖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음은 알고 있고 이해한다.

그리울 것이다. 교과서에서만 보던. 과거 야생의 숫사자처럼 백인, 특히 백인 남자들이 군림하던 그 시절이.

현실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상상속이 그 세계가.

자신의 적디 적은 피부 멜라닌 함량과 Y 염색체만으로 존경받던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이 있다하던데, 이젠 아무도 자신을 존중은 커녕 하찮은 존재로 내려다 보는 것 같은 이 현실이 싫을 것이다.

그것이 비록 비백인, 여자, 외국인, 무슬림들의 잘못이 아니더라도. 누군가에게 그 분노를 표출해야 한다면. 감히 그들의 알파인 힘많은 부자 백인남자들을 대상으로 삼을 순 없으니, 약해 보이는 희생양들을 대상에게 분노를 내뿜을 뿐이다.

동의하지 않는다. 그리고 처벌 받아야 하는 자들은 처벌해야 한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을 갖고 행동하는 자들이 그럴 수도 있겠다란 생각이 든다. 인간의 심리란 것이 그렇겠다 싶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그들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과거 세상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가 꽃향기 가득한 아름다운 세상일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그들이 그리워하는 과거 숫사자들의 세상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뿐이다.

그리고 그 숫사자들의 영역을 야금야금 빼앗아 먹은 것은 여자도, 외국인도, 특정 종교인들도 아닌, 야생동물들의 정치, 정책, 경제, 인간의 욕심, 욕망, 도덕성, 죄악, 윤리, 종교 등 수많은 이유들이었음을.

Born this way – 어른이 되어가다

어저께 Lady Gaga 공연을 보고 지난 한달, 두달. 어쩌면 캘리포니아로 이사온 후. 친정 로펌, 마음의 고향, 뻐를 묻으려 했던 보스턴을 떠나 방황하며 우울하게 지냈던 1년을 마감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서 난 소속감을 느끼지 못한다. 보스턴, 롭스 앤 그레이에서 난 처음으로 소속감을 느꼈다. 나를 나로 받아 들여주는 도시, 동네, 직장을 찾았었다. 어쩌면. 그것이 사실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그들이 나를 받아들여 주길 간절히 원했고, 그래서 내가 받아들여 지고 있다고 내가 상상했던 것일수도 있다.

새 로펌, 캘리포니아. 이곳은 내가 이전에 살아본, 일을 해본 그 어떤 곳보다 나에게 자연스러운 곳이다. 나와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이 넘쳐나고, 생긴 것을 둘째치고 자유분방한 자들의 도시이기에, 나는 나일 수 있다. 직장에 있어선 불만있을 수 없다. 완벽하다는 것이 아니라, 이 정도면 내가 가질 수 있는, 내가 11년전 유학길에 올랐을 당시, 이 모든 것을 가질 수 있을거라 누군가 이야기 해 줬다면 뻥치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뒤돌아 섰을 법한 위치, 지식, 경험, 경력을 쌓았고 쌓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가진 것에 비해 감사하지 못하고 있다.

내가 원했던 것이 아니니까.

엄청난 고급 음식을 내 입에 누군가 떠먹여 주고 있음에도, 난 그냥 먹어야 산다는 생각으로 그 맛을 음미하지 못하고, 씹지도 않고 꿀꺽꿀꺽 삼키고 있을 뿐이다.

얼마나 바보 같은 일인가.

주제를 바꾸는 것 같지만, 읽다보면 이야기가 돌고 돌긴한다.

진리가 너를 자유케 하리라(요한복음 8장; Truth shall set you free).

내가 변호사를 하면서 깨달은 것은. 세상은 3가지 진리, 또는 truth가 존재한다.

1. 나의 진리, 2. 너의 진리, 3. 진정한 진리.

진리(truth)와 fact는 다르다. 진리는 여러 fact가 모여 하나의 truth가 된다.

3번 truth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그렇다면. 나는 언젠가 자유롭게 될 것인가, 그렇지 못할 것인가?

철학적인 질문 같이 생각될 수도 있지만, 사실 일상적 생활에서 위의 내용을 반영하기 시작하면, 삶이 편해지기도 하고 참 의미 없어지기도 한다.

예컨데.

현재 400억 주식부자라고 언론을 통해 알려졌던 한분이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알려졌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최근, 그 400억 주식부자란 사람이 진짜 주식부자가 아닐 것이란 의혹을 제기했던 분 조차 진실을 알리지 않았단 의혹이 제기되어 온갖 사람들이 즐거운 인테넷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알고 있다.

그들에겐. 그들만의 진리/진실이 존재한다. 무엇이 진정한 진리/진실인지 우리는 절대 알지 못할 것이다. 특검조사를 할지라도(한다는 것/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예컨데 할지라도), 특검은 법리라는 시스템에 맞춰, 특별검사들의 논리에 맞는 진리/진실을 찾아낼 것이다.

난 한동안 혼자 글을 썼다. 사실 끄적거렸다는 것이 더 맞는 이야기다. 끄적거리고 마무리를 짓지 못하는 글들이 대부분이었다.

무엇이 진실인지 나조차 몰랐던 것 같다.

내 자신에게 충실하지 못한 글이었던 게다.

나는 즐거워야 하고, 나는 행복해야 하는데. 나는 즐겁지도, 행복하지도 않았던 지난 1년 동안의 글들이 갈 방향을 찾지 못하고 draft 형태로 여기저기 널부러져 저장만 되어 있었던 것이다.

Lady Gaga 공연 한번으로 모든 것이 바뀌진 않는다. 바뀔 순 없다.

단. 내 자신에게 솔직해질 수 있는 용기? 자신감? 필요성. 의무감. 최소한 난 나에게 솔직해야 할. I owe it to myself?가 있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캘리포니아나 지역의 이동, 이직을 핑계 삼고 싶지도 않다.

나도 이젠 기성세대가 되어가고 있음을 인정해야 하고, 그 사실을 인정하는 과정 자체도 사실 큰 변화 중 하나다. 어쩌면 인생의 전환점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했다는 것이 더 큰 충격으로 다가왔는지도 모른다.

더 많은 것이 보이고,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고, 더 많은 것을 이해하게 됨과 동시에, 내 신념과 믿음, 생각은 쉽게 변하지 않는. 그런 나이가 되어 버린 것이다.

기성세대.

여자 아재. 아지매?

나이가 드는 것은 문제가 아닌데. 나에게 힘든 건, 어른들의 협소한 생각, 이기주의, 냉소함, 억지주장, 사악함, 서로에 대한 미움들이다. 내가 그렇게 될까봐, 그런 문화에 물들까봐. 나의 이기주의, 냉소함, 화, 사악함이 더 심해질까봐. 사실. 3번 진리/진실은 나 또한 다른 어른들과 차이가 전혀 없다일 수도 있다. 내가 쓸데 없는 걱정을 하고 있는 것일 수도.

그래서 한동안은. FB보단 책, 긴 글들을 더 많이 읽고, 글도 블로그에 더 많이 쓸까한다.

잃어버린, 어른이 되어 가는 나를 찾아서.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家 집 가
和 화할 화
萬 일 만
事 일 사
成 이룰 성

집안이 화목(和睦)하면 모든 일이 잘 된다.

집안이 화목하다고 해서 모든 일이 잘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집안이 화목하지 아니하면, 집밖의 일이 잘될리가 없단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요즘. 우리집은 참 가고 싶은 곳이다. 완벽한 곳은 아니지만. 해가 질때가 되면 돌아가고 싶은 곳이다.

Play by the Rules

인간의 심성이 다 그런건지도 모르겠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효율성을 찾는 것 같고, 그 효율성을 찾는 방법 중 하나가 때론 영어표현으로 cutting corners일 때가 있는 것 같다. 즉, 일반적으로 지켜야 하는 규정 또는 과정이 1-10이라면, 그 중 뛰어 넘어도 티가 나지 않는, 반대로 해도 별로 티가 나지 않는, 그래서 하나 안하나 별로 차이가 없는 규정이나 과정은 무시하고 넘어가 버리는 행위를 하곤 한다. 나 또한 그러고자 하는 욕구가 매일 매일 몇번씩 있다. 이를 영어표현으론 cutting corners라고 한다. 또한. Not playing by the rules이기도 하다. Rule은 1-10을 차례대로, 또는 차례대로가 아니더라도 1-10을 모두 하는 것인데, 하나라도 뛰어 넘으면 룰대로 하는 것이 아니니까.

예전에 왕짱님이 종종 breaking the rule, not playing by the rule까진 아니어도 뭔가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bending the rule을 하는 것처럼 보일 때마다 나에게 말씀해 주셨다,

그런 열정과 용기,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갖고 돌진해 나아가는 것은 매우 좋은 자세다. 그러나 언제나 기억해라.

Play by the rules. You always need to play by the rules.

한번 내가 룰을 어기면, 아무리 내 의도가 좋았다 하더라도 내가 룰을 어겼다는 것 때문에 의도 자체가 무관해 질 수 있다는 것을 시간이 지나며 배우고 있다.

그렇다면 룰이 마음에 안들면, 룰 자체가 불공평하다면.

맞다. 그래서 정책/법 공부를 시작한 것이었다.

불공평한 룰이 있다면 룰을 어떻게 만들고 바꿀 수 있는지 배워서 룰 자체를 바꿔야 하는 것이지, 룰을 건너 뛰거나 룰을 지키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캘리포니아 바시험을 준비하며 

캘리포니아 바시험 공부를 하며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우선. 체력이 예전 같지 않다. 운동도 많이하고 근력도 좋다지만 고등학교, 대학교, 하물며 로스쿨 때만 못하다. 쉬엄쉬엄, 천천히 할 수 있는만큼 하고 있다. 
여전히 스트레스를 받으면 잠이 많다. 신생아 수준으로 자는 날도 있어 남편이 놀란다. 나도 놀랍다. 

악몽을 꾸는데, 오늘 아침엔 잠을 하도 자서 시험 전날 저녁에 깼는 꿈을 꿨다. 아직 진도도 다 못 뺀 상태에서 시험공부용 책이 든 가방을 어디다 두고 집에 온 설정이었는데, 로펌 후배 왈, 가수 “비”씨가 그 가방을 의대 “과방”에 가져다 두었다는 것이다(나는 “비”씨 노래 중 제대로 아는 것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그 분을 잘 모른다… 최근 결혼 축하 드린다). 

그래서 이과대학에서 의과대학으로 걸어가는데 갑자기 이콰가 반원을 그리고 합창을 시작했다. Soo Jeong Kim 왜 그곳에 있었을까. 

어쨌든 이런 악몽들을 꾼다. 

그래도. 2010년 뉴욕.매사추세츠 바시험을 준비할 때보단 상당히 인간다워졌다. 

남편에게 성질도 훨씬 덜 부리고 밤낮도 거의 안 뒤집어 졌으며. 마음이 편하다. 나이 때문일수도 있고. 경험이 쌓인 것일 수도 있고. 그냥. 그냥 이젠 나도 사람이 변한 것일 수도 있고. 

시험 공부를 하면서 재미도 있지만. 

법이란 것이 이렇게 현실적으로 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는건데. 이렇게 망나니 대통령이 들어와도 법체계가 사회를 보호할 수 있는건데. 

그렇지 못할 경우 피해 보는 것은 마찬가지로 개인 하나 하나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고 10-15분에 한 번씩 책을 내려놓고 한숨을 쉰다. 

정치인들을 잘 뽑아야 하는 이유. 입법체계가 강해야 하는 이유는. 그들이 법을 쓰기 때문이다. 

미성년자 성폭행. 

장애인보호. 

옥시와 같은 제품으로 부터 소비자 보호. 

이 모든 것은 사법부가 아닌 입법부. 즉 정치인들로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이고. 

현재 한국의 법이 국민을 제대로 보호해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인데. 

바시험 강의해 주시는 교수님들의 농담에 웃으면서. 혼자 울면서. 마음 아파 하면서. 

그러면서 캘리포니아 바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이 또한 지나가리

자본, 시간, 에너지와 같은 resource의 공통점은 그 양이 제한되어 있다는 것이다. 즉, 그 어떠한 개인이나 사회, 국가도 무제한적인 자본, 시간, 에너지 등의 resource를 보유하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사회/국가보다) 많은 양의 resource를 보유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유하고 있는 resource를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예측성은 resource efficiency를 높여준다. 내 돈을 어디에 투자할 것인지, 내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내 열정을 어떻게 쏟아부을 것인지를 결정할 때 나도 중요하지만 내 주변 환경이란 variable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과 미국 모두 정치적 카오스에 빠져있다. 예측성이 저하되면 도박성에 가까워지는데(50:50는 동전던지기와 마찬가지이고, 이는 도박에 가깝다) 그런 사회는 생산성과 안정성에서 높은 점수를 받기 힘들다. 

아까운 자본, 시간, 에너지를 비상식적인, 비헌법적인, 비민주적인 언행에 쏟아붓는 리더들 덕분에. 낭비와 혼란에 빠져있는 것 같다. 

이 또한. 

지나가리. 

Standing Ground / Do Your Job

나는 고집이 센편이다. 경쟁심도 강한편이다.

그런데 경험이 쌓이면서, 나이를 먹으면서. 고집을 부려야할 상황과 양보해야 할 상황을 구분하기 시작했고, 경쟁을 피할 수 있다면 경쟁을 피하는 것이 더 효율적일 수도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됐다. 그래서. 꼭 고집을 부려야 하거나, 경쟁을 해야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꼭 논쟁이나 언쟁을 해야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피할 수 없는 판단이 서지 않는 이상 굳이 손톱발톱을 내밀지 않는다.

고집의 경우. 결국 내 의견을 굽히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변호사로, 전문가로 내 의견을 굽히지 않는다는 것은 내가 내 전문적 의견에 확신을 갖기 때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이 고집은 항상 상대측, 즉 내 클라이언트의 반대측에게만 부리는 것은 아니다. 때론 내 편에게, 내 클라이언트에게 부려야 할 경우도 있다. 물론 설득하고 설명하고 때론 클라이언트의 반박에 당황하기도 하지만. 전문가라면. 클라이언트가 내가 전문가이기 때문에 나를 찾았다면, 나는 그에게 최대한 프로페셔널한, 내가 판단했을 때 올바란 조언과 전략과 방향으로 딜을 이끌어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내 임무이자 내 역할이다.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 감독인 벨로첵 감독은 선수들에게 항상 “너의 역할에 충실하라(Do your job)”라는 이야기를 한다고 한다. 패츠 팬들은 이 말을 상당히 좋아한다. 뉴잉글랜드 사람들의 성향도 사실 비슷하다.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다하는 사람들. 비가 오나 눈이오나 바람이 부나.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고, 타인을 돕고, 자신이 속한 지역에 관심을 갖고 나누고. 그것 또한 자신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이니까.

보스턴에서 변호사로 성장하면서 내가 배운 것 또한 그것이다: 너의 역할에 충실하라.

내 역할은 변호사로, 클라이언트의 법조인으로 객관적이고 가장 프로페셔널한 법적 자문을 하는 것이다.

나는 대부분 40-60대 백인남자 대표님들와 이사님들을 상대로 업무를 한다. 때론 그분들의 무언의 압박이 존재한다.

그러나. 그러한 압박에 흔들리지 않고 내가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의견을 제시하고, 자문을 하는 것이.

그것이 내 가치이자 역할이다.

이 부분에 있어선. 절대로 양보할 생각이 없다. 언제나 고집을 부리고, 내면의 경쟁을 유지해야 할 부분이다.

Stand your ground. Do your job.